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소니 밍겔라 Anthony Minghella

주연
레이프 파인즈....알마시
Ralph Fiennes....Almásy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캐서린 클리프턴
Kristin Scott Thomas....Katharine Clifton
쥘리에트 비노쉬....한나
Juliette Binoche....Hana
나빈 앤드류즈....킵
Naveen Andrews....Kip
윌렘 드포....카라바지오
Willem Dafoe....Caravaggio
콜린 퍼스....제프리 클리프턴
Colin Firth....Geoffrey Clifton
줄리안 워드햄....매독스
Julian Wadham....Madox
유르겐 프로크노프....뮐러 소령
Jürgen Prochnow....Major Muller
케빈 와틀리....하디
Kevin Whately....Hardy
클라이브 메리슨....페넬론-반즈
Clive Merrison....Fenelon-Barnes
니노 카스텔누오보....다고스티노
Nino Castelnuovo....D'Agostino

듀나 1939년, 영국 지질학회 회원이었던 제프리 클리프턴은 길프 카비르의 사막을 탐사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내 캐서린 클리프턴이 실종된지 얼마되지 않은 뒤였지요. 194-년 11월, 영국 지질학회에서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한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파프리카 뭐예요, 그러니까 [영국인 환자]가 실화라는 말인가요?

듀나 그런 거짓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상당수는 실존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클리프턴 부부나 알마시 백작 같은 사람들 말이지요. 그러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알마시는 영화에서보다 더 열렬한 나찌 동조자였고 게다가 동성애자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영화 속에 나오는 로맨틱한 연인일 가능성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군요. 그러니 등장인물들이 실존 인물이라고 해서 꼭 내용의 사실 여부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파프리카 흠. 그럼 영화 초반에 나오는 다른 지리학자의 동성애 암시는 실존인물 알마시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암시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요?

듀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파프리카 전 아직 마이클 온다체의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옆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영화는 원작과 상당히 다른 것 같더군요. 예를 들어 킵과 한나의 캐릭터는 원작에 비해 상당히 축소되지 않았습니까?

듀나 맞습니다. 일단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부터 열거해 보기로 하죠.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로맨스는 원작에서 그렇게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사건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자주 다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영화는 현대(그러니까 1945년의 이탈리아)를 과거(1930년대의 북아프리카)의 주석 쯤으로 만들고 있지만 소설에서 현대는 과거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과거가 중요시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중요성이 변화되었습니다. 원작에서 캐서린은 일종의 아름다운 과거의 망령과도 같은 존재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등장인물들 못지 않게 피와 살이 있는 생기발랄한 여성입니다. 대신 킵과 한나의 존재가 훨씬 간략해졌습니다. 킵이 축소된 것은 몇몇 [영국인 환자] 독자들에게 꽤 유감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 겁니다. 킵은 스리랑카 출신의 작가 온다체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고 원작에서 한 동양인의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배신감은 상당히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파프리카 그 핵폭탄 이야기도 없더군요. 킵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충격받는 장면이 있었다고 했죠? 그 때문에 산 지롤라모의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았나요?

듀나 비슷해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 '산 지롤라모 공동체'의 중요성이 약해진 것도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점이겠군요. 소설에서 빌라는 현실로부터 분리된 뭐랄까... 이상향은 아니더라도 꽤 아늑한 은신처로 묘사됩니다. 영화에서 그런 감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났던 장면은 비가 내릴 때 한나와 그 일행들이 영국인 환자를 끌어내는 부분입니다.

파프리카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적이기도 하고요. 영화는 곳곳에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이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내용 자체가 북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헝가리인과 영국인의 로맨스를 이탈리아의 빌라에서 캐나다인과 인도인에게 들려주는 형식이 아닙니까?

듀나 인도인은 빼죠. 킵은 듣는 사람이 아니니까.

파프리카 하여간요. 그리고 전쟁 전에 북아프리카로 몰려든 모험가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국경과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학문적인 이상으로 뭉쳐진 꽤 로맨틱한 공동체입니다. 매독스가 자살한 이유는 배신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쟁으로 그 로맨티시즘이 박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그는 정말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였습니다. "도세트에서 다시 만나세..." 쯧쯧쯔...

듀나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서구인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불과했습니다. 알마시도 영화 중반에 잠시 언급하지만요. 원작에서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이 이 사실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온화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킵이 그 사건 뒤로 '나'와 '서구인'을 구분하기 시작하니까요. 그러나 영화에서 킵은 부비 트랩으로 죽은 영국인 동료 때문에 죄책감과 슬픔에 빠질 뿐입니다. 결국 원작의 가장 중요한 주제 하나가 사라진 셈입니다.

파프리카 그렇군요. 그럼 과거를 강조함으로써 영화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듀나 영화는 진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원작에서 유령처럼 떠돌던 열정은 육화되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그리고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쉽고 분명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솔 자엔츠의 전작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그 역시 비서사적인 구성의 유명한 소설을 서사적인 영화로 만든 또 다른 예지요. 그 영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훨씬 자세하고 분명하고 또렷하며 설명적입니다. 예를 들어 한나가 영국인 환자와 빌라에 남는 장면은 설명이 지나쳐서 거의 동의어 반복처럼 느껴졌습니다.

파프리카 그거야 원작을 이미 읽었기 때문입니다. 전 그런 느낌은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지뢰가 터져서 친구가 죽고 빌라에 남고 하는 에피소드들도 필요했습니다. 한나와 킵이 천천히 사귀지 않는 바에야 앞에 그런 식으로 인상적인 만남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소설은 훨씬 덜 서사적인 작품이므로 영화는 마땅히 더 설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듀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여간 [영국인 환자]의 각색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보다 훨씬 낫습니다. 제 생각에 밍겔라는 이 작품을 각색하면서 될 수 있는 한 원작을 다시 읽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신의 인상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재독서를 해낸 셈인데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파프리카 저는 밍겔라의 각본이 그 자체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영화는 상당히 '똥폼잡는' 내용입니다. 여기엔 거창한 자연과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한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와 좌절한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투적이지 않고 지적인 대사들과 상황 때문에 영화는 진부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밍겔라는 꽤 흥미진진한 상황들로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나온 알마시와 캐서린이 이별하는 장면 같은 건 어때요? 배신감과 이별의 슬픔을 억누르는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알마시에게 눈길을 한 번 준 뒤 돌아서는데, '꽝!' 그만 앞에 있는 계단 난간에 머리를 박고 맙니다. 이런 설정은 슬랩스틱 코미디 전용처럼 여겨지지만 이 이별의 장면에 사용되면서 색다른 현실감을 부여했고 오히려 그 장면의 터져 오르는 감정을 독특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듀나 재미있는 장면이었지만 의도된 것이었는지 모르겠군요. 오히려 현장에서 즉석해서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파프리카 등장인물의 성격 역시 분명해졌습니다. 원작에서 알마시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모르지만 영화에서 만큼 뚜렷한 인물이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분명히 밍겔라 자신이 창작해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듀나 캐서린에 대해서는 '맞습니다.' 알마시의 경우는... 상당히 멋진 재창조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이 역들을 연기한 배우들을 먼저 칭찬해야 합니다. 레이프 파인즈,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 쥘리에트 비노쉬, 이들은 모두 훌륭한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 자기들의 능력을 예외없이 훌륭하게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랄 정도로 잘 캐스팅된 배우들입니다. 정신없이 튀어오르는 감정들과 혼란스러움, 대범하게까지 느껴지는 순진함을 뒤섞은 비노쉬의 한나는 너무나도 비노쉬적인 캐릭터가 아닙니까? 파인즈가 연기한 로맨틱하지만 성마르고 결점투성이인 학자 알마시 역시 그 사람 답지 않습니까? 캐서린 클리프턴의 경우는...

파프리카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 배우는 지금까지 이렇게 대책없이 로맨틱한 역은 한 적이 없습니다.

듀나 캐서린 역시 너무나도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다운 캐릭터입니다. 캐서린은 영리하고 지적이고 야무지며 무너지는 감정 속에서도 결코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바보같은 제작자들이 그런 캐릭터를 로맨틱한 상황 속에 던져 넣으면 얼마나 흥미진진해지는지 몰랐을 뿐입니다. 하여간 난 캐서린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가 원작을 분명히 능가하는 부분을 딱 하나 골라야 한다면 난 주저없이 캐서린 클리프튼을 선택하겠습니다.

파프리카 그거야 여기 있는 누군가가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의 팬 페이지를 인터넷에 열만큼 대단한 KST 팬이기 때문일 수... :-) 농담입니다. 캐서린은 정말 흥미진진한 인물이니까요.

듀나 존 실의 아름답게 찍어낸 사막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듄]에서 묘사된 거대한 서사극의 배경과는 다릅니다. 실의 사막은 유혹적이고 여성적이며 은밀합니다.

파프리카 맞아요. 특히 처음 도입부의 비행 장면 아래에 깔리는 사구는 거의 에로틱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영국인 환자]에서 사막은 넓게 깔린 '깨끗한 모래'가 아닙니다. 사막에는 오아시스와 '수영자들의 동굴'이 숨어 있고 모래 폭풍은 별빛 아래에서 은밀하게 손을 뻗는 우아한 악마입니다.

듀나 그 외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킵이 성당에서 한나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은 보다 산문적인 원작의 인상적인 변주입니다. 월터 머치가 댄스처럼 매끄럽게 편집해낸 이 장면은 진짜 춤 이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킵이 촛불로 한나를 유혹하는 영화 장면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소설 쪽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파프리카 흠... 우린 밍겔라를 감독 자체로 칭찬하는 걸 좀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경력이 우리에게 좀 빈약하게 여겨지기 때문일까요? 그의 다른 영화를 본 적 있나요?

듀나 [미스터 원더풀]이 개봉된 적 있습니다. 그렇게 큰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꽤 흥미로운 영화였죠. 그리고 그의 처녀작 [Truly, Madly, Deeply]가 [유령과의 사랑]이라는 멋없는 제목으로 케이블 티비에서 종종 방영되지요. 둘 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그가 지금까지 좋은 감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법 면에서 아주 독창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이번 영화도 훌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작가 밍겔라가 감독 밍겔라보다 좋습니다.

파프리카 [영국인 환자]는 고전적이고 예스러운 러브 스토리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런 종류의 정통적인 이야기에 상당히 굶주려왔던 모양입니다. EPF(English Patient Fever)라고 불리우는 신종병이 관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는지요. 참, 질문 하나 있어요. 제가 보았을 때는 마지막 릴에 자막이 없어서 대사를 몇 개 놓쳤거든요. 캐서린이 알마시에게 뭐라고 썼었죠?

듀나 "우리는 권력자들이 지도 위에 멋대로 그린 경계선이 아닌 진정한 나라입니다."라고 했지요. 제가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결국 이 역시 지극히 낙천적인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환상을 품어서 안된다는 이유 또한 없잖아요?

파프리카 매독스를 능가하는 로맨티시스트가 여기 하나 더 있네요! :-P (97/02/21)

D&P

기타등등

듀나 잡담 추가 시간입니다! 1분 안에 빨리!

파프리카 누구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몇 시간 동안 하고 돌아와도 티가 안나는데 한나가 서걱서걱 그냥 자기 손으로 자른 헤어스타일은 왜 그렇게 이쁜 겁니까? 왜 캐서린의 풀 누드는 나오는데 알마시의 누드는 안 나오는 걸까요? 그냥 [영국인 환자]라고 해도 되는 걸 가지고 [잉글리쉬 페이션트]라는 절룩이 영어 제목을 붙인 이유는 뭘까요? 휴우...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