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셉 L. 맨키비츠 Joseph L. Mankiewicz

주연
진 티어니....루시 뮤어
Gene Tierney....Lucy Muir
렉스 해리슨....다니엘 그렉 선장
Rex Harrison....Capt. Daniel Gregg
에드나 베스트....마사 허긴즈
Edna Best....Martha Huggins
조지 샌더즈....마일즈 페얼리
George Sanders....Miles Fairley
나탈리 우드....안나 뮤어 (아역)
Natalie Wood....Anna Muir as a child
바네사 브라운....안나 뮤어 (성인)
Vanessa Brown....Anna Muir as adult
안나 리....페얼리 부인
Anna Lee....Mrs. Fairley
로버트 쿠트....쿰 씨
Robert Coote....Mr. Coombe
이자벨 엘솜....안젤리카
Isobel Elsom....Angelica
빅토리아 혼....에바
Victoria Horne....Eva

1.

많이들 그러잖아요, "요새 영화는 옛날 같지 않아." 대부분 이런 한탄은 옛 스튜디오 시대의 헐리웃 영화에 대한 낡은 향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이 있는 말도 아니고 정곡을 찌르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당연하죠. 우리가 지금도 예전처럼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정체'니까요. 툭하면 '추억의 영화'를 들먹이는 옛 영화팬들(특히 지금은 사라진 모 영화 음악 프로그램의 아무개씨)한테 가끔 짜증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인가봐요.

그러나 이런 낡은 영화들을 보며 지금은 사라진 클래식 헐리웃 영화의 정취를 느끼는 것은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입니다. 요새도 훌륭한 영화는 많지만 그 영화들이 당시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순수한 로맨티시즘이나 구식 연기의 매력까지 물려받은 것은 아니니까요.

2.

[유령과 뮤어 부인]은 한창 초현실적인 로맨스가 유행이던 194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습니다. 스토리 역시 지극히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죠. [유령과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영화의 기본 틀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죠? 여기서도 크게 어긋나 있지 않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남편을 잃은 루시 뮤어는 귀찮은 시댁 사람들을 떠나 와이트클리프라는 해변 마을에 있는 걸 코티지라는 집으로 이사를 오는데, 하필이면 그 집엔 그렉 선장이라는 유령이 살고 있었죠. 루시와 그렉 선장은 티격태격하는 동안 점점 정이 들고 선장은 루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책까지 하나 써 줍니다. 물론 정석대로 이들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동화 작가 마일즈 페얼리가 루시의 삶 속으로 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나머지 스토리를 몽땅 밝히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가 '삶을 선택하라'라는 적극적 구호를 외치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삼각 관계의 끝에 서 있는 마일즈 페얼리 역을 조지 샌더즈가 했다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죠!) '죽음으로 완성된 사랑' 따위에 쓸려갈 만큼 대책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를 끝맺는 것은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수준의 만족스러운 로맨티시즘입니다.

이런 식의 영화는 공허해지기 쉽습니다. 통설과는 달리 로맨티시즘은 허공에 뜨면 안됩니다. 우리의 육체와 정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로맨티시즘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령과의 사랑'은 정말로 허공에 뜬 소재가 아닙니까?

영화는 두 캐릭터에 생생한 활력과 개성을 불어넣어 이 문제점을 극복합니다. 그렉 선장은 유령이지만 스크린 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는 툭하면 거친 선원 욕을 뱉어대는 무례한 다혈질 남자로,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게 응큼한 구석도 있습니다. (몰래 루시의 옷갈아 입는 광경을 구경하고 태평스럽게 몸매 칭찬해대는 장면 같은 걸 보세요! 무슨 유령이 이렇담!)

루시 역시 상심한 연인과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녀는 쪼들리는 가계와 아이를 걱정하는 현실적인 가정 주부로 역시 말싸움과 자존심 대결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씩씩한 여성입니다.

이런 두 사람이 티격태격거리는 영화의 도입부는 장난스러운 스크루볼 코미디의 양념이 묻어 있습니다. 필립 던의 유쾌한 각본은 그들의 인간적 결점을 재치있게 노출시키면서 서서히 자라나는 그들의 애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합니다.

페얼리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정신과 육체'가 대결하는 장이 됩니다. 영화는 그렉 선장의 장엄한 퇴장으로 '삶'에 편을 들어주는 것 같지만 그렇게 결말지어지지는 않죠. 이 영화가 손을 들어주는 것은 진정한 '소울 메이트'의 결합입니다.

우린 별 무리 없이 이 공상적인 결말을 받아들입니다. 루시와 그렉 선장이 잘 맞는 콤비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결말은 극도로 로맨틱하게 묘사되지만, 아마 둘은 그 뒤에도 툭탁거리며 시끄럽게 잘 지냈을 겁니다.

3.

렉스 해리슨의 허세 섞인 거창한 연기는 [유령과 뮤어 부인]의 중요한 엔진입니다. 무대 연기 경력이 잘 다져진 영국 배우답게 그는 이 허풍스러운 역을 놀랄만큼 진지하고 힘있게 연기해냅니다. 그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종종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질 만한 부분도 쉽게 구조됩니다. 대표적인 예는 잠든 루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늘어놓는 부분이겠지요. 해리슨이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 장면을 근사하게 끌어가지 않았다면 그 부분은 정말 우스꽝스러웠을 겁니다.

많은 진 티어니의 팬들에게 이 영화는 [로라]보다 소중합니다. 저 역시 로라보다는 루시가 더 좋습니다. 루시만큼 티어니의 가능성이 잘 발휘된 캐릭터는 없습니다. 티어니 특유의 아이스 퀸 이미지는 캐릭터의 생생한 현실주의에 의해 보완되고, 다른 감독들이 놓쳐 버렸던 이 배우의 따뜻한 로맨티시즘도 충분히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티어니는 찰스 랭의 흑백 화면 속에서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상복을 입고 있을 때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조지 샌더즈는 여기서도 그가 자주 연기했던 능구렁이와 같은 악당 역을 합니다. 캐릭터의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 잘해요.

나탈리 우드 팬은 주목하시길. 루시의 딸 안나로 나오는 꼬마가 바로 어린 시절의 나탈리니까요!

4.

이 영화의 화끈한 로맨티시즘에는 두 명의 공로자가 있습니다. 촬영 감독 찰스 랭과 작곡가 버나드 허먼이지요. 그들의 솔직한 로맨티시즘에 몸을 맡기다보면 정말 "요샌 이런 영화를 못 만들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정말 요즘 사람들은 쑥스러워서라도 이렇게 못 만들 거예요.

특히 허먼의 음악은 중요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이 영화를 처음 선택한 이유도 그 사람 때문이었거든요. 이 영화 음악을 엘머 번스타인이 다시 녹음한 CD가 나와 있으니 한 번 찾아보세요. (99/07/17)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원작은 조세핀 에이미 캠벨 레슬리라는 작가가 R.A. 딕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동명의 소설입니다. 원작도 읽어보았는데, 스토리랑 설정이 꽤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루시는 아이가 둘이지만 영화에서는 하나밖에 없죠. 마일즈 페얼리와의 만남도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개되고요.

전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좋습니다. 던의 각본이 원작보다 작위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캐릭터가 훨씬 호감가고 스토리도 마음에 들어요. 소설 속의 선장은 좀 짜증이 나요.

이 작품은 소설의 유일한 각색물이 아닙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트콤이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방영된 적 있어요. 이 시리즈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 아직 못 봤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