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

주연
맷 데이먼....빌헬름 그림
Matt Damon....Wilhelm Grimm
히스 레저....야콥 그림
Heath Ledger....Jacob Grimm
레나 헤디....안젤리카
Lena Headey....Angelika
페터 스토마레....카발디
Peter Stormare....Cavaldi
맥켄지 크룩....히들릭
Mackenzie Crook....Hidlick
리처드 라이딩스....번스트
Richard Ridings....Bunst
로라 그린우드....사샤
Laura Greenwood....Sasha
조나단 프라이스....델라통브
Jonathan Pryce....Delatombe
모니카 벨루치....거울여왕
Monica Bellucci....Mirror Queen

거울여왕과 제이크

테리 길리엄의 신작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의 그림 형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 그림 형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지 팔의 영화에 나오는 순진무구한 동화 작가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뭐냐고요? 글쎄요. 기본 설정에 따르면 이들은 미신을 믿는 시골사람 앞에서 퇴마사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는 사기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실존 인물 그림 형제들처럼 동화 연구가이기도 하죠. 그래서 실존 인물 그림 형제의 전기 한 구석에 이 사기꾼 이야기를 끼워넣자니 영 어색해집니다. 조지 팔 영화보다 더 어색해요.

전기적 사실을 무시하면, 우린 전형적인 테리 길리엄 영화를 하나 얻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은 [바론의 대모험]과 여러 면에서 닮았어요. 둘다 모두 '이성의 시대'인 18세기 말을 무대로 하고 있고 그 세계에 갈등하는 환상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조나단 프라이스가 치졸한 이성의 상징으로 등장하지요.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사기행각이 들통난 그림 형제 빌헬름과 야콥(이 영화에서는 윌과 제이크입니다)이 신비스러운 마르바덴 숲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파견되면서 시작됩니다. 다들 사기인 줄 알았던 이 숲은 알고 봤더니 진짜 마법의 숲이었고 그 숲에서 5백년 넘게 살아온 거울 여왕은 다시 젊음을 찾기 위해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고 있었죠. 그림 형제는 이들을 구하고 거울 마녀를 퇴치해야 합니다.

그림 형제가 마르바덴 숲에서 펼치는 모험은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입니다. 농담 따먹기에 능한 액션 주인공인 그림 형제는 이 영화에서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악당들이나 늑대인간과 칼싸움을 하고 위기에 빠진 소녀들을 구합니다. 이 정도면 전통적인 액션 영웅의 자격에서 빠진 건 없죠.

두번째 요소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 형제 이야기를 이야기에 섞는 장난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빨강모자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조각조각 쪼개져 마르바덴 숲의 이야기에 녹아 있지요. 이걸 찾아내는 건 영화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세번째는 전형적인 테리 길리엄식 모험담입니다. 현실과 환상 사이의 극단적 괴리 속에서 갈등하다 결국 믿음을 찾는 환상가의 이야기 말이에요.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은 잡탕찌개처럼 섞여있고 서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서를 찾는 건 쉽지 않죠. 예를 들어 두번째 장난은 그림 형제가 이들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동화를 썼다는 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들은 그림 형제가 쓰기 전에 존재했습니다. 그림 형제의 감시꾼인 카발디도 그림 형제가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설정에 빠지기 전부터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혼란스러움은 사실 큰 단점은 아닙니다. 길리엄의 전작들인 [브라질]이나 [바론의 대모험]도 그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영화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에서 그 혼란스러움은 의미없이 그냥 혼란스럽기만 해보입니다. 이 영화의 혼란은 흐름을 구성하는 대신 그냥 조각조각 작은 덩어리로 쪼개져 굴러다닙니다. 아이디어와 비주얼, 드라마는 분리되어 쉽게 섞이지 않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길리엄은 이 영화에서 [바론의 대모험]에서 그가 했던 것과 거의 같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의도나 재료가 늘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죠. 아이디어의 카오스를 재료로 쓰는 길리엄 같은 사람들은 실수할 가능성도 큰 편인데, [그림 형제]는 그런 실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냥 배합 비율의 문제였던 거죠. (05/11/11)

DJUNA

기타등등

1. 대한극장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화면이 정말 못 봐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이런 걸 보고 리뷰를 쓰라고 하다니 정말 다들 강심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요.

2. 이 영화의 세컨트 유닛 감독은 미켈레 소아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