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 * * * 1/2

감독
조지 큐커 George Cukor

주연
캐서린 헵번....트레이시 로드
Katharine Hepburn....Tracy Lord
제임스 스튜어트....매컬리(마이크) 코너
James Stewart....Macaulay (Mike) Connor
케리 그랜트....C.K. 덱스터 헤이븐
Cary Grant....C. K. Dexter Haven
루스 허시....엘리자베스 (리즈) 임브리
Ruth Hussey....Elizabeth (Liz) Imbrie
존 하워드....조지 키트리지
John Howard....George Kittredge
롤랜드 영....윌리 삼촌
Roland Young....Uncle Willie
존 홀리데이....세스 로드
John Halliday....Seth Lord
메리 내시....마가렛 로드
Mary Nash....Margaret Lord
버지니아 웨이들러....다이나 로드
Virginia Weidler....Dinah Lord
헨리 다니엘....시드니 키드
Henry Daniell....Sidney Kidd
라이오넬 페이프....에드워드
Lionel Pape....Edward
렉스 에반즈....토머스
Rex Evans....Thomas

1930년대 말 캐서린 헵번의 상황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38년에 나온 [홀리데이]의 성공으로 간신히 숨이 트이는 것 같던 커리어는 그 뒤에 이어졌던 하워드 혹스의 걸작 [Bringing Up Baby]의 처절한 실패로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었지요. 게다가 별로 좋지 못한 때에 스튜디오를 옮기는 실수를 해서 평판 역시 떨어지는 판이었습니다.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간 헵번은 그곳에서 다시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필립 베리의 연극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바로 헵번을 위한 계단이었습니다. 사실 이 연극의 주인공 트레이시는 헵번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었습니다. 트레이시의 차갑고 조금은 무서운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이 헵번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따라서 이 연극은 헵번에게 이중으로 유리한 작품이었습니다. 연기 자체의 질로 커리어 복귀를 시도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이시가 인간적인 면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재구축할 수 있었으니까요. 헵번은 제작비의 25퍼센트를 댔고 연극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다시 할리우드로 향했습니다. 헵번은 거의 모든 부분에 손을 댔습니다. 감독, 주연 배우, 각본가 모두 헵번이 고른 사람들이었지요. 결과는? 모든 기록을 깨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영화는 아카데미 6개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스토리. 필라델피아의 어마어마한 부자집 딸인 트레이시는 음주벽이 있는 남편 덱스터와 이혼합니다. 2년 뒤, 트레이시는 자수성가한 탄광회사 이사인 조지 키트리지와 결혼하려고 하죠. 덱스터는 트레이시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십 잡지인 [스파이]의 잠입 취재를 돕게 됩니다. 여기에 기자 커플인 매컬리 코너와 엘리자베스 임브리가 말려들지요. 당연히 덱스터는 트레이시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았고 또 매컬리 역시 트레이시에게 묘한 애정의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복잡해집니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멋진 스크루볼 코미디입니다. 빠르고 민첩한 대사와 번쩍이는 캐릭터들을 훌륭한 배우들이 정신없이 집어던지는 작품이지요. 심지어 말더듬이로 유명한 제임스 스튜어트도 이 영화에서는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러브 스토리로서도 재미있는데, 아마 그건 사건의 주축을 이루는 트레이시와 매컬리의 관계가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트레이시가 덱스터와 다시 맺어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매컬리와 엘리자베스가 등장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우린 그들 역시 서로를 위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도 트레이시와 매컬리의 관계는 상당한 진척을 보입니다. 덱스터와 엘리자베스는 조지처럼 소모품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뻔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자극적이지요.

그러나 전 이 작품에 아주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스토리 일부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트레이시가 여신에서 인간으로 떨어지는 과정에는 어딘지 모르게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느낌이 묻어 있습니다. 게다가 그 '여신'의 비유는 정작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트레이시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맞는 편이 아닙니다. 트레이시는 차갑기만 한 존재는 절대로 아니니까요. 자연인 헵번의 이미지 상승에는 도움을 주었을지 몰라도, 억지로 삽입된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교훈을 끌어가는 과정의 일부는 특별히 기분이 나쁜데, 바로 트레이시의 형편없는 아버지의 등장이 그렇습니다. 아내를 버린 난봉꾼이면서 어처구니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을 딸 책임으로 돌리는 이 구역질나는 남자는 끝까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것만 가지고도 짜증이 나는데 막판에 트레이시는 아버지에게 용서까지 구한답니다!

원작자인 필립 베리는 전작인 [홀리데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진지한 교훈을 끌어들이고 해결까지 보려는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선 계급 갈등이 등장합니다. 부유층인 덱스터와 트레이시, 자수성가한 조지, 중산계층의 직업인인 매컬리와 엘리자베스로 구분된 인물구도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교훈은 거의 의미가 없어서 ("계급이 사람 성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의 교훈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들은 쉽게 용서가 되는 듯 합니다. 어거지치고는 힘이 없고, 헵번, 그랜트, 스튜어트가 빚어내는 앙상블이 이 모든 것들을 커버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이 세 배우들처럼 번뜩이는 위트와 매력으로 장식된 잘생긴 작품입니다. 너무 미끈하고 잘생겨서 단점 따위는 그냥 눈감아 주고 싶어요. (00/08/20)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그레이스 켈리,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내트러 주연으로 [상류사회]라는 뮤지컬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