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오 바바 Mario Bava

주연
달리아 라비....네벤카 멘리프
Daliah Lavi....Nevenka Menliff
크리스토퍼 리....쿠르트 멘리프
Christopher Lee....Kurt Menliff
토니 켄달....크리스티안 멘리프
Tony Kendall....Christian Menliff
이다 갈리....카티아
Ida Galli....Katia
해리엇 메딘....지오르지아
Harriet Medin....Giorgia
루치아노 피고지....로사트
Luciano Pigozzi....Losat
구스타보 드 나르도....멘리프 백작
Gustavo De Nardo....Count Menliff

살해당한 쿠르트

[채찍과 시체]는 바바가 툭하면 써먹었던 19세기의 중부유럽이라는 무대에서 시작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쿠르트 멘리프라는 못돼먹은 남자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옵니다. 자기 딸이 그 남자 때문에 죽었다고 이를 가는 할머니가 있고, 그의 동생 크리스티안이나 아버지 멘리프 백작의 심사도 그리 편한 편이 아니군요.

한참 불편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결국 쿠르트가 등장합니다. 크리스토퍼 리가 쿠르트를 연기하고 있으니 결코 편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자기 말에는 가족과 화해하려 왔다지만 다들 그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잘 봤어요. 이 친구가 도착한 뒤 처음 한 의미있는 행동이란 게 해변에서 자기 옛애인이자 동생의 아내인 네벤카를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랬던 그가 단검에 찔린 시체로 발견됩니다. 맨 처음 등장한 할머니의 딸이 죽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요. 영화가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인과응보가 끝난 것일까요? 천만에요. 이 징글맞은 악당은 죽은 뒤에도 진흙 발자국을 질질 끌면서 저택에 들어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바바의 영화들 중 온건한 모습으로 배급된 영화가 얼마 없기는 하지만 [채찍과 시체]는 그 중 손상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검열관의 매서운 가위 맛을 봐야 했으니까요. 바바가 미국인 감독이었다면 미국 버전인 [What!]은 알란 스미시 영화가 되었을 거예요. 그가 존 D. 올드라는 가명을 사용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죠.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이 영화에 특별히 폭력적인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고 고어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불편한 구석이 있었죠. 언제나 다양한 변태 성향을 노출시키기를 즐겼던 바바는 이 영화에 본격적인 사도매저키즘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쿠르트와 네벤카의 불쾌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한마디로 둘은 궁합이 잘 맞는 S&M 커플입니다. 네벤카가 쿠르트의 폭력적인 태도에서 성적 쾌락을 느낀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이 영화의 액션은 네벤카의 성적 쾌락과 빅토리아식 윤리, 타고난 생존 본능이 충돌하면서 발생합니다. 검열관들이 좋아할 내용은 절대로 아니죠. 저 역시 그렇게 맘에 드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바바 팬들 중에는 [채찍과 시체]를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인데,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영화의 노골적인 사도매저키즘은 흥미로운 터치를 더해주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재미가 떨어집니다. 별별 성적 일탈에 익숙한 현대 관객들에게 채찍을 든 쿠르트의 모습은 지나치게 공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하긴 저도 쿠르트와 네벤카를 보면서 '쟤들이 지금 롤 플레잉 게임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바바의 무시무시한 고딕 스타일은 여전하고 몇몇 배우들, 특히 크리스토퍼 리는 악몽과도 같은 근사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바바 팬들이라면 한 번씩 거쳐볼만한 작품이에요. (01/03/30)

DJUNA

기타등등

VCI사의 DVD는 LD처럼 1,2부로 나뉘어져 있더군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