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이브 The Lady Eve (1941) * * * *

감독
프레스턴 스터지스 Preston Sturges

주연
바바라 스탠윅....진 해링턴
Barbara Stanwyck....Jean Harrington
헨리 폰다....찰스 파이크
Henry Fonda....Charles Pike
찰스 코번.....해리 해링턴
Charles Coburn....Harry Harrington
유진 팔렛....호레이스 파이크
Eugene Pallette....Horace Pike
윌리엄 디마스트....먹시
William Demarest....Muggsy
에릭 블로어....알프레드 맥글레넌 키스 경
Eric Blore....Sir Alfred McGlennan Keith
멜빌 쿠퍼....제랄드
Melville Cooper....Gerald
마사 오드리스콜....마사
Martha O'Driscoll....Martha
자넷 비처....자넷 파이크
Janet Beecher....Janet Pike
로버트 그레이그....버로우즈
Robert Greig....Burrows
도라 클레멘트....거트루드
Dora Clement....Gertrude
루이스 알베르니....에밀
Luis Alberni....Emile

찰스와 진
[레이디 이브]는 40년대에 나온 가장 유명한 스크루볼 코미디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히스 걸 프라이데이]나 [필라델피아 스토리]와 같은 보다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들과 비교하면 순수한 장르의 느낌은 적죠. 많은 사람들은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구체적인 장르명 대신 로맨스 코미디라는 보다 막연한 표현을 더 안심하고 쓸 겁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죠. 순수한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 영화지만 일종의 하드보일드한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감정은 위트와 액션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며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극단적인 코미디언의 기질을 가지고 있죠.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부분이 속사포처럼 쏟아대는 대사를 통해 전개되고요.

[레이디 이브]에도 기본적인 스크루볼 코미디가 가진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설정, 남녀 주인공들의 성전쟁, 위트 넘치는 대사들... 하지만 프레스턴 스터지스는 이 모든 것들을 비교적 느긋하게 펼쳐놓습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은 종종 특별히 코믹한 처리 없이 상당히 깊이 다루어지며 노골적인 할리우드 스테레오타입인 주인공들은 종종 필사적으로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명에 잘 맞는 영화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그것보다 조금 더 넓은 명칭을 쓰고 싶게 되죠.

[레이디 이브]의 주인공은 삼인조 카드 사기 도박단의 일원인 진 해링턴입니다. 아버지 해리와 함께 여객선 1등실에 머물며 희생자를 물색하던 그녀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백만장자의 아들 찰스 파이크를 점찍습니다. 장르 관습상 그녀는 당연히 찰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찰스의 보디가드 겸 하인인 먹시가 그녀의 정체를 폭로하자 실망한 찰스는 진을 떠나고 말죠. 상심한 진은 영국의 귀족 부인 레이디 이브로 변장해 돌아와 그를 다시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레이디 이브]와 다른 스크루볼 장르 코미디의 차이점 중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두 남녀 주인공들이 펼치는 일대일의 언어 전쟁인 이 장르의 다른 영화들와는 달리,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찰스는 철저하게 무력합니다. 그는 둔하고 순진하고 고지식하고 성적으로 무력합니다. 이 장르의 다른 영화에서라면 여자 주인공이 중간에 차버리는 제3자 역을 할 만한 사람이죠.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는 피해자입니다. 그는 진이 파놓은 모든 함정에 빠지고 정말로 끊임없이 넘어집니다. 그는 진에게 성적으로도 깔려 있습니다. 진과 가까이 있을 때 그는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일 정도거든요. 정신이 멍해지고 식은 땀을 흘리고 눈의 촛점을 잃고 균형 감각이 없어지고...

그 결과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여자 주인공 진 해링턴에게 집중됩니다. 진은 할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이며 모순적인 존재 중 한 명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팜므 파탈이면서도 로맨틱한 여자 주인공이고, 정신없는 코미디언이면서도 심각한 연인이며,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사기꾼이면서도 이 영화에서 자기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이 캐릭터가 가진 관습 파괴자의 매력은 종종 찰스가 속해 있는 부르조와 세계의 냉담한 편견과 스노비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읽힐 지경입니다. 하긴 여기서 진이 찰스에게 가르치려는 교훈도 그런 것이겠지요. 세상이 찰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흑백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이 영화가 철저하게 범죄자들의 시점을 따라가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스터지스의 다른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레이디 이브]는 스타일 면에서 비교적 절제된 영화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의 완벽함을 눈치채기가 오히려 힘든 영화이기도 하죠. 이 영화의 교활할 정도로 완벽한 페이스나 안정된 비주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여러 번 영화를 봐야 할 겁니다.

그래도 영화는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관객들이 가장 먼저 기억해내는 장면은 진이 구두를 신겨주는 찰스를 유혹하는 장면일 거예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이후 여자 배우의 다리를 가장 잘 활용한 장면 중 하나라고들 하죠. 조금 더 배우의 연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미디엄 숏으로 고정된 카메라가 3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진의 유혹 장면을 들지도 몰라요. 진과 찰스, 해리가 카드 게임을 방패로 벌이는 신경전과 가짜 레이디 이브인 진에게 찰스가 구애하는 장면의 코믹한 설정 역시 쉽게 잊기는 힘들죠. 모두 스터지스의 각본가로서의 재능과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물밑에서 치밀하게 결합된 결과입니다.

배우들은 더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일단 찰스 역을 연기한 헨리 폰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아마 그의 유일한 코미디 연기일텐데, 자신의 진지한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찰스를 철저한 바보로 만드는 그의 테크닉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의 무덤덤한 연기와 요란한 슬랩스틱의 결합도 한마디로 놀라워요.

그러나 헨리 폰다가 아무리 잘해도 이 영화는 바바라 스탠윅의 영화입니다. 놀랍게도 스탠윅에게도 이 영화가 첫번째 코미디예요. 사실 이 영화가 나온 것도 스터지스가 스탠윅에게 괜찮은 코미디 각본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스탠윅은 그 해에 [Ball of Fire]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지만 진짜 후보에 올라야 했던 작품은 [레이디 이브]예요. 스탠윅은 이 영화에서 정말 휘황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발랄한 영국 귀족 부인에서부터 솔직담백한 카드 도박꾼까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만 해도 웬만한 배우 프로필 하나를 다 채울 정도고요. 그런 외적인 측면도 훌륭하지만 상처받은 연인의 진솔한 고통과 뻔뻔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결합시키는 보다 미묘한 연기 역시 기억될만합니다. (02/04/05)

DJUNA


기타등등

제 크라이테리언 DVD는 메뉴 부분에서 조금 덜컹거리더군요. WinDVD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PowerDVD에서는 읽지를 못하고 DVD 플레이어에서는 메뉴 그래픽이 보이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