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문제용

주연
박혁권....봉남
오지은....나영/나영언니

'쌍둥이들'

문제용의 [쌍둥이들]은 완벽한 단편영화용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여자친구 나영이 이별통고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택배로 보내자, 남자주인공 봉남은 나영한테서 자기 카드를 돌려받기 위해 택배를 보낸 주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그를 맞아주는 여자는 나영과 똑같이 생겼으면서 나영의 쌍둥이 언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여자는 정말 나영의 언니일까요, 아니면 나영일까요?

결말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가능성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죠. 둘 중 하나니까. 결말을 보고 놀랄 사람들도 없을 거고 그럴 필요도 없죠. 이 설정은 이야기를 열어주는 문에 불과하니까.

일단 이 시트콤/만화 설정을 문처럼 확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이야기의 광맥이 숨겨져 있습니다. 봉남은 지금까지 나영과 연애를 해오면서 나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실제 나영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요? 차이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몸을 섞으며 몇 년 째 연애를 했다고 해도 말이죠. 직접 말해주지 않은 것, 눈치채지 못한 자잘한 것들을 다 더하면 그 차이는 상당합니다. 그렇다면 봉남이 사랑한 건 누구죠? 만약 나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이 나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무슨 재주로 그걸 구분할 겁니까?

일상 속에서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이 연애담은 이 순간부터 갑자기 깊이를 부여받습니다. 봉남은 자기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그러는 동안 그가 지금까지 나영과 겪었던 과거들이 재구성되며 그들의 감정은 재평가됩니다. 영화는 코미디지만, 그 때문에 그 결말은 다소 씁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논리를 따지고 나가면 결말은 하나일 수밖에 없죠. 우리가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도 상대방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사랑 역시 한계가 있단 말입니다. [쌍둥이들]의 설정은 황당하지만 결말은 거의 냉혹할 정도로 철저한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연기가 좋습니다. 우선 박혁권의 유들유들한 생활연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지은의 연기는 겉보기엔 피상적이지만 속은 은근히 입체적입니다. 하긴 역부터 그렇죠. 남자주인공과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끊임없이 두 캐릭터의 경계선 사이를 오가는 역할이잖아요. 이건 20여 분 동안 [현기증]의 마들레인과 주디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오지은은 걸려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해냈습니다. (07/09/26)

DJUNA

기타등등

2007 미쟝센 단편영화제 멜로드라마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