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성범

주연
남궁은숙....수연

수연

[죽기 전에 해야 할 몇 가지 것들]은 극저예산 독립영화작가가 한 번쯤 꿈꾸어볼 만한 실험입니다. 주연배우는 단 한 명. 영화는 하룻동안 이 사람의 뒤를 스토킹하면서 그 내면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가 생각나는군요. 영화의 테마 때문에 도로시 파커의 유명한 시 한 편도 생각나긴 합니다.

영화의 테마는 자살입니다. 주인공 수연은 어느 날 자살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왜? 실연을 했다거나 직장을 잃었다거나 하는 심각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무게가 버거워진 것이겠죠. 이런 기분은 다들 느끼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정말 자살해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겠죠. 하여간 수연은 아침에 일어나 다양한 자살의 방법을 놓고 고민하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그러는 동안 키우는 개나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기도 하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러죠.

이게 영화가 될까? 될 수도 있겠죠. 정말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에게 걸린다면요. 하지만 박성범에겐 아직 그런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주연배우 한 명을 앞에 갖다놓고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는 기본 아이디어를 빼면요.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이 아이디어는 설익은 단계였음이 분명해요.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건 말이 거의 없는 주연배우가 멍한 얼굴로 걷거나 앉아 있는 것뿐입니다. 그 빈 칸을 채우기 위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안이한 '서정적인 음악'이 깔리고 끊임없이 주연배우의 내면 독백이 보이스 오버로 흐르죠. 그걸 통해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걸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죠. 특히 독백은 배우로부터 진짜 연기를 할 기회를 몽땅 빼앗습니다.

자살을 다루는 방식 역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수연처럼 가벼운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긴 있겠죠. 이걸 경쾌한 코미디로 다루는 길도 있을 거고요. 온갖 방향에서 온갖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예술하는 사람들의 의무이기도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잘 안 먹힙니다. 주제와 동기가 내면화되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내용보다 자살을 다루는 '독특한' 태도에 더 신경을 쓰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애완동물들을 잔뜩 키우고 있는 사람이 무심하게 자살하려고 한다는 설정이 영 거슬리더군요. 물론 어딘가에 있는 인간 식구들은 더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 동물들은 화면 속에 정말로 나오거든요.

채도와 콘트라스트가 낮은 비디오 화면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잡아낸 평일 서울의 풍경은 이야기보다 살아있습니다. 주인공이 영화 내내 돌아다니는 서울 남서부는 제가 건성으로나마 지리를 아는 곳이라서 조금 재미있더군요. 오디오 상태가 나빠서 종종 심한 배경 잡음 때문에 괴로울 정도인데, 여기엔 기술적 미비함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겠죠. (09/06/24)

DJUNA

기타등등

영화 상영 전에 나한나라는 가수의 [사랑이 힘들어]라는 노래의 뮤직 비디오가 먼저 나오던데, 중간 어딘가에 삽입된 모양입니다. 하긴 중간에 노래가 하나 나온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