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카롤리네 링크 Caroline Link

주연
율리아네 쾰러....예텔
Juliane Köhler....Jettel
메랍 니니제....발터
Merab Ninidze....Walter
레아 쿠르카....레기나 (아역)
Lea Kurka....Regina
카롤리네 에케르츠....레기나 (십대)
Karoline Eckertz....Regina
실데데 오뉼로....오부와
Sidede Onyulo....Owuor
마티아스 하비히....쥐스킨트
Matthias Habich....Süßkind
게르트 하인츠....막스
Gerd Heinz....Max
힐데가르트 슈말....이나
Hildegard Schmahl....Ina
마리타 호르바르트....리젤
Maritta Horwarth....Liesel
레지네 짐머만....케테
Regine Zimmermann....Käthe

예텔과 레기나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대륙을 서구인들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머리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서구인들의 필터를 거친 것이죠. 피투성이 식민주의의 역사를 거치면서 아프리카는 그들 정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식민지가 독립하고 그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난 뒤에도 그 유산은 그대로 남았지요.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게 서구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근세 이후 아프리카의 역사는 유럽 역사의 일부입니다.

슈테파니 쯔바이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카롤리네 링크의 [러브 인 아프리카]도 유럽인들의 역사를 아프리카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영화는 아프리카의 케냐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케냐의 원주민들은 주변에 배치된 조연들이나 배경에 불과하죠.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나찌의 유태인 박해와 같은 유럽 역사입니다.

영화는 나찌 정권의 박해를 피해 영국 식민지 케냐로 망명한 독일계 유태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내려온 전직 변호사인 아버지 발터는 남의 농장에서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땀을 빼고 있고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의 상류 사회에서 넉넉하게 살아온 엄마 예텔은 몇 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망명 생활이 점점 길어지자 정신이 나갈 것 같죠. 그러는 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퇴로가 막힌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에서 살아남는 길을 터득하게 됩니다.

[러브 인 아프리카]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정체성입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자기네들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30년대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기네들이 당연히 독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찌 정권이 그들을 박해하면서 그 당연한 것만 같았던 생각은 박살나죠. 영화 내내 그들은 독일인으로서, 유태인으로서, 아프리카의 유럽계 식민주의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검토하게 됩니다.

영화의 드라마 대부분은 이들의 선택에 대한 것입니다. 케냐를 망명지로 선택하고 가족을 아프리카로 이끈 발터는 점점 이 세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연합군에 가담하고 결국 그 과정 중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찾게 되지요. 처음에는 사치스럽고 세상물정 모르던 예텔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너무나도 완벽한 식민지 운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요. 그러는 동안 영국계 학교에서 유태인으로 취급받으며 자라던 딸 레기나는 서서히 한 명의 아프리카인으로서 성장해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여로는 전쟁이 끝나자 하나로 통합되는데, 결국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유럽인들이었고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쉽게 깨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러브 인 아프리카]는 링크의 전작 [비욘드 사일런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욘드 사일런스]처럼 이 영화도 독특한 환경에 처한 가족이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겪는 일련의 경험을 딸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자잘한 변화의 디테일을 잡아내는 차분한 시선, 아역배우들의 능숙한 통제와 같은 링크의 장점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러브 인 아프리카]의 드라마는 [비욘드 사일런스]만큼 압축된 느낌이 부족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케냐의 거창한 배경이 오히려 드라마를 약화시키는 것 같아요. 영화는 산만해보이고 종종 초점을 잃습니다.

식민지 시대를 무대로 한 많은 영화들처럼 이 영화의 아프리카 역시 탈색된 느낌이 강합니다. 영화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역할인 마사이족 요리사 오부와는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그만큼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본 '고상한 야만인'의 스테레오타입이어서 생생한 느낌이 떨어지고요. 물론 직접 아프리카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는 서툴게 의문을 제공할 뿐이지만, 이 영화를 끌어가는 어조가 잃어버린 땅과 흘러간 역사에 대한 유럽인들의 달콤한 회고 정서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04/10/21)

DJUNA

기타등등

레기나 역을 맡은 두 배우의 연결이 참 자연스럽더군요. 중간에 배우가 바뀔 때는 여전히 아쉬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