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Bernardo Bertolucci

주연
마이클 피트....매튜
Michael Pitt....Matthew
에바 그린....이자벨
Eva Green....Isabelle
루이 가렐....테오
Louis Garrel....Theo
안나 챈슬러....어머니
Anna Chancellor....Mother
로빈 레누치....아버지
Robin Renucci....Father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튜, 이자벨, 테오

어떤 세대들은 다른 세대들보다 젊습니다. 1968년의 서구권의 젊은이들은 분명 21세기 초를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더 젊었습니다. 지금은 닳디닳은 노장이 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역시 그 때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습니다. 아직 사회의 첫맛도 보지 못한 [몽상가들]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68년 당시엔 이미 여러 편의 걸작영화들을 낸 젊은 거장이 되어 있었지만요.

[롱 아일랜드의 사랑과 죽음]의 저자인 길버트 어데어의 소설을 작가 자신이 각색한 [몽상가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척 노인네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진짜 젊음을 누렸던 사람들만이 회한에 찬 노인네들처럼 회고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몽상가들]은 불어를 배우려고 파리에 왔다가 시네마테크에 주저앉은 미국인 영화광 매튜가 이자벨과 테오라는 쌍둥이 남매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때는 1968년,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혁명의 기운으로 부글부글 끓던 때였지만 이들 셋은 마치 자궁 속의 태아처럼 낡은 아파트 건물 안에 웅크리고 서로의 육체와 마음을 탐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 격동기와 개인의 성적 모험을 번갈아 그려내는 어데어의 각본은 무척 베르톨루치적입니다. 베르톨루치는 이전에도 이런 영화들을 꽤 많이 만들었었죠. 단지 급진적인 정치적 아이디어와 육체적 쾌락에 도취된 그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었습니다. [혁명전야]에서 베르톨루치는 그 주인공들에게 현재형으로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몽상가들]에서 베르톨루치는 한 때 그 자신이나 다름없었던 그들을 노인네들이 철없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식으로 그려내고 있지요.

섹스, 정치와 함께 [몽상가들]의 차원을 구성하는 것은 영화입니다. 랑글루아 해임사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68년 학생 운동은 영화광들이 정말 흥미롭게 회상할 수 있는 사건이었죠. 지금까지는 스크린 위에 껌뻑이는 실체없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 같았던 것이 실제 혁명에 불을 당기는 심지가 되었으니까요. [몽상가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광들이고 그들의 대사와 행동 반이 영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몽상가들]의 세계는 영화가 현실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짙게 녹아있는 곳입니다.

얼핏보기에 섹스와 영화는 정치라는 주제와 그렇게까지 잘 섞여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세 주인공들은 세상이 부글거리는 동안 부모가 떠난 아파트 안에 박혀만 있으니까요. 그들은 당시엔 꽤 쿨했던 마오 쩌둥의 사상에 대해 논하고 영화 퀴즈를 내며 서로를 괴롭히고 근친상간 냄새가 잔뜩 묻어 있는 섹스를 하지만 정작 신문도 읽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폭발적인 클라이막스에 오르기 전까지 영화는 68 운동에 대한 작품보다는 순진무구한 미국 젊은이가 노련하고 타락한 유럽인들에 의해 순수성을 잃는다는 헨리 제임스 스타일의 이야기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하지만 이자벨과 테오는 매튜보다 특별히 더 노련하거나 성숙한 인물은 아닙니다. 특유의 매력과 에너지로 툭하면 매튜를 제압하긴 하지만 오히려 매튜보다 생각이 짧고 세상 경험도 부족하며 더 어린아이들이죠. [몽상가들]의 드라마는 매튜가 이들의 정신나간 매력에서 해방되어 '제정신을 차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튜의 존재는 이자벨과 테오에게도 성숙의 동기가 되어주기도 하죠. 물론 우린 그들 셋의 성숙 과정을 보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이자벨과 테오가 갑자기 영감이라도 받은 것처럼 시위 행렬에 휩쓸려 경찰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매튜는 그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긴 그런 불연속성이 혁명의 특성이겠죠. 어데어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런 갑작스러운 도약 때문에 68 운동에 대한 더 적절한 기술일 수도 있겠습니다.

[몽상가들]이 베르톨루치의 대표작으로 남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이 영화엔 많은 장점들이 있습니다. 좋은 영화예요. 베르톨루치의 영화적 기교는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고 몸 사리지 않는 세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젊음의 혈기로 날뛸 때 가장 베르톨루치다운 사람입니다. 사실 [몽상가들]이 최근에 나온 베르톨루치 영화들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된 것도 그가 다시 잠시나마 젊은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모든 건 어쩔 수 없는 예술적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잠시 좋았던 과거로 도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더이상 젊은이가 아니니까요. (05/03/11)

DJUNA

기타등등

에바 그린이 마를렌느 조베르의 딸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