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Cédric Klapisch

주연
로맹 뒤리....자비에
Romain Duris....Xavier
주디트 고드레슈....안느-소피
Judith Godrèche....Anne-Sophie
오드리 토투....마르틴느
Audrey Tautou....Martine
세실 드 프랑스....이자벨
Cécile De France....Isabelle
켈리 라일리....웬디
Kelly Reilly....Wendy
크리스티나 브론도....솔레다드
Cristina Brondo....Soledad
페데리코 다나....알레산드로
Federico D'Anna....Alessandro
바르나비 메추라트....토비아스
Barnaby Metschurat....Tobias
케빈 비숍....윌리엄
Kevin Bishop....William

'L'Auberge espagnole'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안정된 공무원으로서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1년간의 바르셀로나 유학을 떠난 자비에라는 프랑스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품었던 작가로서의 꿈을 잃고 자발적으로 관료 세계의 톱니바퀴가 되려는 문턱에 서 있는 이 친구는 바르셀로나에서 유럽 각국에서 날아든 교환학생들과 같은 아파트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신없는 세계에서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그의 현재와 장래 계획을 뒤흔들어놓지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성장물이고, 다국적 배우들이 나오는 [프렌즈]식 시트콤이고, 섹스 코미디이고, 유럽과 유럽 연합이라는 다국적 세계에 대한 예찬입니다.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잡탕찌개라도 만드는 것처럼 커다란 그릇에 넣고 휘저어댑니다. 영화는 자비에가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에서 1년 동안 겪는 일들을 별다른 방향 설정없이 쏟아내는데, 이 무정부주의적인 혼돈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었을 겁니다. 영화를 보고난 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자비에의 정신적 성장과 같은 주제나 줄거리가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날아온 젊은이들이 수많은 언어들을 섞어가며 수다를 떨어대는 그 신나고 산만한 분위기거든요.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곱 나라에서 온 이 젊은이들은 소란스럽게 아파트 방 안을 쿵쾅거리면서 구체적인 스토리와는 무관한 고유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모두 각국을 대표하는 스테레오타입이면서도 그런 스테레오타입을 깨기에 필사적입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다름'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그런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는 공부를 하기도 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섹스 테크닉을 가르쳐주거나 바람피우는 친구들을 위해 알리바이를 조작해주기도 하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는 이런 그들의 이야기에 멋진 배경을 제공해줍니다. 처음부터 두 개의 언어(카탈로니아어와 스페인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이잖아요. 자비에와 잠시 사귀는 유부녀 안느-소피가 매정하게 '제3세계 분위기'라고 정의한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도 자비에를 거의 미치광이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혼란을 만들어냅니다.

아까 [스패니쉬 아파트먼트]가 의도적으로 혼란스러운 영화라고 말했는데,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도 바로 여기서 갈리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옥석이 섞여있는 혼란 속에서 관객들이 재미있고 쓸만한 부분들을 직접 찾아낼 때 가장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 자비에의 성장기는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1년을 보낸 뒤 그가 느끼는 갑갑함과 혼란은 사실적이지만 결말로 이어지는 그의 고뇌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 같단 말이에요. 영화는 스크린 위에 나오는 사람들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여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더군요. 우린 과연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에 나오는 유럽인 젊은이들만큼 아시아인으로서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시아인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과연 그런 이웃들과 쉽게 섞이면서 조화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03/12/16)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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