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팻 오닐 Pat O'Neill

주연
릴리아 바센지안....호텔 손님
Lilia Barsegian....Hotel guest
케인 크로포드....형사, 마피아 단원, 관광객
Kane Crawford....Detective, Mafia thug, tourist
윌리엄 루이스....호텔 손님
William Lewis....Hotel guest
로렌 메이허....치카
Lauren Maher....Chica
타마라 마가리언....휠체어에 앉은 여인
Tamara Margarian....Woman in wheelchair
리사 몬큐어....리타
Lisa Moncure....Rita
웬디 윈번....메리
Wendi Winburn....Mary

'The Decay of Fiction'

팻 오닐의 [픽션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영화의 무대인 LA의 앰배서더 호텔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요. 이 호텔은 1921년에 문을 연 뒤로 68년의 호사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1989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 동안 호텔은 마릴린 먼로, 조운 크로포드, 하워드 휴즈와 같은 할리우드 명사들을 손님으로 맞았고 첫번째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곳도 이 호텔이었고요.

보통 호텔 같았다면 문을 닫은 뒤 서서히 잊혀졌겠지만, 앰배서더 호텔은 명성과 스케일을 질량 삼아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관성 운동을 해왔습니다. 호텔 업무를 그만 둔 1989년 뒤부터 앰배서더 호텔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단골 로케이션 촬영 장소였습니다. 얼마나 찍은 영화들이 많은지 '앰배서더 스튜디오'라는 별명으로 불리울 정도지요. 이해가 가요. 호텔의 고색창연한 분위기는 복고적인 영화의 무대가 되기엔 딱 맞았고, 망한 호텔이니 손님들 때문에 방해받을 이유도 없었으며, 방이 500개나 되는 데다가 수영장에서부터 무도장까지 없는 게 없는 건물이니 활용가능성은 무궁무진했으니까요. [마스크], [포레스트 검프], [귀여운 여인],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영화들이 모두 앰배서더 호텔을 로케이션 촬영 장소로 이용한 작품들입니다. 철거 계획이 계속 이야기되고 있지만 호텔은 아직도 헐리지 않고 있습니다.

팻 오닐은 이 호텔을 무대로 한 사실과 허구의 흥미로운 조합을 시도했습니다. 우선 그는 35밀리로 호텔을 그냥 찍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탈 흑백으로 찍은 사람들을 그 위에 덧입혔지요. 텅 빈 호텔을 무대로 한 다큐멘터리가 특수 효과의 도움을 얻자 갑자기 '귀신들린 집' 영화가 된 것입니다. 영화는 특별한 줄거리없이 호텔을 누비며 객실에 가득한 회색 유령들을 훔쳐봅니다.

이 영화의 유령들은 그냥 보통 유령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4,5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스테레오 타입들입니다. 그들은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대사들을 훔쳐와 읊고 극중 캐릭터들처럼 행동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허구의 유령들인 것입니다. 와, 재미있는 개념의 결합이 나왔습니다. 그렇죠? 조금만 머리를 굴린다면 여러분은 이 개념들의 결합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픽션의 몰락(몰락이라는 역어는 원제에 사용된 'decay'라는 단어가 주는 음산한 느낌을 살리지 못합니다)]은 아주 좋은 '귀신들린 집' 영화입니다.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붕괴되어가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박제화된 감정에 매달리는 흑백 유령들과 이제는 과거의 화려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호텔의 쇠락한 모습이 결합한 결과는 서글프고 아름다우면서 조용히 불쾌합니다. 아름다운 맹수의 시체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비평이기도 합니다. 유령들이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그들의 감정은 모두 4,50년대 필름 느와르의 일그러진 비전을 통과한 것들입니다. 이 장르의 클리셰는 관객들이 이들이 모두 유령들이며 생명없는 죽은 동작들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완전히 공식화됩니다. 영화는 반세기 전 할리우드가 생산했던 신경질적인 캐릭터들과 분위기에 매료되어있지만 역사학자의 냉정함으로 그들을 관찰하는 걸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소재를 과연 장편영화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군요. 71분이라면 극장용 장편 영화치고는 짧은 편이지만, 이 작품은 단 하나의 개념을 엔진으로 삼아 줄거리없이 진행되는 교향곡에 가까운 작품이니 다른 잣대로 길이를 재야지요. 71분이면 웬만한 말러 교향곡보다 깁니다. 감독이야 8년 동안이나 매달렸던 프로젝트였으니 쉽게 잘라내기도 힘들었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동의어 반복이라는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이 정도의 길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어휘와 음악이 필요했어요. (03/08/28)

DJUNA

기타등등

나중에 이 영화와 [러시아 방주]를 비교해봐도 재미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