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J.J. 에이브럼스 J.J. Abrams

주연
크리스 파인....제임스 T. 커크
Chris Pine....James T. Kirk
재커리 퀸토....스팍
Zachary Quinto....Spock
사이몬 페그....스카티
Simon Pegg....Scotty
에릭 바나....네로
Eric Bana....Nero
칼 어번....레너드 '본즈' 맥코이 박사
Karl Urban....Dr. Leonard 'Bones' McCoy
위노나 라이더....아만다 그레이슨
Winona Ryder....Amanda Grayson
조이 살다나....우후라
Zoe Saldana....Uhura
존 조....히카루 술루
John Cho....Hikaru Sulu
레너드 니모이....늙은 스팍
Leonard Nimoy....Old Spock
안톤 옐친....파벨 체코프
Anton Yelchin....Pavel Chekov
브루스 그린우드....크리스토퍼 파이크 함장
Bruce Greenwood....Capt. Christopher Pike




(골수 팬들은 리뷰를 읽지 않고 가시길 권합니다.)

스팍과 커크

그래요. [스타 트렉] 시리즈를 이대로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을 겁니다. 시들어가는 늙은 제국처럼 [스타 트렉] 우주는 자신의 무게에 깔려 서서히 압사당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묵은 낡은 전통은 이제 족쇄였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탈출하자니 시리즈의 정신이 망가집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의 해결책은 '과거로 돌아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엔터프라이즈] 시리즈였죠.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오리지널 [스타 트렉]보다 앞세대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건 보기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스스로를 이미 고정된 역사 안에 가두는 것과 같았죠.

J.J. 에이브럼스의 [스타 트렉]도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냐고요? 아뇨,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조금 다른 길을 택하고 있어요. 이 영화가 커크와 스팍의 젊은 시절을 다루고 있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프리퀄도 아니고 리메이크도 아닙니다. 그냥 속편, 그것도 새 시리즈를 시작하는 아주 전통적인 속편입니다. 심지어 새 시리즈를 여는 특정 전통도 그대로 지키고 있지요.

어떻게 그렇게 되냐고요? [스타 트렉]이 가장 자주 써먹는 SF 장치 때문이죠. 도입부 몇 분만 봐도 그게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USS 캘빈이라는 우주선이 처한 재난으로 시작되는데요... 이 우주선에서 제임스 타이베리어스 커크가 태어나고 아버지인 조지 사무엘 커크가 죽습니다...

네, 어떻게 된 거냐고요? 어떻게 된 거긴요. 역사가 갈라진 겁니다. 여기서 악당으로 나오는 로뮬란인 네로가 미래에서 왔다는 건 시작 몇 분만에 밝혀지거든요. 여기서부터는 장황한 사연이 있고 그건 영화를 보다보면 밝혀집니다. 그리고 그 뒤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제임스 T. 커크의 전기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USS 캘빈의 파괴, 아버지의 죽음, 네로의 존재 덕택에 제임스 T. 커크는 우리가 아는 제임스 T. 커크와 닮았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인물로 자라납니다. 곧장 말하면 오리지널 캐릭터가 스타플리트 아카데미 스타벅스 지점에 갇혀서 드립 커피를 한 20잔쯤 마시고 뛰쳐나온 것 같은 인간입니다.

당연히 그가 겪는 이야기도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그가 스타플리트에 들어가고 맥코이, 우후라, 스카티, 술루와 같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오리지널 시리즈의 스토리를 따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겁니다. 이 정도면 가볍게 새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요. 그걸 증명하기 위해 영화는 중반에 아주 엄청난 일을 하나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일이 벌어진 뒤에도 [스타 트렉]의 역사가 우리가 아는 역사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죠.

팬들은 좋아할까요? 글쎄요. 이 설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익숙해져 있던 세계를 송두리째 버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오리지널 시리즈, [다음 세대], [딥 스페이스 9], [보이저]... 모두 없습니다. 이제 그것들은 우리가 갈 수 없는 다른 우주에 속해있습니다. J.J. 에이브럼스가 만든 새로운 우주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를 싫어하는 팬들이 나온다고 제가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여전히 팬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팬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가장 즐길 수 있는 사람들도 [스타 트렉] 우주에 익숙한 팬들이고요. 일반 관객들이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팬들은 툭툭 튀어나오는 익숙한 고유명사와 뻔뻔스러운 역사 왜곡에 놀라거나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럼 일반 팬들은 무엇을 봐야 할까요? 글쎄요. 이 영화에는 우주전 장면도 있고 격투 장면도 있으며 나름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도 나옵니다. 하지만 원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보지 않는다면, 영화의 절반 정도만 간신히 즐길 수밖에 없겠죠.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의 재미는 스펙터클이나 액션, 드라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의 파괴와 재조립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09/04/20)

DJUNA

기타등등

1. 본사에서 월요일까지 엠바고를 걸었다더군요. 금요일날 나올 수도 있었던 리뷰를 월요일에 올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2. 평행우주를 고려해도 여전히 캐릭터들의 나이가 조금씩 어긋나고 설정이 안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