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미니츠 - 트럼펫 Ten Minutes Older: The Trumpet (2002) * * *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
Aki Kaurismaki (Dogs Have No Hell)
빅토르 에리세 (생명선)
Victor Erice (Lifeline)
베르너 헤어조크 (일만년 동안)
Werner Herzog (Ten Thousand Years Older)
짐 자무쉬 (짧은 휴식)
Jim Jarmusch (Int. Trailer Night)
빔 벤더스 (트로나로 가는 12 마일)
Wim Wenders (Twelve Miles to Trona)
스파이크 리 (우린 강탈당했다)
Spike Lee (We Wuz Robbed)
첸 카이거 (깊이 숨겨진 100송이의 꽃)
Kaige Chen (100 Flowers Hidden Deep)
주연
마르쿠 펠톨라....남자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
Markku Peltola....Man (Dogs Have No Hell)
카티 오우티넨....여자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
Kati Outinen....Woman (Dogs Have No Hell)
아나 소피아 리아뇨....젊은 엄마 (생명선)
Ana Sofia Liaño....Young Mother (Lifeline)
페야요 수아레스....갓난 아기 (생명선)
Pelayo Suarez....Newborn Baby (Lifeline)
클로에 셰비니....여배우 (짧은 휴식)
Chloë Sevigny....Actress (Int. Trailer Night)
찰스 이스틴....빌 (트로나로 가는 12 마일)
Charles Esten....Bill (Twelve Miles to Trona)
앰버 탬블린....케이트 (트로나로 가는 12 마일)
Amber Tamblyn....Kate (Twelve Miles to Trona)
펭 유안젱....펭씨 (깊이 숨겨진 100송이의 꽃)
Yuanzheng Feng....Mr. Feng (100 Flowers Hidden Deep)
Ten Minutes Older: The Trumpet
"세계적 감독들에게 십 분의 러닝타임을 주고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해보자." 바로 이게 [텐 미니츠] 시리즈를 묶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아이디어로 두 편의 [텐 미니츠] 시리즈가 제작되었는데, [텐 미니츠 - 트럼펫]은 그 첫번째 영화입니다. 두번째 영화인 [텐 미니츠 - 첼로]는 올해 8월에 개봉된다고 해요.
한 제목에 묶였지만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다른 단편들과의 연관성 없이 독립적으로 제작된 작품들입니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장르도 다르고요. 결국 개별 작품들을 따로 다루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Dogs Have No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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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 카우리스마키가 감독한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는 한 남자가 구치소에서 풀려나며
시작됩니다. 그는 10분의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굉장히 많은 일을 합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랑하던 여자와 결혼하고, 고국인 핀란드를 떠나 시베리아로
떠나죠.
카우리스마키는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에서도 그 특유의 무표정한 태도로 건조하게 이야기를 읊어대지만, 이 짧은 10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 남자의 운명을 바꾸는 일들이 그 동안에 일어나니까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한 남자의 인생 반이 압축된 셈이지요. 카우리스마키의 이 영화는 마치 영화로 만든 분재 같습니다.
Lif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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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의 [생명선]은 제2차 세계대전 초의 스페인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10분 동안 스페인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아기의 탯줄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입니다. 아이는 간신히 구원을
받지만, 그들을 덮고 있는 역사의 장막은 쉽게 걷혀지지 않죠.
[생명선]은 여러모로 그의 대표작 [벌집의 정령]과 비교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40년대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깔고 강한 상징주의적 이미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수법 같은 것 말이에요. 하지만 1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때문에 상징주의의 기저가 되어야 할 바탕 없이 이미지들만이 돌아다닌다는 느낌을 가끔 주기도 합니다.
Ten Thousand Years O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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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스케일도
엄청 크지요. 베르너 헤어조크는 20년전 문명 세계와 첫 만남을 가진
아마존 종족을 방문합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석기 시대를 살던 이
종족은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완전히 붕괴됩니다. 수만년 동안 끌어왔던
그들의 고립된 삶의 방식은 현대 문명에 어떤 저항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부족민 상당수가 감기와 수두로 목숨을 잃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도, 언어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결핵을
앓는 족장은 젊었을 당시 백인들을 죽였던 이야기를 서글픈 동작으로
재현해주며, 백인 여자들과의 짧은 성적 접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쑥스러워 합니다.
자칫하면 메시지만 전달하고 끝낼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들이 종종 그렇듯, 이 단편도 그 이상의 일을 합니다. 이 영화의 대상이 되는 원시 부족도 문명과 야만이 뒤섞인 그의 거대한 비전 속에 얽혀있는 졸처럼 보이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의도가 어떻건, 되씹을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Int. Trailer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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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의 단편은 자기 트레일러 안에서 10분간의 짧은 휴식을 취하려는 배우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분주한 세계에서 배우의 프라이버시와 휴식의 기회는
끝도 없이 들이닥치는 스탭들에 의해 방해를 받죠.
[짧은 휴식]에서 자무시는 이 영화에서도 그의 전매 특허라고 할 수 있는 무표정한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구식 할리우드 영화의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 묻어내기도 합니다. '화려함 속의 고독'이라는 주제 때문일 수도 있겠고, 주연을 맡은 클로에 세비니의 후광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하여간 이 영화의 달콤씁쓸한 아름다움은 상당히 보편적입니다.
Twelve Miles to T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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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트로나로 가는 12 마일]은 여기서 가장 야심이 작은 영화입니다.
그는 헤어조크나 에리세처럼 시간에 대해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10분은 데드 라인입니다. 실수로 마약을 과용한 주인공은
10분 안에 병원이 있는 트로나까지 차를 몰아야 합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서스펜스는 강렬하고 마약 과용으로 제정신이 아닌 주인공의 일그러진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미국의 황량한 고속도로의 풍경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풍깁니다. 결과만 따진다면 오히려 벤더스의 최근 극장용 장편들보다 나은 것 같아요.
We Wuz Rob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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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의 [우리는 강탈당했다]는 악명높은 플로리다 대통령 선거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당시 고어측과 연관되어 있던 일단의
사람들의 인터뷰를 빠르게 편집해서 그들이 어떻게 대통령직을 강탈당했는지
보여줍니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애당초부터 그런 걸 의도한 작품도 아니니까요. 영화는 민주당측의 입장만 보여주고, 그 사람들 모두가 상당히 화가 나 있고 실망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당시에 대한 관객들의 입장이 어떻건, 이 작품이 상당히 힘있는 정치적 외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척 박진감넘치고 흥미진진하군요. 아마 일곱 편의 영화들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일 겁니다.
100 Flowers Hidden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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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카이거의 [깊이 숨겨진 100송이의 꽃]은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옛 베이징의
얼굴을 밀어버리는 추세에 저항하는 미친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노인은
이미 오래 전에 집터만 남은 옛집에 이사짐 센터 사람들을 끌고와 있지도
않은 가구를 운반하게 합니다. 순전히 수고비를 받으려는 이유로 노인의
환상에 동참하던 일꾼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아마 첸 카이거의 이 영화는 일곱 편 중 가장 감상적인 작품일 겁니다. 그만큼 만들기도, 감상하기도 손쉬운 영화죠. 솔직히 너무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영화가 조심스럽게 깔아놓은 잊혀진 옛것들에 대한 향수는 꽤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일곱 편의 단편들은 주제말고 특별한 연관성이 없습니다. 감독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선택권을 맡긴 기획이므로 기획자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도 없었고요. 그러나 애당초부터 그런 자유로운 선택을 의도한 작품이니 작품의 다양함은 장점이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점은 남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그래요.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짐 자무쉬의 픽션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다른 영화들과 어울리고 관객들에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헤어조크나 리의 단편들은 여기서 조금 이질적으로 튀는 것 같고, 그들이 공들여 선택한 대상도 무작위적 단편 모음이라는 형식 속에서 진지성을 잃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둘 다 가장 좋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02/07/22)
DJUNA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에 클로에 세비니의 사진이 뜨자 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더군요. 그 때문에 한바탕
카메라를 수색하는 소동이 벌어졌답니다. 뭣하러
그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상당히 높은 해상도의
사진들을 공식 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데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