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지환

주연
박신혜....소연/효진
재희....현식
양금석....소연모
양진우....김선비
한여운....선영

소연

문제 하나 낼게요. 착한 여자애 하고 못된 여자애가 같이 물에 빠졌는데, 못된 여자애만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살아남은 애는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성격도 바뀌었네요. 한편 뭔가 수상쩍은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주변 사람들은 얼굴을 머리칼로 가린 물귀신에게 한 명씩 살해당해요. 영화 제목이 뭐게요?

[령]이라고요? 뭐 맞긴 하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의 내용이기도 해요.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고 그렇게 좋지도 않은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거죠. 물론 [령]의 설정도 그렇게까지 독창적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요? 그게 [령]의 작가들에 대한 것이건, 관객들에게 대한 것이건요.

이 이야기의 또다른 문제점은 [전설의 고향]이라는 제목을 달고 조선시대를 무대로 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쌍둥이들은 있었고 가끔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근대 이후 서구 대중 문화의 산물입니다. 현대나 유럽문화권에서 훨씬 더 잘 어울리고요.

제작진에서 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의 등장을 삽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여기서도 걸려 넘어집니다. 이 영화의 귀신은 사다코 클론이거든요. "사다코도 처녀귀신이잖아!"라고 백번 말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사다코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 협회의 회원일 뿐 전체는 아니죠. (게시판에서 타일님이 지적하셨듯이) 머리칼로 얼굴 전체를 덮고 눈 한쪽만 내민 채 기어나온다면 그건 사다코입니다. 오리지널 [전설의 고향]이나 6,7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 호러 영화들을 보시죠. 사다코처럼 하고 나오는 처녀귀신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물론 사다코도 효과가 좋다면 인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전설의 고향] 전통이라고 우기지 말란 말이에요. 차라리 드라큘라 이빨이라도 달고 나왔으면 전통을 따랐다고 인정해줄 수는 있어요. 옛날 한국 호러 영화에서는 처녀귀신들도 드라큘라 이빨을 달고 다녔으니까요. 그것도 해머 영화의 영향이긴 했지만.

영화는 그냥 흐릿하고 다 어디서 본 듯합니다. [령]에서도 가져왔지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몇 개 가져왔고 [장화, 홍련] 몇 개 가져왔죠. 근데 이것들이 참 비능률적으로 짜여졌습니다. 영화 보기도 전에 결말까지 알 수 있는 비밀들이 분위기 잡으면서 드문드문 등장하는 것도 짜증나고 공포효과들은 닳디닳았죠. 여기엔 장르팬의 총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냥 생기없이 인용만 해대고 있어요. 그렇다고 정보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의 효과도 떨어집니다. 우린 그냥 멀리서 주인공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을 뿐 감정이입을 하지는 못합니다.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고 동기가 완전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나름대로 눈물짜는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결말도 효과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기반이 제공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설정이 제시되어도 드라마의 맥락 안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거든요. 그냥 생뚱맞을 뿐입니다.

KBS에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리메이크 시리즈 말고 7,80년대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 몇 개를 골라 온라인에 푸시죠. 그래야 당시 진짜 [전설의 고향]이 어땠는지 요새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이렇게 집단적 기억상실을 치료해야, "난 [전설의 고향] 귀신이다!"라고 사기치고 다니는 사다코들을 쫓아버릴 수가 있겠죠. (07/05/14)

DJUNA

기타등등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장면들이 많더군요. 감독은 화면이 어두워서 디테일이 많이 날아갔다고 투덜거리고. 서울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면 그런 건 각오해야죠. 설마 모르고 거기서 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