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태용

주연
박해일....네모
염정아....부자
김관우....어린 네모
홍수현....두부
오광록....네모 아빠
조민수....네모 엄마
박미선....두부 엄마
박은수....파출소장

네모와 부자

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 성인 독자들에게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리얼리즘에서 탈출하기 위한 알리바이였습니다. 일단 그들은 '동화'라는 이유로 판타지를 정당화했고 '어른들을' 이라는 딱지를 붙여 '동화'를 정당화했죠. 다들 참 궁색하게 살았습니다. 읽고 싶으면 그냥 읽을 일이지.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가장 재미있는 요소는 그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느낌입니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1982년인데, 꼭 그 무렵에 출판되어 스테디 셀러가 되었을 법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여러 질감들이 영화에도 녹아있습니다. 주인공 이름인 '네모'부터 수상쩍지 않습니까?

영화의 기본 아이디어는 [빅]을 닮았습니다. 엄마 아빠를 모두 잃고 홀로 사는 열 세 살 소년 네모는 이웃집 미혼모 부자를 사랑합니다. 어느 날 네모는 부자의 아들 기철을 구하기 위해 불타는 영화관에 뛰어들었다가 죽는데, 그만 천국의 서류가 잘못되어 이승에도, 저승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대안은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아 크리스마스까지 93살을 채운 뒤 다시 죽는 거죠. 며칠 뒤 네모는 서른 살 어른이 되어 지상으로 돌아옵니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소년, 천국에 가다]가 조금 더 소재를 막 다루고 있습니다. '동화'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차이지요. [빅]이 아슬아슬한 소재들을 피해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로 남았다면,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죽음과 섹스는 이야기의 중심에 남습니다. [빅]의 주인공 조쉬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온다면, 네모는 부자와 섹스도 하고 끝에 가서는 죽습니다. 걱정 마시길. 이건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에서 결말을 밝힌 뒤 이야기를 시작하거든요.

그래도 영화는 침침하지 않습니다. 죽음과 섹스를 다루긴 하지만, 판타지와 동화의 요소를 잔뜩 끌어들여 두 소재를 칙칙하지 않게 끌어가거든요. 하긴 이미 저승을 경험했고 죽는 것이 다시 어린 소년으로 돌아가 엄마와 재회하는 거라면 늙어 죽는 게 그렇게 큰 걱정은 아닐 겁니다.

각본의 진짜 문제는 미카엘 엔데의 [모모] 같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들을 벤치마킹한 티가 너무 난다는 것입니다. 꽤 유명한 몇몇 사람들이 각본에 참여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짜깁기의 느낌이 강합니다. 이야기의 소재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도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고요. 꽤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 이 영화의 각본이 그렇게 자연스럽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의 각본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들을 벤치마킹했다면 영화의 스타일은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를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80년대 경상도의 소읍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입니다. 물론 [아멜리]의 파리만큼 미모를 과시하는 공간은 아니지만요. 가끔 고문과 민주투사와 재수없는 대머리 대통령이 언급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80년대는 복고풍의 스타일과 내용을 위한 핑계입니다.

무슨 이야기가 남았나요? 아, 박해일의 연기. 좋습니다. 귀엽고 괴팍하고 변태스럽고 순진합니다. 어린 네모를 연기한 김관우도 만만치 않은데, 둘은 하나의 캐릭터를 정반대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염정아의 어린 소녀와 같은 호들갑도 이 영화에서는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05/11/02)

DJUNA

기타등등

[사랑해, 말순씨]에서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도 당시 유행했던 한국 영화들의 몇몇 장면들을 삽입하고 있더군요. 이것도 새로운 유행인 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