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Robert Rodriguez

주연
일라이저 우드....케이시
Elijah Wood....Casey
조르다나 브류스터....딜라일라 프로핏
Jordana Brewster....Delilah Proffitt
클리어 듀발....스토클리
Clea DuVall....Stokely
로라 해리스....메리베스 루이즈 허친슨
Laura Harris....Marybeth Louise Hutchinson
조시 하트넷....지크
Josh Hartnett....Zeke
숀 웨인 헤이토시....스탠
Shawn Wayne Hatosy....Stan
살마 헤이악....하퍼 간호사
Salma Hayek....Nurse Harper
팜케 잰슨....버크 선생
Famke Janssen....Miss Burke
파이퍼 로리....올슨 선생
Piper Laurie....Mrs. Olson
베베 뉴워스....드레이크 교장
Bebe Neuwirth....Principal Drake
로버트 패트릭....윌리스 코치
Robert Patrick....Coach Willis
어셔 레이몬드....게이브
Usher Raymond....Gabe
존 스튜어트....풀롱 선생
Jon Stewart....Mr. Furlong

1.

50년대 영화 속의 틴에이저들은 참 여러가지 일로 바빴습니다. 틈만 나면 변장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했지요, 미친 과학자들과 비밀 핵실험 때문에 사방에서 돌연변이 괴물들이 날뛰었지요, 보름달만 뜨면 같은 반 아이들이 늑대인간으로 변했지요...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어른들은 아무 것도 믿을 생각이 없었으니, 세계를 구할 사람들은 그네들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가 이 모양으로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50년대 B급 영화 속 틴에이저들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장성한 어른이 된 그들이 [패컬티]를 보았다면 얼마나 감개가 무량했을까요. MTV에나 정신이 팔려있을 줄 알았던 요즘 애들이 그네들의 뒤를 이어 용감하게 외계인들과 맞서 싸우잖아요.

2.

[패컬티]는 50년대 외계인 침략 영화의 90년대식 업데이트입니다. 정확히 말해 케빈 윌리엄슨 식 업데이트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경계를 그어보면 이 영화는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중간 쯤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데이빗 웩터와 브루스 캐멀이 쓴 것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굉장히 공식적이고 진부하기 때문이죠. 그들 없이도 이런 이야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진부함이 아니라 그 진부함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패컬티]가 공식 교과서로 삼고 있는 것은 [바디 스내처]입니다. 하지만 워낙 흔한 이야기였으니 곁가지도 많죠. 이 영화의 외계인은 [퍼펫 마스터] 쪽에 더 가깝고 서로를 외계인이라고 의심하다 약물로 정체를 확인할 때엔 [괴물 The Thing] 쪽으로 흘러갑니다. 이 모든 정보를 요약하고 법칙을 정리해주는 사람은 SF광 스토클리입니다. [패컬티]판 랜디인 셈이죠.

그러나 윌리엄슨은 [스크림]처럼 과격하게 나가지는 않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친구는 비평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장르 전통을 존중하는 작가입니다. 게다가 분노와 소외감이 가장 중요한 감정인 이 영화의 성격을 생각해보세요. 메타픽션으로 밀고 나갔다면 역효과가 났을 겁니다. 그는 꽤 적당한 위치에서 멈춘 셈입니다.

3.

그동안 세월이 흘렀으니 장르 공식이 발을 두고 있는 바탕도 바뀌었습니다. 50년대 영화의 기반은 핵전쟁과 냉전 시대의 편집증이었습니다. 하지만 [패컬티]에서 공포의 기반은 고등학교라는 '마음의 전쟁터'입니다 (알아요, 알아요! 앞으로 [MSCL] 인용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외계인 침입은 미국 틴에이저식 계급 차별과 소외, 공포와 같은 것들의 구체적인 은유가 됩니다. 혹시 못 알아차린 관객들이 있을까봐 윌리엄슨은 외계인 두목의 입을 빌어 그 연관성을 설명하는 긴 연설을 합니다.

[바디 스내처]에서 획일주의와 전체주의는 구체적인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패컬티]에서 획일주의 비판은 장르 공식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정받은 거대한 무리에서 소외당한 소수의 고립과 질투, 분노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의 제안은 상당히 유혹적이며 침략의 의도도 거의 애정과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선악 구분을 조금 더 흐릿하게 만들었으면 영화가 더 재미있어졌을 걸 그랬습니다.

4.

[패컬티]의 업데이트가 독창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심지어 케빈 윌리엄슨 식이라고 말하지도 않겠어요. 오히려 이 영화는 매우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우리나라에서는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로 그 시리즈 말입니다)]적입니다.

하긴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초자연적인 폭력물이 [버피]와 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시리즈가 안 건드린 게 없으니까요. 기생 괴물, 양서류 괴물, 괴물로 변한 교사 같은 건 [버피]를 다 한 번씩 거쳐간 소재들입니다. 틴에이저 물의 주제를 꿀꺽 삼킨 호러라는 아이디어는 이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심지어 캐릭터들도 닮았어요. 나중에 학교 '기크 geek' 중 한 명과 맺어지는 치어리더 딜라일라를 보세요. 코델리아의 [패컬티] 버전입니다.

[패컬티]는 [버피]만큼 그 업데이트를 충분히 달성했을까요? 글쎄요. 그러기엔 지나치게 장르 공식에 안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완벽한 해피엔딩은 사실 나름대로 핑계가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기크'들의 소망충족은 아주 중요한 요소니까요. 그러나 이런 맺음은 거창하게 던져 놓은 주제를 너무 간단하게 끊어버립니다.

이 점이 영화가 시리즈보다 불리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버피]는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틴에이저의 악몽을 끝없이 연장할 수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의 해피 엔딩은 사실 진짜 끝이 아닌 거죠. 그러나 [패컬티]는 그럴 여유를 부릴 수 없습니다. 엔딩 자체를 해치지 않으면 더이상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5.

이 영화에서 감독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이름은 정말 흐릿합니다. 윌리엄슨의 스타일이 로드리게즈를 먹어버린 거죠.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본을 썼던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사실 그건 시작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타란티노와는 달리 윌리엄슨은 로드리게즈와 궁합이 맞는 작가가 아닙니다.

타란티노의 각본에서 언어는 구체적인 액션이며 폭력의 수단입니다. 그의 스타일은 로드리게즈의 휘둘러대는 스타일 속에 쉽게 통합됩니다. 그러나 윌리엄슨은 분석적인 작가입니다. 그의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시각적 액션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윌리엄슨의 각본을 영화로 만들려면 로드리게즈도 자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사들을 들어내면 각본의 기반이 허물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윌리엄슨은 사실 텔레비전 쪽이 더 어울리는 작가입니다. [스크림] 이후 나온 윌리엄슨의 작품 중 [도슨즈 크릭]만큼 성공적이었던 극장용 영화가 있었습니까? (99/05/27)

D&P

기타등등

1. 윌리엄슨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예전에 써먹었던 이름이 다시 사용됩니다. 일라이저 우드가 연기한 케이시는 [스크림]에서 드루 배리모어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이름이 같습니다.

2. [패컬티]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이 영화의 괴물도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상식 따위는 무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괴물의 정체가 드러나는 후반부는 심해도 너무 심하더군요.

3. 스토클리는 실수를 하나 했습니다. [바디 스내처] 소설 버전에서 외계인은 지구를 정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