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리만 Michael Lehmann

주연
지닌 가로팔로....에비 반즈
Janeane Garofalo....Abby Barnes
우마 서먼....노엘 슬루사스키
Uma Thurman....Noelle Slusarsky
벤 채플린....브라이언
Ben Chaplin....Brian

1. 시라노 드 베르주락

에드몽 드 로스탕이 이 코쟁이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5막 희곡을 쓴 뒤로, 시라노 드 베르주락의 이야기는 전세계 관객들을 언제나 매료시켜 왔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영혼과 육체, 외면과 내면의 대립이라는 너무나도 친숙한 주제에 그럴싸한 모양으로 피와 살을 붙여주었기 때문이겠지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은 [시라노 드 베르주락]을 성전환시킨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시라노]의 주제는 형이상학에서 뚝 떨어져 이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 행성에 사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 문제는 뼈에 와닿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2. 에비 반즈

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라노 베르주락]의 경우도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지요. 실제 시라노는 큰 코에도 불구하고 꽤 미남이었고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로스탕의 희곡에서도 그는 여자들에게 정말로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닙니다. 그가 정말로 심하게 못생겼어도 그의 재능과 재기발랄함으로 충분히 그를 극복하고도 남았겠지요. 그의 문제는 그가 못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모가 그의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닌 가로팔로가 재치있게 연기한 에비 반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비는 못생긴 편은 아닙니다. 작고 귀엽고 친근하죠. 이 영화에 아름다움의 상징인 노엘 슬루사스키로 출연하는 우마 서먼이 사실 익숙해지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오해 마시기를, 저희는 이 배우가 보그지 모델을 하던 80년대부터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엘 대신 에비를 선택할 사람도 꽤 많을 겁니다.

그러나 에비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라디오 쇼의 진행자라는 그녀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고 (하워드 스턴처럼 유명인이 아닌 이상 이들의 육체는 목소리로부터 너무나도 쉽게 분리되고 이상화됩니다) 순전히 그녀 자신이 품고 있는 외모에 대한 이상주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상주의는 대부분 패션 잡지와 같은 대중 매체들에 의해 배포되죠.

그게 뭐 대수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수도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잘 살아가니까요. 사실 저희도 보그나 하퍼스 바자같은 패션 잡지들을 모으고 인터넷에 패션모델 사이트까지 하나 열고 있지만, 할로우나 발레타, 털링턴 같은 사람들의 외모에 그렇게 눌려 살지도 않으며 그렇게 되고 싶다고 바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알겠어요? 바로 그 이상적인 외모의 모델이 맞은 편에 살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건 남자 눈에 못 생겨보인다 잘 생겨보인다와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거라면 신경 끄고 잘 살 수 있죠.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의 미적 가치관입니다.

3. 노엘 슬루사스키

크리스티앙 드 네빌레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멍청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재치가 있었고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라노만큼 엄청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록산느로 알려진 아름다운 마들렌느 로뱅이 원했던 것은 그런 엄청난 재치와 미문들이었습니다. 그가 자살이나 다름없는 죽음의 길을 택했던 이유도, 친구를 위해서라거나 거짓을 참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결코 그녀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엘 슬루사스키 역시 자신이나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그렇게 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어리석지는 않고 나름대로의 통찰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 또는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편견과 그녀의 불안정한 행동들이 그녀의 자신감을 점점 위축시킬 뿐이지요. 이 역시 대중 매체들에 의해 제시된 하나의 기준에 영향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리하다'는 것을 토크 쇼에 나와 거침없이 떠들 수 있는 능력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니까요.

하지만 아름다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지성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슬프게도 노엘의 해결책은 그 대중화된 '영리함'의 범주 안에 자신을 편입시키려는 것입니다. 바로 뉴스 앵커가 되려는 거죠.

노엘은 브라이언을 '분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고안합니다. "'당신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타임'의 올해의 여성과 '플레이보이'지의 올해의 플레이메이트 중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멍청한 질문이지만 의도만큼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질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이 고만고만 살아가는 이 세계 속에서도 그와 같은 무자비한 이분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니까요.

이 영화는 그 이분법에서 탈출하게 되는 두 여자의 이야기이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다룬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비가 브라이언과 맺어진다는 관습적인 결말에 속아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에비와 노엘

왜 둘이 그렇게 급속도로 친구가 되었냐고요? 별로 큰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사람들은 자기에게 결여되었다고 믿는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쉽게 매료되는 편이니까요. 노엘이 에비를 잃지 않으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굴었던 이유도 단순히 사랑보다 우정을 우위에 놓는 간단한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브라이언과의 사랑이 줄 수 없는 어떤 충족감을 에비가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엘의 브라이언에 대한 감정은 이 영화에서 그렇게 강하게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노엘을 흥분시켰던 것은 브라이언 자체보다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영리하다'라고 했다는 엄청난 사실이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가장 절실한 감정이 표출되는 부분은 노엘이 에비의 응답기에 대고 대답없는 독백을 늘어놓는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관객들과 에비가 노엘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부분도 바로 그 장면들이죠.

그에 비하면 브라이언과 두 주인공의 관계는 그렇게 절실한 편은 아닙니다. 브라이언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관례대로) 귀엽지만 다소 이상적인 허수아비로 묘사되기 때문에 사실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영화가 두 개의 결말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형식적인 결말은 에비와 브라이언이 결합하는 장면이지만 영화 전체를 흐르는 정서적 흐름을 고려할 때 진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에비와 노엘이 화해하는 장면이지요. 거기서 진짜 대립들이 마무리지어 지니까요. 영화 끝에서 노엘의 부재가 (사실 있어서는 안되지만) 그토록 비어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5. 마이클 리만

[허드슨 호크]의 엄청난 실패와 [헤더즈]의 악명 높은 내용 때문에 마이클 리만의 이름은 언제나 컬트의 그림자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요? [헤더즈]의 내용에 진짜 책임이 있는 사람은 마이클 리만이 아니라 다니엘 워터즈입니다. [허드슨 호크] 몰락의 제 1 책임자가 리만이 아니라 브루스 윌리스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허드슨 호크]의 작가가 다니엘 워터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지요.

오히려 리만의 진짜 성향은 그가 워터즈의 그늘에서 벗어난 뒤의 두 영화인 [에어 헤즈]와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온화한 사람입니다.

6. 지닌 가로팔로, 우마 서먼, 벤 채플린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은 지닌 가로팔로를 신데렐라로 만들어 준 영화입니다. 물론 가로팔로는 충분한 재능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매력도 있는 배우이니 영화에 무작정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가로팔로는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된 에비의 캐릭터에 아주 정밀하고 미묘한 톤의 변화로 튜닝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에비 반즈는 영화 속에 진짜로 반짝반짝하게 빛이 납니다.

우마 서먼은 언제나 저희가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언제나 그 재능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 배우가 걷는 행로를 들여다 보면 점점 믿음직해지는군요. 특히 [펄프 픽션] 이후 서먼이 보여준 희극적인 재능은 이 배우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 같습니다.

벤 채플린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말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이 영화에서는 귀여웠지만 어차피 브라이언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평면적이니까...

7. 오드리 웰즈

오드리 웰즈의 각본은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몇몇 부분에서는 꽤 깊은 통찰력이 보입니다. 하지만 각본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캐릭터가 지나치게 정형화 되어있고 고정된 틀을 너무 안전하게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첫 영화라고 생각하면 꽤 좋은 출발이죠. (96/10/24)

D&P

기타등등

1. 브라이언은 정말 귀가 먹어도 꽉꽉 먹었음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분명한 목소리를 못알아들을 수 있어요?

2. 사소한 의문. 왜 영화 속에서 바이올린은 늘 주인공의 지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