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 (1967) * * * 1/2

감독
자크 드미 Jacques Demy

주연
카트린느 드뇌브....델핀느 가르니에
Catherine Deneuve....Delphine Garnier
프랑스와즈 도를레악.....솔랑쥬 가르니에
Françoise Dorléac....Solange Garnier
진 켈리....앤디 밀러
Gene Kelly....Andy Miller
다니엘 다리외....이본느 가르니에
Danielle Darrieux....Yvonne Garnier
조지 차키리스....에티엔느
George Chakiris....Etienne
그로버 데일....딜
Grover Dale....Bill
자크 패랭....막상스
Jacques Perrin....Maxence
미셸 피콜리....시몽 담
Michel Piccoli....Simon Dame
자크 리베롤....기욤 랑시앵
Jacques Riberolles....Guillaume Lancien
패트릭 장테....부부
Patrick Jeantet....Boubou

가르니에 자매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세계적으로 히트작을 낸 젊은 감독이 차기작으로 낼만한 영화입니다. 거대하고 야심적이며 이전에 돈 때문에 꿈만 꾸었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넘칩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반응도 전형적이었습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끝끝내 전작인 [셰르부르의 우산]의 인기를 넘어서지 못했지요.

예술적 실패였던 걸까요? [로슈포르의 숙녀들]이 [셰르부르의 우산]의 완성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심지어 자크 드미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야심도 따라가지 못하죠.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거칠고 투박하며 페이스도 고르지 못합니다. 미셸 르글랑의 유쾌한 노래들은 즐겁지만 [셰르부르의 우산]만큼 잘 기억에 남지 않고요 (흠, 이건 꼭 음악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노래의 인기는 영화 인기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상대적인 완성도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셰르부르의 우산]과는 다른 자기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영화는 [셰르부르의 우산]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셰르부르의 우산]이 비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작고 사실적인 로맨스라면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지중해의 여름 햇빛이 가득한 항구 도시 전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감상적이고 로맨틱한 판타지입니다. 단선적이고 분명한 스토리를 가진 [셰르부르의 우산]과는 달리 [로슈포르의 숙녀들]의 이야기는 산만하고 모양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로슈포르의 여름축제를 맞는 수많은 연인들입니다. 델핀느와 솔랑쥬는 파리에 가서 무용수와 작곡가로 성공하려는 쌍둥이 자매입니다. 그들의 주변엔 델핀느를 보지도 않고 똑같은 초상화를 그린 화가 막상스, 솔랑쥬에게 첫눈에 반한 미국인 작곡가 앤디 밀러, 솔랑쥬를 짝사랑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매의 잊혀진 아버지인 시몽 담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로맨틱한 사랑에 푹 빠져 있지만 실제 연애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이미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지만 늘 길이 엇갈리거나 나쁜 기억력과 악의에 찬 거짓말의 방해를 받죠. 이들은 결국 영화가 끝날 무렵에나 간신히 만납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로맨스 자체보다는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붕 떠 있습니다. 당연하죠. 연애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연애의 실제적인 문제점들이 이들을 공격하는 일도 없는 겁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들의 발은 땅에서 한 5센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엔 관객들도 지중해의 태양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된 것처럼 멍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도를레악 자매나 다니엘 다리외, 미셸 피콜리, 조지 차키리스 심지어 전설적인 진 켈리까지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로슈포르라는 도시 자체입니다. 사실만 따진다면 로슈포르는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소도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크 드미의 손과 상상력을 거치자 이 곳은 춤과 음악의 마술로 가득 찬 뮤지컬의 환상 세계로 바뀝니다. 드미의 로슈포르는 사시사철 음악이 허공에서 흐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툭하면 댄서들로 바뀌는 곳입니다. 차키리스가 주연했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초반에만 잠시 뉴욕 로케이션의 힘을 빌리는 정도라면 드미는 로케이션의 힘을 영화 전체에 퍼트리고 있지요.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로슈포르에 가도 커다란 모자를 쓰고 광장에서 선원들과 춤추는 가정주부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뮤지컬은 거친 편입니다. 배우들의 뮤지컬 실력은 들쑥날쑥합니다. 다니엘 다리외를 제외하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없고요(심지어 진 켈리도 노래부를 때는 남에게 목소리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영어판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요). 노먼 메인의 안무도 영화 하나를 커버할만큼 어휘가 풍부한 편이 아니라 중후반부엔 다소 지겹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의 활력은 여전합니다. 목소리는 날아갔을지 몰라도, 진 켈리나 조지 차키리스는 여전히 뮤지컬 스타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투박한 춤은 오히려 사실적인 매력을 풍기기까지 하고요. 아까 [셰르부르의 우산]보다 덜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 미셸 르글랑이 작곡한 노래의 화려한 매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이 [셰르부르의 우산]의 인기를 넘어설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사랑하는 건 [셰르부르의 우산]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만큼이나 이 영화에 넘쳐흐르는 로맨티시즘과 낙천주의는 강렬해요. 분명 과잉이긴 하지만 이런 주제에서 적정점을 찾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05/05/17)

DJUNA


기타등등

자크 드미는 진 켈리에게 이 영화의 안무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아쉬워요. 영화가 몇 배는 더 재미있어질 수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