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디 워쇼스키 Andy Wachowski
래리 워쇼스키 Larry Wachowski

주연
키아누 리브즈....토머스 앤더슨/네오
Keanu Reeves....Thomas Anderson/Neo
로렌스 피시번....모르페우스
Laurence Fishburne....Morpheus
캐리-앤 모스....트리니티
Carrie-Anne Moss....Trinity
휴고 위빙....스미스 요원
Hugo Weaving....Agent Smith
글로리아 포스터....신탁
Gloria Foster....Oracle
조 판톨리아노....사이퍼
Joe Pantoliano....Cypher

[매트릭스]의 줄거리를 소개한다는 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그만큼이나 자주 다루어진 이야기니까요. 사악한 AI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수퍼 영웅이 싸웁니다. 그게 다예요.

물론 여기에 약간의 디테일이 붙여집니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계는 사실 AI가 만든 가상세계라는 거죠. 이것도 특이할 건 없습니다. 많이 쓰여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22세기이면서 20세기 말로 위장한 가상세계라는 설정은 어떨까요? 역시 드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모르페우스(그가 '잠을 깨우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칼한 이름이죠?)가 네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부분들이 그렇게 장황해보이는 거죠.

사이버펑크를 넘어서면, 조셉 캠벨에 신약성서를 믹스한 듯한 메시아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신기할 건 없습니다. 메시아 이야기야 SF 작가들이 즐겨 남발하는 소재니까요. 하인라인의 [스트레인저]에서부터 프랭크의 [듄]까지 끝도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기독교적 코드를 읽어내는 것도 너무 손쉬워서 거의 재미가 없을 지경입니다. 세례 요한, 유다의 배반, 부활, 트리니티나 시온과 같은 기독교적 고유명사의 남발... 모두가 두 손을 흔들며 '날 좀 보소!'라며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영화에 상당히 깊이 배어있는 듯한 동양적 요소는 어떨까요? 역시 드문 건 아니죠. 웬만한 사이버펑크물 독자라면 불교인식론에서 호접몽까지 뚫고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사이버펑크 물을 보고 호접몽을 끌어들이는 평론가를 보면 이제 싫증을 넘어 짜증이 납니다. 정말이지 모두가 아는 이야기니까요. 그건 자신의 무식을 광고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려는 이야기가 뭐야? [매트릭스]가 그만큼 뻔한 영화라는 건가? 물론 그렇습니다. [매트릭스]는 뼛속까지 안전한 장르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는 그 규격화된 내용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워쇼스키 형제가 특화하고 싶었던 부분도 그쪽이었던 것 같고요.

그렇다면 스타일 면에서 [매트릭스]는 어떻게 특별할까? 사실 꽤 흥미진진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진짜 세계처럼 위장한 가상 세계는 특이할 게 없는 소재지만 그걸 비주얼로 다루는 방식은 나름대로 새롭습니다.

영화는 가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서투른 CG를 입히는 대신 물리법칙을 재구성합니다. 거의 인식의 전환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터들이 탈출하려고 하는 CG의 어색한 동작을 라이브액션 배우들한테 일부러 시키고 있으니까요. 프레임수의 조절, 플로우 모션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트릭들이 이런 사기를 위해 꽤 영리하게 쓰이고 있습니다(사실 플로우 모션은 좀 과용된 것 같지만 대충 용서해주렵니다.)

영화의 무술 장면도 비슷한 트릭입니다. 이 영화는 꼭 홍콩 영화를 흉내낸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짜로 흉내내고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 게임입니다. 특히 모르페우스와 네오의 쿵후 대련 장면을 보세요. 꼭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게임 중독자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손이 근질근질했을 겁니다.

대충 정리하면, [매트릭스]의 사기는 성공적입니다. 비주얼적인 면에서 새롭고 비현실적인 액션의 쾌감도 상당하며 가짜 세계를 흉내낸다는 아이디어 자체도 꽤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그에 비하면 본격적인 CG는 떨어지는 편입니다. 특히 실제 세계의 전함과 AI의 로봇이 벌이는 대결은 CG티가 너무 나서 묘한 느낌이 듭니다. 실제 세계가 가상 세계보다 더 CG처럼 보이니까요!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해서는... 글쎄요... 네오 패거리의 전형적인 사이버펑크 카우보이 복장이나 우중충한 배경은 너무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 좀 질립니다. 하지만 이건 서부극 주인공이 쓰는 카우보이 모자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배우들은? 가장 괜찮아 보이는 배우는 캐리-앤 모스입니다. 쿨해보이고 액션도 어울리는군요. 로렌스 피시번도 미래 세계의 세례 요한에 맞게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즈는 여전히 엉성하군요. 저런 애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니 정말로 불안합니다! 특히 그 어설픈 쿵후 장면은... 너무 웃겨!!!!!!!! :-D (99/05/17)

D&P

기타등등

아까 흔하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아이디어는 꼭 구체적인 일본 만화에서 따온 것처럼 보이는군요. 혹시 미래의 컴퓨터가 만든 1980년대 가상 세계를 무대로 주인공이 치고박고 하는 내용의 만화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