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자끄 드와이용 Jacques Doillon

주연
빅뜨와르 띠비졸....뽀네뜨
Victoire Thivisol....Ponette
델핀느 쉴츠....델핀느
Delphine Schiltz....Delphine
마티아스 뷔로 까통....마티아스
Matiaz Bureau Caton....Matiaz
레오폴딘느 세르....아다
Leopoldine Serre....Ada
마리 트랭티냥....어머니
Marie Trintignant....Mother
자비에 보브와....아버지
Xavier Beauvois....Father
끌레르 느부....고모
Claire Nebout....Aunt

1.

언젠가 게리 쿠퍼는 [하이 눈]으로 남우주연상을 자신에게 준 아카데미상 회원들은 모두 자기한테 속은 것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자기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그냥 평상시처럼 행동하며 대사만 외운 것이 전부인데, 그걸 다들 연기로 알았다는 말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게리 쿠퍼가 [하이 눈]에서 받은 아카데미 상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게리 쿠퍼가 연기를 했건 안했건, [하이 눈]의 케인 보안관은 멋진 창조물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정서적인 경험을 제공해줍니다. 게리 쿠퍼가 그 상을 무시해도 관객의 입장에서 안 줄 수가 없단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평가할 수 있고 또 평가해야 하는 것은 스크린 위의 결과니까요.

자끄 드와이용은 베네치아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빅뜨와르 띠비졸에게 여우주연상을 돌렸을 때, 띠비졸을 대신해서 게리 쿠퍼보다 훨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의 행동은 나름대로 건전한 판단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빅뜨와르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그애를 화면 앞에서 그렇게 빛나게 한 사람이 드와이용 자신이니 심사위원들이 낸 결과의 책임은 그에게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결과도 그렇게 파격적이지 않습니다. 그해 베네치아에 [뽀네뜨]만큼 주인공 하나에 영화 전체를 건 영화는 결코 많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어떻게 추슬렸건 그 결과 자체는 훌륭하지 않습니까?

2.

아이들에게 연기를 시킨다는 것이 정말 힘이 들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연기는 자연스러운 놀이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띠비졸 또래의 아이들에게 인형 몇 개만 주고 혼자 놀아보라고 해 보세요. 오히려 연기는 경험없는 아이들보다 경험없는 성인들에게 더 어려운 일입니다.

띠비졸이 분명 [뽀네뜨]의 연기를 놀이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드와이용은 이 어린아이의 놀이에 감정적인 깊이를 부여하는데 성공했는데,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찬탄하는 것과는 달리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놀이였을 겁니다.

3.

[뽀네뜨]는 '어머, 귀여워!'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한 작고 귀여운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포동포동한 작은 아이들이 나와서 귀엽게 굴며 온갖 이쁜 짓들을 다하니 당연하죠. 게다가 4살박이 주인공은 '그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네요. 쯧쯧쯔... 여기서부터 감상적인 관객들은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서글프게 우는 어린 아이는 분명 먹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뽀네뜨]는 '엄마 잃은 아기'를 가지고 남의 손수건을 적시려는 얄팍한 수작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영화입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주인공 캐릭터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 리얼리즘은 상당히 깊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관객들이 '어머나, 귀여워!'에 신경을 조금만 덜 쓴다면 이 영화는 곧장 죽음과 상실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4.

플라톤은 [국가]의 도입부에서, 정의로운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정의로운 국가를 보는 게 낫다는 핑계를 대며 이상국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거야 그 양반이 억지로라도 국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고 사실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반대가 맞죠.

그리고 [뽀네뜨]는 바로 그런 '축소된 영화'입니다. 주인공 뽀네뜨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상황 속에 떨어지고 여기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칩니다. 하지만 상실은 너무나도 크고 아이에게 제시되는 정보는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맨처음에 제시된 정보는 고모에게서 얻은 '예수의 부활'입니다. 뽀네뜨는 잽싼 귀납법으로 '어머니의 부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마법('따리따꿈!')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가 따르지만 곧 그런 노력은 어른들의 부정으로 좌절되고 말지요.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종교적 시도인데, 이는 '시련의 길'과 기도라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4살박이 소녀가 세상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켜가는 과정을 보다 극적인 상황 속에서 재현해낸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확대시키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죽음'과 '내세'와 같은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쌓아가던 과정과 거의 동일합니다. 델핀느의 '아랍인들은 카톨릭이다'라는 놀라운 논리는 귀엽지만, 사실 인류는 현대까지 넘어가면서 그만큼이나 '귀여운' 철학적 실수들을 잔뜩 저질렀습니다. 인류 역사는 델핀느보다 더 불리했죠. 그 실수를 정정해 줄 누군가가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뽀네뜨의 모험을 지켜보면서 저희는 대학교 1학년 때가 생각났답니다. 소위 중등교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폭압으로 망가진 뇌세포를 가다듬으며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쌓아가려던 그 아이들이 화면 위의 꼬마와 얼마나 닮았던지.

5.

결말은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모든 시도와 희망이 좌절된 뒤, 엄마의 무덤에서 흙을 파헤치며 울고 있던 뽀네뜨에게 정말로 엄마가 나타나거든요. 뽀네뜨는 엄마와의 만남에서 간신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영화는 끝납니다.

결말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지금까지 진행시켜온 스토리와 이 초자연적인 결말이 별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결말은 영화가 끌어온 그 모든 과정을 대충 무시하고 단지 슬퍼하는 아이를 위로하는 수준에서 영화를 종결짓게 만드니까요. 물론 뽀네뜨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엄마의 유령이 전해주는 그 모든 정보들이 뽀네뜨의 머리 속에서 나왔을 리가 없으니, 지금까지 쌓아온 심리적 리얼리즘이 손상을 입게 되지요.

보다 나은 해결책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결말은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별로 불평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엄마 역을 연기한 마리 트랭티냥도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성인 배우들과는 달리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요. 게다가 뽀네뜨가 그 파국을 혼자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영화도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만 했을테니 이 결말도 그리 나쁜 것 같지 않군요.

6.

당사자에게 놀이였건 아니었건, 손쉬운 일이었건 아니었건, 빅뜨와르 띠비졸의 동그란 얼굴이 변하는 모양을 바라보는 건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결국 모든 게 그 아이에게로 돌아갑니다. (97/11/22)

D&P

기타등등

[뽀네뜨]는 띠비졸의 유일한 출연작입니다. 아이한테는 잘된 일이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