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동빈

주연
장신영....오미선
송일국....찬식
곽지민....소희
이동규....진규
김혜나....희주
이얼....오종현
김현숙....정진숙





(스포일러가 있어요.)

미선

우리가 김동빈을 호러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직 호러 장르가 뜸했던 90년대 말에 [링]의 한국판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지금까지 그럭저럭 방송을 타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도 순전히 유명한 원작과 상대적인 희소성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김동빈이 새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대단한 기대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단 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레드 아이]는 그 미적지근한 기대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심지어 작년에 다음 단편 영화 페스티벌을 통해 단편을 위장한 예고편을 보고 어느 정도 기대를 제한했는데도 말이죠.

영화의 기본 설정은 그럴 듯 합니다. 꼭 16년 전에 일어났던 열차사고에서 살아남은 객차들을 단 무궁화 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합니다. 그 열차에는 당시 사고로 기관사인 아버지를 잃은 신참 승무원 오미선이 타고 있었죠. 열차가 달리는 동안 미선은 일련의 수상쩍은 현상들을 목격하게 되고 당시 사고를 일으켰던 유령 열차가 지금의 열차와 같이 달리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영화의 각본은 야심도 풍부하고 아이디어도 많습니다. 사고 이후 10분 앞당겨 달리던 기차가 마지막 운행일 날 10분 연착으로 유령 열차와 겹쳐진다는 설정은 괜찮아요. 두 열차의 승객들이 무작위적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 조우한다는 설정 역시 나쁘지 않고요. 무엇보다 유령 열차라는 설정 자체가 좋습니다. 열차는 유령 이야기의 단골 무대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화하면 꽤 신선한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지요.

하지만 최종 결과는 그냥 엉망입니다. 각본에 구현되어 있는 아이디어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어요. 감독이 특별히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뒤섞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이디어들이 마구 섞여 제대로 된 모양도 갖추지 못한 채 굳어진 겁니다. 툭하면 나오는 충격 효과들은 관객들로부터 그 뻔한 비명 소리 하나 끌어내지 못하고 어색한 대사들은 실소감이며 전체적인 스타일은 90년대 초 충무로 영화의 그 투박함에서 벗어나 있지 못합니다. 특수효과 역시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고요. 기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쓰는 지 몰랐기 때문이죠.

영화는 공감가는 드라마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당한 과거를 가진 인물들이고 꽤 좋은 배우들에 의해 연기되지만 관객들은 그들에게 전혀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그들 중 몇 명이 처참하게 죽어도 눈썹하나 까딱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무섭기보다 슬픈 호러 영화처럼 굴고 있단 말입니다.

일본 호러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한국 호러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 그것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영화는 일본 호러 영화의 아류처럼 보이니 말이죠. 심지어 아류의 아류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화가 대표적인 호러 장면으로 내세우는 핏물에서 기어나오는 유령은 [령]의 물에서 기어나오는 유령과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령]쪽이 더 좋았던 것 같군요.

결정적으로 영화는 지루합니다. 작년에 나온 호러 영화들은 대부분 시시했지만 지루한 영화들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코미디라고 치고 웃으면서 볼만은 했어요. 하지만 [레드 아이]는 그냥 지루하고 따분합니다. 특히 전혀 리듬감을 살리지 못한 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너무 늘어져서 이야기 따라가기가 싫을 정도입니다.

2005년을 여는 새로운 호러 영화로 [레드 아이]를 바라보는 건 슬픈 일입니다. 차라리 실망스러웠던 2004년의 끝물이라고 치고 넘어가고 싶군요. (05/02/04)

DJUNA

기타등등

제가 본 버전은 아마 앞으로 극장에 걸릴 버전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하지만 추가 편집으로 이 난장판이 구제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