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랜달 월래스 Randall Wallace

주연
가브리엘 번....다르타냥
Gabriel Byrne.... D'Artagnan
제레미 아이언즈....아라미스
Jeremy Irons.... Aramis
존 말코비치....아토스
John Malkovich....Athos
제라르 드파르디외....포르토스
Gérard Depardieu....Portho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루이 14세/필립
Leonardo DiCaprio....King Louis XIV/Philippe
안느 파리요....안느 왕비
Anne Parillaud....Queen Mother Anne
주디트 고드레슈....크리스틴
Judith Godrèche....Christine
에드워드 애터튼....앙드레
Edward Atterton....Lieutenant Andre
피터 사르스가드....라울
Peter Sarsgaard....Raoul

파프리카 어차피 뒤마가 철가면 이야기의 전매 특허를 낸 것도 아니고, 또 냈다고 하더라도 그의 버전을 멋대로 뜯어고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및 역사 뜯어 고치기는 상당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의 발발연도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까지 뒤바꾸어 놓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야기꾼은 뭐든지 할 권리가 있다고 대답할 생각이지요?

듀나 물론이죠.

파프리카 어떤 잘나가는 이야기꾼이 히틀러나 스탈린을 미화하는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만들어도요?

듀나 그렇다면 그 작품은 골수 나찌나 스탈린주의자들을 뺀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불쾌한 작품이 될 것이고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겠지요. 알겠어요?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당위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죠. 사자왕 리처드는 로빈 훗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겠지만 우리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로빈 훗 이야기가 워낙 강렬하고, 사자왕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야 사실 우리 알 바 아니니까요. 이야기가 흡인력 있고 우리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는 범위에서 왜곡이 이루어졌다면 그 모든 것들은 대충 받아들여지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역사 왜곡은 전에 나왔던 디즈니 판 [삼총사]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 영화에서 팀 커리가 연기한 리셜리외를 보고 열불이 터져 앓아누운 사람을 한두 명 아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철가면]은 그럭저럭 실제 역사를 많이 안 건드리고 넘어가고 있죠.

파프리카 연도를 뜯어고치고 루이 14세를 성군으로 만든 게 많이 안 건드린 거란 말이에요?

듀나 연도 문제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철가면의 탄생을 다룬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철가면의 죄수가 벌써 6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연도는 좀 늦추어질 수도 있는 거겠죠. 그렇다면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이 영화에 나오는 건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나요?

파프리카 하지만 1660년이라고 나왔단 말이에요. 그리고 역사 이상으로 원작을 많이 건드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걸요.

듀나 네, 하지만 너무 많이 건드려서 오히려 문제가 없는 것 같군요. 이 영화는 롤랑 조페의 [스칼렛 레터]와는 달라요. [스칼렛 레터]는 내용 자체가 강한 형이상학적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작품이어서 엉거주춤하게 고친다면 작품 전체가 균형을 잃고 불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가면]의 경우, 랜달 월래스는 철가면과 쌍둥이설, 삼총사와 다르타냥과 같은 기본적인 설정만 빌려와 완전히 딴 이야기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철가면] 자체가 순수한 이야기의 즐거움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고 이 영화도 그 이상을 의도하고 있지 않으니 [스칼렛 레터]에서 발생한 원작 왜곡의 끔찍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월래스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커졌지요. [철가면]이 실패한 영화라면 그것은 뒤마의 책임도 아니고 뒤마의 원작을 이상하게 바꾸어서도 아닙니다. 그건 월래스의 영화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죠.

파프리카 아하, 영화가 나쁘다는 걸 인정하는군요.

듀나 어떻게 그렇게 손쉽게 한 영화가 나쁘다, 좋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난 그렇게 못합니다. 이 영화도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섞여있어요.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욕만 해야 할 정도로 아주 나쁜 영화도 아니었어요.

파프리카 하지만 나에겐 영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가장 거슬렸던 건, 엄청나게 고약한 음모와 관련되어 있는 스토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정갈하게 주인공들이 표백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왕을 납치해서 쌍둥이 형제와 바꾸는 엄청난 음모가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정갈한' 것이었을까요? 당위성이 서지를 않아요.

원작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원작의 아라미스는 영화의 아라미스보다 훨씬 복잡한 음모가였고 우리의 순진한 다른 주인공들은 음모에 가담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심리묘사가 엉망이라는 말을 듣는 뒤마지만, 적어도 뒤마의 캐릭터들은 그들답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복잡한 음모와 결백한 주인공들을 뒤섞는 말도 안되는 짓으로 이야기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듀나 왕을 지독한 악당으로 만들면 사정은 나아지지요.

파프리카 못된 쌍둥이/착한 쌍둥이의 구식 트릭을 잘 썼다면 나았겠죠. 하지만 그렇지도 못했잖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일인이역은 이 영화에서 가장 형편없는 부분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런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사실적인 캐릭터가 아닙니다. 특히 이런 쌍둥이 트릭의 경우, 그 대조가 강조될수록 영화는 나아지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악한 왕도 어정쩡하고 희생자인 형도 어정쩡합니다. 둘이 만나는 후반부의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데, 그건 결국 재미없는 역을 하는 재미없는 배우를 그대로 한 번 복사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듀나 하지만 원작의 루이와 필립은 영화 속의 루이와 필립보다도 덜 대조적인 사람들이었죠.

파프리카 하지만 원작은 영화처럼 이분법으로 일관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아라미스나 루이 14세, 푸케(영화에는 등장도 하지 않습니다만)같은 사람들은 모두 선악 어딘가의 경계에 서있으며 사실 원작의 재미도 그 경계에서 빙빙 돌아가는 음모와 갈등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세계는 완벽하게 선악으로 이분되어 있으므로 설정 자체를 버리지 않는 한 쌍둥이들은 그 설정에 복종해야 한단 말입니다. 내 말 틀렸어요?

듀나 맞아요, 맞아요. 하지만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아무리 밋밋해도 왕은 '악당'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 '악행'도 어느 정도 각본에 나타나 있으므로 관객들은 어느 정도 과격한 음모도 대충 용납할 겁니다. 영화 속의 아라미스가 끊임없이 '무혈 혁명'을 강조하는 것도 나름대로 거창한 당위성을 세우기 위해서겠죠.

나는 이 작품의 문제점이, 당위성 결여보다 방만한 각본에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스토리에 130분은 너무 깁니다. 영화는 거의 1시간이 넘어가야 간신히 본궤도에 오르는데, 이건 정말 시간 낭비라고밖에 할 수 없죠. 그 때문인지 엄청나게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는 시간에 쫓겨 스토리 나열 이상은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그 덕택에 이런 장르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액션 장면 같은 건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죠. 시간을 먹고 사는 영화 같은 장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시간 낭비는 죄입니다. 월래스는 바로 그 죄를 저질렀어요.

파프리카 거의 소프 오페라와 같은 사건 전개는 어떻고요? 크리스틴-라울-루이의 삼각 관계는...

듀나 전형적인 다윗과 바세바 이야기죠. 엉성하게 다루어진 이야기지만 설정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요.

파프리카 그럼 '루이와 필립이 사실은 누구의 아이다' 어쩌구 저쩌구의 설정은?

듀나 지독한 소프 오페라죠. 하지만 다르타냥의 마지막 결정을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역할을 합니다. 자꾸 당위성 당위성 하니까하는 말입니다만. 마지막에 다르타냥이 죽는 상황은 어때요? 그것도 상당히...

파프리카 그런데 참 오래간만에 주인공이 죽는 걸 본 것 같아요. 월래스는 이전에도 [브레이브 하트]에서 영웅의 죽음을 다루었지만, 반들거리는 해피엔딩만 설치는 요새엔 꽤 신선하게 보입니다.

듀나 그래도 이 영화는 상당한 해피엔딩이죠. 왕도 성공적으로 바뀌고 다르타냥만 빼면 다 살았잖아요? 원작은 훨씬 어두웠죠. [철가면]의 원작은 어딘가 삼국지의 마지막 판을 생각하게 합니다. 영리한 아라미스만 빼면 우리의 주인공들은 다 안 좋게 죽으니까요.

하지만 헐리웃 장르 영화에서 그런 결말을 다루기는 힘들겠죠. 헐리웃 장르 영화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장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원작의 그런 결말들도 소설 3부작을 다 읽은 사람들에게나 받아들여질 뿐, [철가면] 파트만 각색한 독립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둡게 느껴질 겁니다. 이 정도 해피엔딩은 그럭저럭 적절한 것 같아요.

파프리카 삼총사 역의 세 배우나 다르타냥 역의 가브리엘 번은 모두 꽤 그럴듯하게 역을 소화해내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최상의 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모두 기본기가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게다가 이미지도 대충 맞고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너무 밍밍해요. 게다가 [타이타닉]에서 물을 먹은 게 안 빠졌는지 너무 살쪘어요. 살쪄서 어울리는 사람도 있지만 걔는 영 아니에요.

듀나 괜찮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이기는 하죠. 하지만 영국인,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미국인들이 부글거리는 난잡한 캐스팅은 매우 변덕스러운 결과를 창출해내는데, 그 결과가 결코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악센트가 모두 다르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게다가 삼총사와 다르타냥을 뺀 주변 배우들 중 상당수가 낭비되었어요. 예를 들어 안느 파리요나 주디트 고드레슈같은 배우들에게서 뭔가 더 끄집어 내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결론지어 말하죠. 랜달 월래스의 첫 영화는 지독한 실패작은 아니지만, [브레이브 하트] 때문에 간이 부었는지 지나치게 방만하게 나가는 통에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게 만지지 못하고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감독작만 가지고 그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좀 더 기다려 볼 일입니다.

파프리카 옛날 에롤 플린 영화들이 그립군요. 구식 헐리웃 영화에 대한 향수를 되살리게 한 것이 이 영화가 저에게 한 일의 전부일 겁니다. (98/04/05)

D&P

기타등등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로 그 해 라즈베리상 최악의 '커플' 상을 수상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