감독
리하르트 오스발트 Richard Oswald

주연
아니타 베르버....고급창부/여자/여자친구/주정뱅이의 아내/클럽 회장의 누이/아내
Anita Berber....Die Dirne/Woman/Girlfriend/Wife of drunk/Sister of club president/Wife
콘라트 바이트....사신/이방인/암살자/유령/클럽 회장/남편
Conrad Veidt....Der Tod/The stranger/The ghost/Traveller/Club president/Husband
라인홀트 쉴첸....악마/전남편.살인자/주정뱅이/아르투르 실라스/여행하는 남작
Reinhold Schünzel....Der Teufel/Former husband/Murderer/Drunk/Artur Silas,detective/Travelling Baron

[검은 고양이]

[운하임리히: 기묘한 이야기]는 독일 초기 무성 영화시대에 공포 영화 전문 감독으로 인기를 얻었던 리하르트 오스발트의 옴니버스 호러물입니다. 1919년에 개봉되었을 때는 상당한 성공작이어서 오스발트 자신이 나중에 유성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고 해요. 원본이 유실된 줄 알았던 이 영화는 2000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남아있던 네가 필름이 발견되어 2002년에 복원되었고 그 뒤로 다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11일과 12일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박창수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상영되었습니다. 전 11일날 공연을 보러갔었어요.

영화는 낡은 고서점의 벽에 걸린 초상화들에서 기어나온 고급 창부, 사신, 악마가 서점 안에 널려있는 책들을 읽는다는 액자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이 읽는 작품들 중 적어도 네 편은 꽤 유명한 단편들이죠. 마지막 [유령]의 원작자는 리하르트 오스발트라고 나와 있는데, 그의 창작 각본인지, 그가 쓴 단편을 각색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처음에 나온 이 세 명의 배우들은 뒤에 나오는 다섯 에피소드에도 모두 등장합니다.

간단하게 줄거리 소개부터 하죠. 안셀마 하이네의 [환영]은 주인공이 미치광이 남편으로부터 구출한 여자가 같이 온 호텔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베르트 리브만의 [손]은 연적을 살해한 남자가 죽은 자의 손에 대한 악몽에 시달린다는 내용이고요.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말 그대로 아내를 죽인 남자가 검은 고양이 때문에 발각된다는 이야기이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자살 클럽]은 자살클럽에서 죽음의 패를 뽑은 뒤 무시무시한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의 이야기죠. 마지막 에피소드인 오스발트의 [유령]은 아내를 유혹하는 바람둥이 남작을 놀려주는 남편 이야기입니다.

[운하임리히: 기묘한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건 공포가 아니라 '기묘함'입니다. 이 영화가 각색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공포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이 이야기들을 모두 공포 영화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마지막 에피소드인 [유령]은 경박한 코미디입니다. 전체적으로 당시 나온 독일 무성 영화들과 비교해도 특별히 더 무섭지는 않아요. 영화는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로 괴팍한 내용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 합니다. 물론 현대 관객들에겐 의도적인 코미디와 세월이 흘러 희극적인 클리셰로 화석화된 공포 영화의 관습들을 구별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현대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만족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운하임리히: 기묘한 이야기]는 무성 영화시대에 나온 많은 공포 영화들처럼 특유의 유령과도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소리없이 껌뻑거리는 화면 위에 떠오른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나 진한 분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죠. 하지만 낡은 관습은 어떤 땐 그냥 지겹고 현대 호러 장르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자극의 강도도 약합니다 ([검은 고양이] 에피소드에서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랄까요?) 하지만 앞으로 볼 영화가 어떤 것인지 미리 짐작하고 있는 관객들에겐 꽤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콘라트 바이트의 팬들에겐 이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또다른 기회이기도 하고요.

좋아요. 이제 박창수의 피아노 즉흥 연주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죠. 전에 시네프에서 박창수가 반주한 오리지널 [벤 허]를 감상한 적이 있어서 이번은 두번째였는데요. 솔직히 그렇게 만족스럽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벤 허]와 [운하임리히: 기묘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건 문제죠. [벤 허]라고 해서 꼭 미클로쉬 로자식으로 연주할 필요는 없고 [유령]이 18세기 귀족들이 나오는 코믹한 이야기라고 해서 꼭 리하르트 시트라우스를 흉내낼 필요도 없겠지만, 음악이 영화와 충분히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운하임리히: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작품을 거의 처음 접한 상황에서 (연주 전에 에피소드 하나 반을 봤다고 하더군요) 영화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형식이었는데, 그 때문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영화와 음악이 거의 따로 놀 정도였어요. 박창수의 음악이 어느 정도 효과적일 때는 [벤 허]의 전차 장면이나 [자살 클럽]의 클라이맥스 장면처럼 극적인 크레센도가 돋보이는 부분 정도가 아니었나 싶군요. 다른 장면에서는 영화가 음악을 살리는 대신 오히려 제한한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04/06/16)

DJUNA

기타등등

왜 괜히 반복되는 '운하임리히'를 제목 앞에 달았는지는 묻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