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주연
엠마 수아레스....리사
Emma Suárez....Lisa
난초 노보....호타
Nancho Novo....Jota
마리아 바란코....카르멘
María Barranco....Carmen
카라 엘레할데....안톤
Karra Elejalde....Antón
카르멜로 고메스....펠릭스
Carmelo Gómez....Félix
수산나 가르시아 디에스....엘리
Susana García Díez....Eli
안네 산체스....크리스티나/소년
Ane Sánchez....Cristina/Boy
체테 레라....살바도르
Chete Lera....Salvador

펠릭스, 리사, 호타

변심한 애인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 호타는 우연히 같은 자리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하게 됩니다. 여자는 사고 때문에 기억을 잃고 그는 애인인 척 굴며 그 여자를 '붉은 다람쥐'라는 캠프촌으로 데려갑니다. 하지만 과연 그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정말 기억상실증 환자이기는 한 걸까요?

[붉은 다람쥐]는 훌리오 메뎀 버전 [현기증]입니다. 메뎀 같은 사람이 [현기증]의 영향을 받은 영화를 경력 어느 부분에 만들었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중요한 건 그 위치인데, 이 영화는 처녀작 [암소들]과 메뎀 특유의 독특한 세계가 구체화된 [대지] 사이에 만들어졌습니다. 비교적 정통적인 장르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한 젊은 감독이 하나의 스타일에서 다른 스타일로 이동하는 전환 과정인 셈이죠.

[현기증]이 그랬던 것처럼 [붉은 다람쥐]도 한 남자의 그렇게까지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호타는 기억을 잃은 한 여자를 자기를 버리고 떠난 애인 대용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애인 이름을 붙여 주고, 그들의 가짜 연애담을 만들어내고... 물론 당연히 그의 게임엔 역풍이 따릅니다. 그가 장난감으로 삼은 여자가 보기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죠.

비교적 정석적인 내용이지만, [붉은 다람쥐]는 줄거리 이상을 담고있는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사이코 스릴러를 표방하는 공식적인 설정과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분위기가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시치미를 뚝 뗀 코미디이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환상물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종종 모순되는 요소들을 별다른 이유없이 병치시키며 엉뚱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보기엔 평범하고 살짝 희극적인 식사 장면에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서스펜스 넘치는 음악을 깔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식이죠. 여자 주인공 리나 역시 기억상실증에 걸린 정체불명의 여인이라는 핑계를 대고 그런 예측불가능성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이 너무 재미있어서 오히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설명되는 결말이 맥빠질 지경이에요.

동기가 참으로 불순하긴 하지만, 영화는 메뎀식 운명적 로맨스이기도 합니다. [붉은 다람쥐]는 [현기증]처럼 냉정한 영화는 아닙니다. 호타는 고생을 꽤 하긴 하지만 장난의 '벌'을 받는 정도는 아닙니다. 대신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이 사전에 계획된 로맨틱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암시를 상당히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결국 이건 호타의 책임은 아닌 거죠. 아니, 어느 누군가의 책임도 아닌 겁니다. [붉은 다람쥐]에서 캐릭터의 자유의지는 비교적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우연과 본능을 핑계로 대며 그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얄미운 세계의 희생자일 뿐이죠.

[붉은 다람쥐]는 가장 안전한 메뎀 영화입니다. [암소들]처럼 혼란스러운 예술 영화도 아니고 [섹스와 루시아]나 [북극의 연인들]처럼 괴상한 로맨스도 아니지요.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으니, 장르 공식 위를 구렁이처럼 감싸안은 메뎀 특유의 매력은 이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04/12/20)

DJUNA

기타등등

난초 노보가 남자 주인공 호타를 연기하고 있지만 카르멜로 고메스는 여전히 이 영화에도 나옵니다. 리사를 쫓는 수수께끼의 남자역으로요. 메뎀의 영화에서 엠마 수아레스와 고메스는 편하게 연애를 해본 적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