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매든 John Madden

주연
조셉 파인즈....윌 셰익스피어
Joseph Fiennes....Will Shakespeare
기네스 팰트로....바이올라 드 레셉스
Gwyneth Paltrow....Viola de Lesseps
주디 덴치....엘리자베스 여왕
Judi Dench....Queen Elizabeth
벤 애플렉....네드 알린
Ben Affleck....Ned Alleyn
콜린 퍼스....웨섹스 경
Colin Firth....Lord Wessex
사이먼 캘로우....틸니
Simon Callow....Tilney, Master of the Revels
제프리 러쉬....필립 헨슬로
Geoffrey Rush....Philip Henslowe
톰 윌킨슨....휴 페니먼
Tom Wilkinson....Hugh Fennyman

1.

1593년 런던. 에이본에서 온 젊은 극작가 윌 셰익스피어는 심각한 예술적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글은 한 줄도 쓰여지지 않고 여자 친구 로잘린은 배신했으며 경쟁상대인 크리스토퍼 말로에 눌려 자기 작품은 제대로 평가 받지도 못합니다. 그러던 그의 앞에 연기자의 꿈을 불태우는 부유한 숙녀 바이올라 드 레셉스가 나타났으니...

2.

지금까지 저희가 본 영화 중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가장 유사한 작품은 아무래도 멜 브룩스의 [High Anxiety]인 것 같습니다. 멜 브룩스가 히치콕 영화들을 긁어모아 잡다한 패러디를 만들었던 것처럼 각본가 톰 스토퍼드와 마크 노먼은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을 긁어모아 멋대로 끼워 맞추어 패러디와 시대착오, 인 조크로 가득 찬 코미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마크 노먼이 고안해낸 것이지만 그는 현명하게도 자신이 힘이 부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협력자로 선택된 톰 스토퍼드는 그 누구보다도 이런 장난에 적합한 인물이었지요. 스토퍼드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종종 공연되고 영화로도 한 번 만들어진 적 있는 그의 희곡 [로젠크렌츠와 길든스턴은 죽었다]를 통해 셰익스피어 패러디를 한 번 성공시킨 적 있었으니까요.

노먼과 스토퍼드가 머리를 부딪히며 만들어낸 세계는 엘리자베스 왕조 당시의 실제 런던이 아닙니다. 당시의 불결함과 야만, 코르셋, 옛스러운 시어들이 부글대는 시대착오적인 헐리웃이지요. 뱃사공들은 꼭 헐리웃의 택시 운전사들처럼 연극계 사람에게 자기 각본을 건네며 정신적 위기에 빠진 윌은 엘리자베스 왕조식 정신분석의인 연금술사의 긴 의자에 몸을 던집니다. 꼭 빅 네임 스타처럼 구는 네드나 기회주의자 제작자인 필립 핸슬로 역시 헐리웃에서 끌어온 것 같고 심지어 물주인 페니먼 역시 '영화에 빠진 마피아' 루틴을 교묘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윌의 머그 잔에는 '스트래트포드-어폰-에이븐 기념품'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으며 "The Show must go on!"같은 현대적인 표현들이 마구 난무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꼭 윌이 그 표현을 고안해낸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요!)

물론 노먼과 스토퍼드는 밥 호프 영화처럼 적극적으로 현대성을 도입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대충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장난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그런 은밀함입니다.

이런 은밀함은 문학적 패러디와 인 조크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아주 이중적이 되지요. 농담을 알아들을 수 있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와 이해 못하는 관객들의 영화로 구분되는 겁니다.

아주 기초적인 농담은 전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윌과 바이올라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윌은 로미오처럼 발코니로 기어오르고 바이올라는 틈만 나면 줄리엣의 대사를 읊지요. 윌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해 나가는 동안 충돌하는 다른 삶의 위기들도 곧장 작품 속에 녹아듭니다. 커튼과 로즈의 패싸움은 몬태규와 캐퓰릿의 싸움이 되고 크리스토퍼 말로의 죽음이 머큐시오의 죽음의 바탕이 되는 것 따위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것들은 숨은 농담들입니다. 저희가 가장 배꼽을 잡았던 것은 아주 음흉했던 [햄릿] 조크입니다. 기억나시나요? 커튼 사람들이 로즈 극장으로 달려들어 기물을 때려부수자 페니먼은 "복수다!"를 외치며 옆에 있던 해골을 들어 커튼 사람들을 후려칩니다!

영화엔 이런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로잘린이 "내 소네트는 어디 있지?"라고 외쳤을 때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의 머리는 잽싸게 '다크 레이디'와 로잘린을 연결시킬 겁니다 (얼마 전에 [뉴스위크]에 실린 기사를 읽었는데, 허버트 블룸 교수는 이 영화의 로잘린을 소네트의 '다크 레이디'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잘린 뿐만 아니라 [사랑의 헛수고]의 로잘린까지 확장시키고 있더군요. 아하! 브루넷인 [사랑의 헛수고]의 로잘린과 '다크 레이디'라!) 어린 작가 지망생 존 웹스터의 등장은 소네트보다 은밀합니다. 그는 쥐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다니며 자살과 살인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여왕이 그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땠냐고 묻자 그는 말하지요. "전 자살장면만 좋았어요." 정말 [말피 공작부인]을 쓴 작가다운 말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은 비밀스러운 구애와 같습니다. [십이야]에 친숙한 관객들이라면 윌이 바이올라에게 "당신이 머나먼 해변에 쓸려가는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흥분으로 몸을 떨었을 겁니다. 이 대사는 나중에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화되고 영화의 여자 주인공 바이올라는 [십이야]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 동안 그가 살짝 흘린 대사는 몰래 알아들은 사람들에게 거의 에로틱한 충족감을 줄 겁니다.

3.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서 고증이 가장 건성으로 처리된 부분은 [로미오와 줄리엣] 파트입니다. 영화는 마치 윌이 바이올라와의 사랑을 겪으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만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창작이 아닙니다. 마리오 반델로가 이미 54년에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으며 아더 브룩이 62년에 같은 내용의 영어책을 써냈으니 셰익스피어가 스토리 자체에 손을 댈 여지가 없다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입니다. 당연히 [로미오와 해적의 딸 에셀]이나 [로미오와 로잘린] 따위의 중간 과정은 나올 건덕지가 없었지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화 후반부에 윌에게 다음 성탄절을 위한 코미디를 부탁하고 그가 [십이야]를 쓰는 부분도 위태롭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십이야] 사이엔 5년 이상의 공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 어때요? 어차피 셰익스피어에 대해 우린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에이본의 이 시인 양반이 정말 그 작품들을 썼는지도 확신 못하는 사람들이 많죠(요새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드 비어 설인 모양입니다만.) 이 영화는 철저한 판타지이며 영화를 만든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이야기가 진상 근처에라도 갔을 거라고 믿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사람의 가짜 러브 스토리를 쓰는데 그렇게 엄밀하게 고증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남장 여인이나 오인된 신분과 같은,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당시의 많은 작가들이 자기네 희극에 즐겨 사용했던 소재를 현대적으로 엮은 활기찬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인 조크들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스토리의 기둥이 이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죠. 만약 기둥 줄거리가 정당한 이유로 왜곡을 요구한다면 뭣하러 저항해야 하나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오랫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활기찬 인물들이 북적대는 생명력 넘치는 희극의 전통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아닌가요? 요새는 이 단순한 가치가 이상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습니다.

4.

조셉 파인즈에겐 형이 가진 그 '야비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그 때문에 더 쉽게 호감을 삽니다. 이제 기술적으로 아주 능숙해진 팰트로는 지금까지 그 사람이 맡았던 역 중 최고를 선보이고요. 그네들은 좋은 짝이고 호흡도 잘 맞습니다.

주디 덴치는 엄숙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제프리 러쉬의 핸슬로 역시 오래간만의 호연이고요. 콜린 퍼스는 이번에도 '야비한' 역을 선보이는데 그 역시 잘하지만 영국에 쫙 깔린 불쌍한 퍼스 팬들은 이제 어쩔꺼나. (99/03/08)

D&P

기타등등

바이올라의 가명으로 토머스 켄트 대신 H. W.의 이니셜을 한 다른 이름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기왕 바이올라에게 18번 소네트를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것도 시도해볼 만 하지 않았겠어요? 물론 '다크 레이디'까지 끼워넣으며 아귀를 맞추려면 좀 복잡해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