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 서울 (2005) * *

감독
박성훈

주연
봉태규....도연
이청아....영자
고은아....지연
김수현....태풍
박성빈....연쇄살인마
정소녀....어머니
김추련....아버지
전재형....덕규
용이....진수

지연과 도연

언젠가부터 [썬데이 서울]은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만 해도 이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죠. 제목의 표기는 약간 다르지만요.

그런데 박성훈의 영화에 [썬데이 서울]이라는 제목이 어울리긴 하는 걸까요? 전 모르겠군요. 이 영화는 호러나 무협과 같은 장르물 세 편을 묶은 옴니버스물인데, 전 이것들과 [썬데이 서울]이라는 주간지를 연결하지 못하겠습니다.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로 유명한 잡지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어깨동무]나 [소년중앙]이 더 어울릴 법한 제목입니다.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호러 코미디입니다. 봉태규가 연기하는 도연은 늘 같은 반 아이들에게 멸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어느 날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봉태규는 언제나처럼 자기 일을 잘 해내는 편이고 도연이 짝사랑하는 지연을 연기한 고은아도 예쁜데, 드러나는 장점은 거기서 끝입니다. 굉장히 따분한 에피소드예요.

가장 노골적인 단점은 상상력의 부재입니다. 곧장 말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요. 이 이야기는 '호르몬이 부글거리는 십대 남자애가 늑대인간이 되었다!'라는 설정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뽑혀나왔습니다. 사건 전개에서부터 반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뻔해요. 장르에 도전할 생각도 없고 그 장르를 탐구할 생각도 없이 그냥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다는 식이죠.

주제도 별로 맘에 안 들어요. 왕따당하는 남자아이의 열망과 심리묘사는 비교적 잘 살아있어요. 하지만 이 아이의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결말은 그냥 시시합니다. 지금까지 얻어맞는 애였던 애가 때리는 애로 바뀌는 게 뭐 그리 찬란한 국면 전환이라고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보다 정통적인 호러입니다. 자동차가 고장난 남자가 외딴 집으로 도움을 청하러 들어가요. 알고 봤더니 그 남자는 근처에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온 연쇄살인범이었죠. 남자는 일단 그 집 딸을 죽이고 학교에서 온 어린 아들도 죽입니다. 이게 다일까요? 아뇨. 초자연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재미있냐고요? 아뇨. 역시 그렇게까지 허를 치는 반전은 아니에요.

앞의 에피소드에서 감독이 자기가 얼마나 뻔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면, 이 에피소드에서는 작정하고 최근 나온 아시아 호러영화들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특히 [장화, 홍련]과 같은 인테리어 호러물요. 결과는 그저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인테리어 호러도 아니고 날이 선 패러디도 아니거든요.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감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 영화를 왜 만들고 있는 건지.

마지막 에피소드는 무협물입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태풍이라는 청년이 무술을 연마하고 복수하는 내용이지요. 단지 이야기의 무대를 현대 한국으로 옮겨놓고 있어요. [아라한]이나 [소림축구]식 접근법을 생각해보세요. 대충 맞습니다.

이 역시 아주 좋은 에피소드는 아닙니다. 유머는 거칠고 효과가 떨어지며 등장하는 카메오도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죠. 끝에 건 반전 역시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낫습니다. 그나마 만드는 사람들이 그 장르에 익숙한 거죠. 어느 게 뻔하고 어느 게 우스꽝스러운지도 알고 있고요. 앞의 두 에피소드에서와는 달리 장르에 대한 애정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썬데이 서울]의 실패요인은 무지에 기반한 오만에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장르를 파괴하고 키취적 감성이 부글부글 끓는 신나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새롭다고 생각하며 만든 이야기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뻔한 것들이었다, 이거죠. 한마디로 태도가 불량합니다. 아무리 '저급한 대중문화'를 다룬다고 해도, 일단 거기에 대한 공부는 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06/01/27)

DJUNA

기타등등

독립된 세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사람들은 덕규와 진수라는 친구들인데, 이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1편에만 어느 정도 비중으로 등장할 뿐, 2,3편에서는 거의 존재의미가 없어요. 솔직히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길었다던 부산 영화제 버전은 달랐을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