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전윤수

주연
김민선....신윤복
김영호....김홍도
김남길....강무
추자현....설화

윤복

[미인도]는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작품입니다. 단지 신윤복이 여자이고 [미인도]가 자화상이라는 아이디어를 같이 쓰고 있는 거죠. 어쩌다가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동시에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개봉 시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드라마 [황진이]와 영화 [황진이]가 맞붙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겹친 적은 없었죠. 게다가 지금의 [미인도]는 더 헛갈립니다. 드라마 황진이와 영화 황진이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아무리 캐릭터가 다르다고 해도 여자 신윤복은 분리해보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드라마를 꾸준히 보면서 드라마와 이정명 소설 속의 신윤복과 김홍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은 갑자기 방해꾼처럼 끼어든 [미인도]의 주인공들을 의심의 눈으로 째려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영화 쪽이 아이디어를 먼저 냈다고 해도요.

영화는 소설/드라마와 어떻게 다른가? 영화에서는 신윤복이 신한평의 친딸입니다. 본명은 신윤정이죠. 오빠인 진짜 윤복은 동생의 그림을 자기 것이라고 하다가 들통날 뻔하자 목을 매 자살하고 윤정은 남장을 하고 그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이게 윤정이가 일곱 살 때 일이죠. (끔찍한 비주얼이 하나 떠오르실 겁니다. 영화 속에도 나옵니다. 열 살도 안 된 남자애의 목을 맨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요.) 신한평은 윤복을 김홍도의 제자로 넣고, 도화서의 화원이 된 윤복은 그의 애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윤복은 시장에서 동경을 파는 강무라는 남자와 엮이게 되고 둘은 연인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윤복이 여자라는 걸 김홍도도 알게 되고 그걸 또 김홍도를 짝사랑하는 기녀 설화도 알게 되고...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는 신윤복 그림의 에로티시즘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춘화들도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섹스신도 많지요. [바람의 화원]보다 정통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정통적이라 오히려 심심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는 방심하고 있던 독자나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재해석 같은 건 없습니다. 그 때문에 [바람의 화원]에 비해 그림들의 활용이 평범하게 느껴지지요. 여전히 [미인도]가 신윤복의 자화상이라는 아이디어는 남아 있지만 워낙 공공연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놀라움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거기까지 가면 조금 지치죠. 신윤복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들은 너무 노골적이라 따분하고요. 화가가 무슨 카메라랍니까.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그리게.

영화가 멜로드라마를 도입하기 위해 만든 설정은 조금 위태로워요. 신윤복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평민 연인을 만들어준 건 좋아요. 하지만 그 분위기가 지나칠 정도로 송혜교 나오는 [황진이] 스타일이란 말이죠. 강무는 다행히도 액션 머슴은 아닌데, 그래도 종종 비슷해집니다. 주인공이어야 할 신윤복이 강무와 함께 있으면서 '여자'가 될 때는 에너지를 잃어요. 이런 영화들은 왜 다들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김민선이 연기하는 신윤복의 캐릭터가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처럼 양성적이거나 경계선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김민선의 캐릭터는 그냥 남자 옷을 입은 성숙한 여성이죠. 그 때문에 캐릭터 자체에서 긴장감이 흘러나오지는 않아요. 김민선이 남자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그림이 제대로 나오지만 남자 연기가 문근영만큼 설득력있게 보이지도 않고요.

김홍도와 설화의 캐릭터는 이들에 밀려 당연히 위축됩니다. 여자라는 걸 알게 된 제자와 강무 사이를 질투하는 김홍도의 위치는 잘 잡았어요. 하지만 그에게 깊이있는 심리묘사를 주기엔 스토리가 너무 빨리 흐릅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지만 할 시간도 많지 않아요. 설화는 그냥 평면적인 악역에 가깝고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미인도]는 빠른 영화입니다. 화가들의 이야기이니 천천히 움직여도 될 법 한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요. 전 성미가 급한 편이라 할 말만 하고 질주하는 영화들을 좋아하지만 이 영화의 급한 페이스는 스토리의 감정을 잡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너무 연결이 빨라서 전혀 분위기가 나지 않아요. 종종 그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수를 두는 것도 보이고요. 하긴 마지막 파국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한 인위적인 장치는 페이스 탓을 할 게 아니군요.

영화는 에로티시즘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강도가 높아 보이는 부분이 한 두 장면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윤복과 강무의 섹스신으로 내용상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죠. 나머지 하나는 청나라 춘화의 체위를 재현하는 두 기생들의 퍼포먼스인데, 순전히 눈요기용이라는 게 뻔해서 흥미가 없고 결정적으로 지나치게 길더군요.

음악이 종종 사정없이 끔찍해지긴 하지만 영화의 꾸밈새는 지금 전쟁하듯 찍고 있는 [바람의 화원] 미니 시리즈보다 당연히 낫습니다. 독립적인 작품으로 본다면 특별히 점수를 짜게 줄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이미 선수를 빼앗긴 '여자 신윤복' 아이디어를 제외하면 이야기가 너무 익숙하고 안전해요. 소위 남장여인 설정의 컨벤션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한 것이죠. (08/11/04)

DJUNA

기타등등

진짜 신한평이 불쌍해요.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바람의 화원]에서도 그렇고 동네북이네요. 비교하자면 이 영화가 더 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