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버 피닉스는 1970년 8월 23일 오레곤 마드라스 시에서 출생했습니다. 히피 부모들에 끌려 남미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요. 부모인 존 보텀과 알린 듄즈는 잠시 신의 아이들이라는 컬트 집단의 멤버였다는데, 거기에서 탈퇴하면서 성을 피닉스로 바꾸었대요.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뒤부터, 피닉스는 아역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시작했다가 텔레비전으로, 텔레비전에서 영화로요.

주목할 만한 첫 영화는 조 단테의 [Explorers (85)]였습니다. 세 소년이 우주선을 만들어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다는 어린이용 SF였지요. 피닉스는 이 영화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천재 소년 울프갱 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배우가 진짜 뭔가 있다는 걸 알린 영화는 스티븐 킹의 중편을 각색한 로브 라이너의 히트작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 (86)]였습니다. 이 영화 이후로 피닉스는 헐리웃의 가장 재능있는 젊은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모스퀴토 코스트 Mosquito Coast (86)], [Little Nikita (88)],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88)], [샌프란시스코의 하루밤 Dogfight (91)]과 같은 영화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막 피어나야 할 바로 그 순간에 끝나버렸습니다. 리버 피닉스는 6년 전 이맘 때 쯤, 그러니까 1993년 10월 31일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23살이었어요.

2.

리버 피닉스의 이야기는 하이틴 잡지의 작위적인 싸구려 기사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비극적인 죽음, 미모, 틴 아이돌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의 기억은 종종 거의 역겨울 정도로 얄팍한 감상으로 추락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억도 서서히 흐려지는 지금와서 보면, 그는 하이틴 잡지가 주장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배우였습니다. 적어도 리버 피닉스라는 직업 배우는 말이지요.

약물 중독으로 죽어버린 자연인 피닉스는 잊어버립시다. 배우 리버 피닉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의 대표작들을 검토해보면 '그의 신화'와 별 상관없는 리스트를 얻게 됩니다. 그가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작품들은 잡지가 주장하는 로맨틱한 외피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사실 많은 리버 피닉스 팬들에게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91)]는 그의 주류 경향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이 영화가 지독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피닉스는 여기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터무니없이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데다가 그걸 예술로 받아달라고 관객들에게 무작정 강요하니까요. 결코, 피닉스의 대표작도 아니고 거스 반 산트의 대표작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과장되지 않은 현실적인 캐릭터들에 더 강했습니다. 가족과 음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허공에의 질주]의 피아니스트 지망생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밤]의 풋나기 병사, 시체를 찾아 나선 [스탠 바이 미]의 소년 같은 역들을 들여다 보세요. 그 영화들은 하이틴 잡지용 감상주의와 아무 상관 없는 작품들입니다. 모두 사실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로맨티시즘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그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작품도 그리 없었지요. [샌프란시스코의 하루밤]은 분명 그런 면이 있었지만, 그 작품 역시 장식적이라기보다는 릴리 테일러와의 분명한 대조를 이루기 위한 도구적 역할이 강했습니다.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피닉스는 일급 헐리웃 주류 배우로서 오히려 더 적합한 배우였습니다. 자기 관리를 좀더 잘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우린 정말 그런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3.

그러나 과연 자연인 리버 피닉스가 배우 리버 피닉스의 가능성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별로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자연인 피닉스는 하이틴 잡지에서 다루는 이미지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젊은이의 이상주의와 정신적 나약함, 불안감이 뒤섞인 여린 사람이었지요. 그의 죽음 역시 자연인 피닉스의 성격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말하면 욕먹을지 모르지만 전 자연인 피닉스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훌륭한 일급의 전문가였던 배우 피닉스와는 달리 자연인 피닉스는 젊음의 다양한 함정에 모조리 빠져버린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훨씬 흥미로운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거의 서른살이 되었겠네요. 어떤 모습으로 나이가 들었을지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만... (99/11/0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