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

주연
미리암 홉킨즈....마사 도비
Miriam Hopkins....Martha Dobie
멀 오베론....카렌 라이트
Merle Oberon....Karen Wright
조엘 맥크리....조셉 카딘 박사
Joel McCrea....Dr. Joseph Cardin
캐더린 두세....모타르 부인
Catherine Doucet....Mrs. Mortar
알마 크루거....틸포드 부인
Alma Kruger....Mrs. Tilford
보니타 그랜빌....메리 틸포드
Bonita Granville....Mary Tilford
마샤 메이 존스....로잘리
Marcia Mae Jones....Rosalie

0.

[아이들의 시간]이라는 EBS 방영 제목 대신 [세 사람]을 번역 제목으로 달았는데, 그건 이미 이 영화를 그 제목으로 DCN에서 방영한 적이 있고 또 그게 원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번 EBS의 윌리엄 와일러 시리즈에 포함된 작품들 중 상당수는 이미 DCN에서 방영된 적이 있으니 제목의 통일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1.

EBS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이 영화에 '레즈비언 묘사도 조금 있다'라고 나와 있는데, 영화의 내용만 따진다면 그것처럼 잘못된 정보가 없습니다. 윌리엄 와일러의 이 영화는 의식적으로 모든 동성애 요소에서 달아나기 위해 필사적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해못할 일도 아닙니다. 당시는 1930년대였으니까요. 브로드웨이에서는 몰라도 헐리웃에서 동성애 요소의 삽입 같은 건 어림 없었지요. 영화가 원작의 제목을 따르지 않고 [These Three]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2.

릴리언 헬먼의 희곡 [The Children's Hour]는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던 재판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에딘버러의 어느 여학교에서 한 학생이 제인 피리와 마리안 우즈라는 두 교사가 애인 사이라고 주장했던 것이죠. 피리와 우즈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은 Scotch Verdict라는 별명이 붙어,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민사 재판 중 하나로 역사에 이름이 남고 말았습니다.

릴리언 헬먼은 이 기둥 줄거리를 그대로 따와 희곡을 썼고 그 때문에 이 연극은 당시에 상당히 센세이널한 작품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보면 매우 온화한 수준의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3.

원작과 영화의 내용을 비교해보죠. 원작에서 못돼먹은 학생 메리 틸포드는 카렌 라이트와 마사 도비를 동성애 애인 사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영화에서 메리는 카렌와 마사가 라이트의 약혼자인 조 카딘 박사와 난잡한 삼각관계에 있다고 고발합니다. 연극에서는 마사가 카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권총 자살하지만, 영화에서는 마사가 학교를 떠나고 카렌과 조가 맺어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물론 바꾸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또 당시에는 원작 그대로를 영화로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이 모든 변경은 이해 가능합니다. 릴리언 헬먼 자신도 [The Children's Hour]가 동성애에 대한 작품이 아니라 거짓말에 대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죠. 생각해보면 이 희곡은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가까운 거짓말에 거짓말의 대상 자체가 말려드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초만 떠낼 수 있다면 어떻게 각색하건 상관없을지도 모르죠.

4.

릴리언 헬먼이 직접 각본을 쓰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원작을 원래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이질감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큰 이유는 물방울 하나 새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구조의 무대 연극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헐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는 카렌과 마사가 학교를 세우고 카렌이 조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영화의 절반 정도를 들여서 보여주는데, 이 부분은 구조상 전혀 필요없습니다! 그 결과 연극에서는 1막에서 일어나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중간에서야 시작하니, 정작 힘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 상당히 허겁지겁 넘어가고 말죠. 게다가 카렌과 조의 관계를 부풀리고 그들이 맺어지는 것을 영화의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것은 원작이 가진 강한 비극적 감정을 완전히 쫓아버립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원작의 내용을 '안전하게' 각색하는 결과 발생한 것입니다. 일단 스트레이트 삼각관계는 동성애보다 스캔들의 힘이 떨어지고 결말도 스토리를 끌고 가기엔 힘이 약하니까요.

5.

이 영화의 진짜 장점은 스토리 밖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와일러와 그렉 톨런트의 첫 공동작품인데, 이 작품을 통해 고전적인 흑백 영화 촬영기술의 매너리즘을 즐기는 것은 분명 유쾌한 경험입니다. 스토리는 (원작에 비해) 헐겁지만 와일러의 미장센느는 그렇지 않습니다.

멀 오베론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는 메리 틸포드 역의 보니타 그랜빌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다소 덜컹거리고 권선징악에 지나치게 집착한 각본이 이 캐릭터의 사악함을 화끈하게 뚫어내지 못하지만요.

6.

대부분 가이드가 만점을 주는 영화지만 저희는 별 세 개를 주겠어요. 아무래도 이 헐리웃 식 타협이 눈에 자꾸 거슬리거든요. 아마 제가 영화보다 원작을 훨씬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죠. (98/07/12)

D&P

기타등등

원작을 마음대로 각색해내지 못한 게 영 억울했던지, 와일러와 헬먼은 61년에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영화화했습니다. 원작 제목을 그대로 달고 셜리 맥클레인과 오드리 헵번을 주연으로 내세워서요. 리메이크 영화는 원작에 훨씬 충실합니다. 참, [These Three]에서 마사 역을 했던 미리엄 홉킨즈는 이 리메이크 영화에서 모타르 부인역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