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더글러스 서크 Douglas Sirk

주연
록 허드슨....버크 데블린
Rock Hudson....Burke Devlin
로버트 스탁....로저 슈만
Robert Stack....Roger Shumann
도로시 말론....라번 슈만
Dorothy Malone....LaVerne Shumann
잭 카슨....직스
Jack Carson....Jiggs
로버트 미들턴....맷 오드
Robert Middleton....Matt Ord
크리스토퍼 올슨....잭 슈만
Christopher Olsen....Jack Shumann

라번과 버크

더글러스 서크를 여성 관객용 테크닉컬러 통속극의 거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빛바랜 천사]는 다소 예외적인 작품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파일런]을 꽤 진지하게 각색한 흑백 시네마스코프 영화인데다 비행기 경주라는, 이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거든요. 포크너는 비행사였던 동생한테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만.

영화는 뉴올리언즈의 신문기자인 버크 데블린이 왕년의 전쟁 영웅이었고 지금은 미국 이곳 저곳을 돌며 비행기 경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로저 슈만이라는 비행사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곧 로저와 그의 아내 라번, 아들 잭, 정비사인 직스로 구성된 사인조의 멜로드라마틱하고 어두운 관계 속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그가 라번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고요.

[빛바랜 천사]의 기본 이야기와 아이디어는 비행기와 비행이라는 행위에 대한 20세기 초의 열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가 당시엔 그처럼 대단한 일이었어요. 그 열광은 비행기와 비행술이 발전하고 이 모든 것들이 일상 생활의 산문성 속에 묻혀가는 동안 사라져 버렸지만요. 여러분은 50년대 말의 할리우드 사람들이 대공황 시대의 비행사들을 회고하는 방식에서 그 열광이 퇴색해가고 향수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유추해낼 수 있을 겁니다.

[빛바랜 천사]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사람들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입니다. '플라잉 슈만' 사인조는 복잡할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로저는 비행에 미쳐있고 라번은 그런 로저를 사랑하고 직스는 그런 라번을 사랑하며 둘 중 누구의 아들인지 불분명한 잭은 이 세 사람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죠. 이들의 이야기는 그 결합의 불운한 결과를 제외하면 정말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데블린은 이들을 평범한 사람들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그들이 하는 공중 곡예와 비행이 너무 근사해 보입니다. 그는 거기에서 시적 가능성을 읽고 자기가 만들어낸 시를 슈만 패거리에게 부여합니다. 그는 작가처럼 그들을 조종하고 그들의 삶에 간섭하며 그들을 소재로 시를 씁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비행기 레이스의 물리적 액션이나 멜로드라마의 파국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세요. 진짜 클라이맥스는 슈만 패거리의 모든 드라마가 끝난 뒤 신문사로 돌아간 데블린이 50년대식 장황한 연설로 슈만 패거리의 삶과 존재 이유를 거창하게 정리하는 부분입니다. 동생을 모델로 소설을 썼던 원작자 포크너 자신의 입장도 데블린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겠죠. 영화 역시 데블린의 권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고요. [빛바랜 천사]는 구식 위트로 충전된 날카로운 대사들로 가득하지만 이야기의 진지함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원작 소설에 대한 진지한 접근법 때문에 영화는 서크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예술작품'처럼 보입니다. 물론 현대 관객들에겐 여전히 50년대 멜로드라마 특유의 과장이 키치적인 재미로 느껴지겠지만 그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이 진지한 접근법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들은 배우들입니다. 이전까지 서크 영화 속에서 거의 캐리커처적인 과장으로 일관된 연기를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상당히 깊이 있고 입체적인 연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죠. 특히 록 허드슨은 굉장한 발전을 보여줍니다. 바로 몇 년 전에 그가 선보인 [바람에 쓰다]의 나무토막 연기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말이죠.

[빛바랜 천사]는 서크의 다른 테크닉컬러 멜로드라마들만큼 인기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영화가 대중에게 알려진 '오퇴르' 더글러스 서크의 개성과 그렇게까지 잘 맞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지, 영화가 특별히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닙니다. (04/10/22)

DJUNA

기타등등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보았다면 중간중간에 나오는 비행 레이스 장면들이 훨씬 근사했을텐데...하며 탄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