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주연
조지 클루니....크리스 켈빈
George Clooney....Chris Kelvin
나타샤 맥켈혼....레아 켈빈
Natascha McElhone....Rheya Kelvin
바이올라 데이비스....헬렌 고든
Viola Davis....Helen Gordon
제레미 데이비스....스노우
Jeremy Davies....Snow
울리히 투쿠르....지바리안 박사
Ulrich Tukur....Dr. Gibarian
셰인 스켈튼....지바리안의 아들
Shane Skelton....Gibarian's Son
도나 킴블....지바리안 부인
Donna Kimball....Mrs. Gibarian

레아와 크리스

스티븐 소더버그의 [솔라리스]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점은 그 단출함입니다.

일단 상영시간이 99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라면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에 도착해서 뭔가 좀 해볼까 하는 순간에 소더버그의 영화는 벌써 끝나버리는 것이죠.

주제도 축소되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는 할말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은 일단 유령 이야기였고, 로맨스 소설이기도 했고, 존재론적 성찰이기도 했으며, 하드 SF인 동시에 학술계의 당파 싸움을 놀려대는 풍자물이기도 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도 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만큼이나 할말도 많고 무게도 많이 잡는 작품이었습니다. 원작의 철학적 요소들은 러시아적인 심각함으로 잔뜩 부풀었고 그 위에 타르코프스키의 개인적인 고통과 감정이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소더버그는 그 모든 군더더기들을 잘라냈습니다. 그는 100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거의 한가지 이야기만 합니다. 사랑했던 죽은 아내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여자는 복제물일뿐 진짜 아내가 아니야. 이걸 어쩌면 좋지?

이 설정에 렘이 깔아놓은 주제의 상당부분이 담겨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더버그는 이 주제를 아주 미니멀하게 다루고 있어요. 여전히 철학적 성찰은 남지만 이 영화는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라는 뼈대를 억지로 부풀리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는 이런 장르에서 기대할만한 최소한의 기술적인 도전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SF의 도식적인 영상 언어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오히려 장르적 구경거리가 더 많을 지경이니 말 다했지요. 소더버그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우주선과 우주기지, 솔라리스의 바다는 거의 무개성적인 배경에 불과합니다.

결과는 꽤 그럴싸합니다. 소더버그는 이런 가지치기를 통해 자신의 [솔라리스]에게 거의 단아하게 느껴지는 정갈하고 현실적인 매력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이전의 소설과 영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거죠.

영화는 작고 날렵하고 빠릅니다. 심지어 몇몇 부분에서는 거의 다이제스트 버전처럼 보일 지경이에요. 레아 1번을 셔틀로 끌고가는 부분이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워낙 정적인 이야기라 전체적으로 성급하다는 느낌은 그렇게 강하게 들지 않습니다.

로맨스는 구체적인 현실성을 얻었습니다. 소설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는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언급되었던 켈빈과 레아(하리)의 이야기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가 될 정도로 부풀었습니다. 덕택에 다소 추상적이었던 주인공들의 고뇌가 보다 이해가능한 것으로 바뀌었고요. 이전의 작품들이 19세기식 교양을 갖춘 유럽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소더버그의 영화는 정신분석과 우디 앨런의 영화에 익숙한 지식인 뉴요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캐스팅도 효율적입니다. 오스카상용 거창한 연기는 없지만 모두 자기 역할을 하는 거죠. 취향에 따라, 제레미 데이비스의 연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조지 클루니의 조금 닳아빠진 이미지가 로맨스를 방해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극복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 제 맘에 가장 든 배우는 스토익한 과학자로 나오는 바이올라 데이비스였지만요.

그러나 이 작고 날렵한 느낌이 과연 이전의 작품들과 경쟁할 때 유리할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렘의 소설이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비교하면 소더버그의 영화는 너무 가볍습니다. 새로 추가된 결말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로맨스 역시 이전에 비해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할말만 하고 빠지는 미니멀한 접근법 때문에 시각적 인상이 상당히 약합니다.

전 소더버그가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솔라리스]라는 제목을 듣고 소더버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여전히 타르코프스키의 허세 섞인 읊조림이 더 좋고 슬픈 인어 공주와 같던 나탈리아 본다르추크의 하리가 더 좋습니다. 소재를 현대화시키는 동안 소더버그는 원작이 가지고 있던 시의 일부분을 날려버렸습니다. (03/04/09)

DJUNA

기타등등

1. 원작의 중성미자가 이번 영화에서는 힉스장과 힉스입자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2. 켈빈이 솔라리스로 떠나기 전에 회사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 장면은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에일리언 2]를 연상시키더군요.

3.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딜란 토머스의 시 [And Death Shall Have No Dominion]을 읽으시려면 여기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