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예모 Zhang Yimou

주연
장쯔이...자오 디
Zhang Ziyi.... Zhao Di
순 홍레이...루오 유셩
Sun Honglei....Luo Yusheng
쩡 하오....루오 창위
Zheng Hao....Luo Changyu
자오 우에린....자오 디 (노역)
Zhao Yuelin....Zhao Di, Old

지금까지 장예모의 밟아온 경력을 검토해보면 대충 이 사람의 작품들을 두 쪽으로 나눈 시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귀주 이야기]와 [인생]이 만들어지던 90년대 중엽이 그 경계가 되겠군요. 그 때까지 열정적이고 로맨틱하며 약간은 복고 취향의 영화를 만들어냈던 남자가 갑자기 투박한 사실주의 영화로 방향 전환을 한 것입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방향 전환을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장예모의 초기작품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을 발견한 이후로, 그의 작품은 서구 관객들의 입맛에 맞춘 영화제용 영화라는 비난에 휩싸여왔으니까요. 그들은 [귀주 이야기] 이후의 영화들을 감독의 본류로 돌아간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이런 전환이 오히려 미심쩍습니다. 전 오히려 [붉은 수수밭]에서 [홍등]에 이르는 그의 초기작들이 훨씬 자신에 솔직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위적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분명한 개성이 새겨져 있었지요. 그의 복고주의를 비판할 수도 있고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영화들은 분명 그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올곧음을 찾아낼 수 있는 작품들도 그런 영화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본국에서 끊임 없이 상영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건 굉장한 고통이었을테니까요.

그에 비하면 [귀주 이야기]니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과 같은 영화들은 무척 기회적이고 덜 솔직해 보입니다. 이 작품들에는 초기작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셀리니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한테서 빌려온 듯한 스타일들은 이 남자의 개성을 거의 완전히 지워버렸고요. 무엇보다 이들이 훨씬 체제순응적이며 검열관들에게 훨씬 잘 보일 수 있는 영화들이라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새 장예모 영화들은 어딘지 모르게 이가 빠진 듯 합니다.

웃기는 건, 제가 이렇게 이야기해놓고도 그의 후기작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국두]나 [홍등]은 아름다운 영화들이지만 저한테는 너무 과합니다. 멜로드라마의 정도가 제가 참아낼 수 있는 선을 넘었어요. 전 그 영화들을 자발적으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 같은 영화들은 수없이 반복해 볼 수 있지요. 귀엽고 가벼우며 소화하기 쉬우니까요.

[집으로 가는 길]은 어떤 영화일까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70년대 새마을 운동 선전 영화에 [내 마음의 풍금]을 섞어놓은 것 같습니다. 40년동안 시골 학교에서 교사로 일해온 아버지가 죽자 외지에서 살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장례 준비를 하면서 아들은 50년대 말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났던 무렵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줍니다. 흑백으로 처리된 현대 부분은 인생을 시골 아이들에게 바친 한 교사의 삶을 찬양하는 새마을 운동 이야기입니다. 칼라로 처리된 과거 부분은 복고풍의 로맨스로 처리된 부모의 연애담이고요. 칼라와 흑백 사용이 뒤바뀐 것 같지만 사실 제대로 쓰인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웠던 과거에 대한 회상을 그린 영화니까요.

새마을 운동 파트에 대해 냉소적으로 굴지 않겠습니다. 40년 동안 시골 아이들을 위해 몸을 바친 교사의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회고되고 예찬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짜 빛을 발하는 부분은 과거 회상 장면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요. 아직 모든 게 단순하기 그지 없던 시절에 온갖 촌스러움으로 무장한 시골 소녀가 새로 온 선생님에게 짝사랑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회고적이죠. 요새 약은 젊은이들은 절대로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을테니까요. 버섯 만두와 못으로 맞춘 깨진 그릇, 촌스런 플라스틱 머리핀, 창호지에 붙인 붉은 색종이 장식과 같은 사랑의 징표들은 21세기의 경계를 사는 최첨단의 우리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과거 부분의 핵심은 역시 장쯔이의 신선하고 귀여운 연기입니다. 이 사람의 존재감이 영화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죠. 사실주의 영화의 터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국 장래성 있는 배우의 스타 파워에 의존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해외에서 관객들을 끈다면 그건 장예모 때문이 아니라 장쯔이 덕일 겁니다.

장쯔이의 비중이 너무 커서 새마을 운동 파트가 조금 위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답니다. 사랑에 빠진 귀여운 소녀의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는 게 핵심인 영화면서 진지하고 심각한 어조로 교사 예찬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이런 위선적인 결합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관객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겠지만요. (00/11/18)

DJUNA

기타등등

다들 시골집 방구석에 붙어 있는 [타이타닉] 포스터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분명 지구가 좁아지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