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Margarethe von Trotta

주연
카티아 리만....레나 피셔
Katja Riemann....Lena Fischer
마리아 슈라더....한나 바인스타인
Maria Schrader....Hannah Weinstein
마르틴 파이펠....파비안 피셔
Martin Feifel....Fabian Fischer
유르겐 포겔....아르투르 폰 에센바흐
Jürgen Vogel....Arthur von Eschenbach
유타 람페....루트 바인스타인
Jutta Lampe....Ruth Weinstein
도리스 샤데....레나 피셔 (90살)
Doris Schade....Lena Fischer (aged 90)
페디아 반 반 후트....루이스 마르케스
Fedja van Huêt....Luis Marquez
카롤라 레니에....레이첼 로젠바우어
Carola Regnier....Rachel Rosenbauer
스베아 로데....루트 (7살)
Svea Lohde....Ruth (aged 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리안족과 결혼한 유태인들은 베를린 로젠슈트라세 2-4번지의 집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외없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으니 이들은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의 운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유태인 남편들과 결혼한 독일인 아내들이 한두명씩 로젠슈트라세에 몰려들어 "내 남편을 돌려달라!"라고 외치기 시작했던 거죠. 온갖 협박에 휘달리면서도 끝까지 로젠슈트라세의 거리를 지킨 이 아줌마들은 게쉬타포의 코 앞에서 정말 기적과 같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1943년, 괴벨스의 명령에 따라 로젠슈트라세에 감금되었던 2천명의 유태인들은 석방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베를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 시위는 최근까지 그렇게 잘 알려진 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게 시위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했어요. 당시 괴벨스가 그렇게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건 시위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연합군의 선전에 이용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건, 로젠슈트라세의 여인들이 제2차세계대전 중 제3제국의 심장부에서 거둔 성과는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나요? 조직도 되어 있지 않았고 리더도 없이 움직였던 용감한 아줌마들의 파워에 나찌 정권이 굴복한 이야기이니 말이에요. 누군가가 영화화하고 싶어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독일에서는요. 철통과도 같은 나찌 정권하에서 눈감고 귀막고 숨죽이고만 있었을 것 같은 보통 시민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희망적이 아닌가요? 죄책감에 절은 그네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벼워질 수 있을 거고요.

2.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의 [로젠슈트라세]는 현대의 뉴욕에서 시작합니다. 막 아버지를 잃은 한나 바인스타인은 지나칠 정도로 유태 전통을 따르는 어머니 루트의 행동에 짜증이 날 대로 나 있죠. 심지어 루트는 한나의 남자 친구 루이스가 유태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결혼까지 깨트리려 하는 걸요. 그러던 어느 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아가 된 어머니를 키워주었던 레나 피셔라는 여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한나는 어머니의 과거를 캐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이게 어떻게 로젠슈트라세의 시위와 연결되느냐고요? 루트와 레나 피셔는 모두 로젠슈트라세의 시위참가자였기 때문입니다. 루트의 어머니와 레나의 남편은 모두 같은 집합소에 감금되었었죠. 루트의 어머니는 남편이 이혼한 사실이 밝혀져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지만 레나의 남편 파비안은 괴벨스가 석방한 2천명의 운좋은 유태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루트 역시 집합소에 감금되어 있어야했지만, 탈출했다가 엄마를 만나러 로젠슈트라세를 찾아온 루트를 레나가 돌봐주었던 거죠. 영화는 루트와 레나의 눈을 통해, 남편을 찾아 온 한 무리의 여자들이 어떻게 로젠슈트라세의 기적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3.

...또는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위에 적어놓은 게 이 영화의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는 이를 얼마나 성취했을까요? 슬프게도 반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 각본 문제인 듯 해요. [로젠슈트라세]의 각본은 소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에요.

가장 큰 문제점은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입니다. 로젠슈트라세 시위는 노골적인 집단행동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들은 조직되어 있지도 않았고 리더도 없었으니까요. 이들에겐 숨길만한 비밀이나 음모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가 엄마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액자구조로 전개되어야 하는 걸까요? 물론 집단 속에서 한 목소리를 내었다고 해서 그 집단 구성원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추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레나와 루트는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죠. 그러나 과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로젠슈트라세 시위를 보여주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둘은 그렇게까지 서로를 잘 보좌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극적인 설득력이 부족해요. 루트의 과거가 밝혀지고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도, 관객들은 대충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루트가 과거를 애써 잊으려 한 이유는 뭐지? 그렇다고 해서 골수 유태교 신자처럼 구는 이유는 또 뭐고?" 한마디로 말해 레나가 회상하는 로젠스트라세의 이야기는 극적으로 동문서답인 거예요.

영화는 지나치게 변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로젠스트라세의 시위를 영화의 소재로 선택한 것부터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심적인 SS대원으로 그려지는 레나의 오빠 같은 캐릭터는 조금 심하다 싶었어요. 마치 정치적 압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영화는 무리한 시도를 하는 동안, 쥐고 있는 재료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로젠슈트라세]엔 역사적 사실에 얽히지 않았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을 재료들이 많습니다. 레나와 루트의 이야기만 해도 완전한 허구였다면 훨씬 그럴싸하게 발전할 수 있었어요. 루트의 괴팍한 행동은 다른 해답을 제공해주었다면 훨씬 괜찮았을 거고요. 배우들도 마찬가지. 레나를 연기한 카티아 리만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한나를 연기한 마리아 슈라더는 완전히 낭비되었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아무 쓸모가 없었던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로젠슈트라세의 시위는 이런 식의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더 잘 맞는 소재인 듯 합니다. 물론 픽션 쪽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기 편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경우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04/04/07)

DJUNA

기타등등

1. 궁금한 것. 로젠슈트라세엔 남자들만 감금되지는 않았을텐데, 도대체 아리안족 남편들은 어디에 있었던 거랍니까?

2. 레나가 괴벨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장면에서 음악 부분의 사운드만 일그러지지 않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