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크 먼든 Marc Munden

주연
나타샤 리틀....베키 샤프
Natasha Little....Becky Sharp
프랜시스 그레이....아멜리아 세들리
Frances Grey....Amelia Sedley
나다니엘 파커....로든 크롤리
Nathaniel Parker....Rawdon Crawley
필립 글레니스터....월리엄 도빈
Philip Glenister....William Dobbin
미리엄 마골리스....미스 크롤리
Miriam Margolyes....Miss Crawley
톰 워드....조지 오스본
Tom Ward....George Osborne
팀 우즈워드....존 오스본
Tim Woodward....John Osborne
제레미 스위프트....조스 세들리
Jeremy Swift....Joss Sedley

앤드루 데이비스는 연속극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김수현 뺨치는 인기를 얻었을지도 모르죠. 그는 적절한 때 이야기를 맺고 끊으면서 시청자들을 조바심내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5, 6부로 끝없이 끌어가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 역시 알고 있고요. 그의 최대 히트작인 미니 시리즈 [오만과 편견]도 훌륭한 '영화'라기보다는 훌륭한 연속극이었습니다. 그 작품의 진짜 장점은 톡톡 튀는 배우들과 날카로운 각본이었지, 영화적 매력은 아니었잖아요.

[허영의 시장]도 그런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새커리의 원작에 '문학적인 위엄'을 입히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습니다. 앤드루 데이비스와 마크 먼든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19세기 초엽의 영국 사회를 무대로 한 통속 연속극입니다. 그리고 그 접근은 분명 적절한 것이었어요. 정말로 [허영의 시장]은 그런 통속극이니까요. 베키 샤프나 아멜리아 세들리, 조지 오스본, 로든 크롤리와 같은 사람들은 20세기 소프 오페라에 집어넣어도 그대로 들어맞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들 역시 지극히 통속적이지요.

물론 새커리는 정말로 소프 오페라식 통속극을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설 [허영의 시장]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지요. 아무런 교훈 없이 막 나가는 듯한 줄거리 속에서는 인간 일반의 천박함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기본 스토리만 따라가도 새커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새커리의 이죽거리는 듯한 유쾌한 촌평이 없이는 이 작품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색물이 진짜 번역을 시도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지요.

감독인 마크 먼든은 꽤 성공적으로 일을 해냈습니다. [오만과 편견]의 사이먼 랭튼과는 달리, 먼든은 자신이 가진 시청각적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머레이 골드의 뻔뻔스러운 음악이 흐르는 동안 먼든은 노골적인 클로즈 업과 펀치와 주디 쇼처럼 평면적인 화면 구도로 캐릭터들을 잔뜩 놀려댑니다. 초반에 이런 식의 야유를 퍼붓다가 캐릭터들에 조금씩 입체감이 생기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평면적인 스타일을 조금씩 지워버리는 테크닉 역시 좋고요. 새커리 영감의 입담에 비길 수 없을지는 몰라도 더한 것도 상당히 많죠. 원작에 비해 더 매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이 작품을 진짜로 빛내는 사람은 완벽하게 캐스팅된 배우들입니다. 특히 베키 샤프를 연기한 나타샤 리틀의 그 여우같은 연기에는 혀가 쑥 빠질 지경입니다. 로든 역의 나다니엘 파커나 도빈 역의 필립 글레니스터, 조스 세들리 역의 제레미 스위프트 같은 배우들도 역에 너무 잘 들어맞고요. 초반에는 약간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아멜리아 역의 프랜시스 그레이도 첫회를 넘기자 너무나도 아멜리아 같더군요.

계속 걸리는 문제는 속도감과 삭제의 정도입니다. 6부작의 길이는 [허영의 시장]이라는 소설에 완벽하게 맞는다고도 할 수 있고 너무 짧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앤드루 데이비스식 연속극의 길이로 6부작은 완벽해요. 새커리의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면 너무 장황하기도 했을 거고요.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세 배는 가뿐히 넘는 소설을 6부작 안에 부벼넣다 보니 쿵쿵 건너 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러다보니 캐릭터들 묘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느낌도 들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멋진 시리즈입니다. [오만과 편견]의 화끈한 열광에는 미치지 못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며 흥분되는 일주일을 보냈을 겁니다. (00/12/02)

DJUNA

기타등등

할리우드에서 [허영의 시장] 영화 계획이 진행 중인 모양입니다. 아직 각본만 나와 있는 상태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