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이메 데 아르미냔 Jaime de Armiñán

주연
엑토르 알테리오....돈 알레한드로
Héctor Alterio....Don Alejandro
아나 토렌트....고이타
Ana Torrent....Goyita
루이스 폴리티....돈 엘라디오
Luis Politti....Don Eladio
아구스틴 곤잘레스....경사
Agustín González....Sargento
파트리시아 아드리아니....마리사
Patricia Adriani....Marisa
마리아 루이사 폰테....암파로
María Luisa Ponte....Amparo
메르세데스 알론소....메르세데스
Mercedes Alonso....Mercedes
마우리치오 칼보....세사르
Mauricio Calvo....César

1.

동네 괴짜로 소문난 홀아비 알레한드로 노인은 어느날 숲 속에서 새 깃털과 시구로 이루어진 일련의 보물찾기 단서들을 발견합니다. 단서들의 끝은 학교에서 레이디 맥베드를 연기하는 13살 소녀 고이타에 닿아있었어요.

고이타에게 매료된 알레한드로 노인은 그녀와 기묘한 우정을 쌓아갑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알레한드로 역시 조숙한 13살짜리 아이에게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는데...

2.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저도 완전히는 모릅니다. 알레한드로가 고이타에게 매료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13살 짜리 소녀와 사귀면서 그는 시들어가는 자신 속에 아직 남아 있던 정열을 발견했던 것이죠. 그가 이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이타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아마 그 동네에서는 그나마 지적이고 말이 통하는 상대인 알레한드로 노인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갑갑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해방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요. 그 아이의 따분하고 폭압적인 가족을 대체할 새 아버지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이타가 보여주는 알레한드로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이타는 매력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체불명인 존재로 남습니다. 조금 무섭기까지 해요.

동기야 어떻건, [둥지]는 열정적인 러브 스토리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의 관계에는 섹스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영화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섹스는 열정에 꼭 필수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섹스가 개입되어 있건, 없건, 고이타에 대한 알레한드로의 집착은 여전히 충분히 위험하고 강렬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플라토닉한 관계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정신적 유대감'의 증거를 뿌려놓습니다. 특히 새 둥지와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중요한 연결고리지요. 영화는 그들만의 고상한 취미를 앞에 내밀면서, 이들의 고상함이 그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플라토닉'한 사이는 아닙니다. 그들의 관계는 분노와 질투, 망집 그밖의 다양한 연인들의 폭풍우 같은 감정에 잠겨 있습니다. 환갑을 넘긴 노인네가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지요. 마지막의 비극적 결말로 알레한드로를 몰아붙인 것도 그의 예스러운 기사도 정신이나 로맨티시즘이 아닐 겁니다. 단지 그의 심장이 그런 폭풍을 견디기엔 너무 늙었던 것이겠지요.

3.

엑토르 알테리오는 흥미진진한 배우입니다. 적어도 그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과 노인네의 성숙함을 뒤섞는 걸 보는 건 재미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노인네가 그냥 앉아있어도 화면이 극적이 됩니다. 그가 캐릭터의 젊은 심장과 늙은 정신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강한 긴장감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13살의 아나 토렌트 역시 캐릭터의 모호함을 극복할 만큼 좋습니다. 어린아이 시절의 토렌트를 그토록 매력적이게 했던 비극적인 순진함은 보다 복잡하고 어두우며 위험한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13살의 피곤한 나이는 아직 앳된 얼굴에 낙인처럼 찍혀있고, 변성기를 막 넘겼는지 스페인 여성 특유의 그 비극적인 어조로 변한 낮은 목소리는 종종 주문을 거는 듯 합니다.

습관적이지만, 이번에도 토렌트의 캐릭터를 스페인 현대사의 궤적 어딘가에 끼워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뭐, 역사책과 프로이트를 뒤섞어 대충 반죽하면 가능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내버려 두렵니다.

4.

하이메 데 아르미냔의 각본과 연출에는 반쯤은 동의하고 반쯤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가 두 캐릭터를 한 화면에 놓고 스파크를 일으킬 때 영화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가 화면을 꾸미고 둘의 관계를 장식하려고 마음먹으면 영화는 가식적으로 변합니다. [둥지]는 종종 이런 진실성과 가식 사이를 요요처럼 오가기 때문에 질이 고르지 못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깃털 꽂힌 쪽지들을 발판삼아 어린 레이디 맥베드의 얼굴로 접근해가는 도입부는 그 작위성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입니다. 영화의 핵심인 로맨스는 충분히 강렬합니다. 토렌트의 틴에이저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요. 이 정도라면 저는 나머지 가식은 충분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99/12/11)

DJUNA

기타등등

아나 토렌트는 이 영화로 그해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