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일리 캐더린 로즈 비비안 밀즈는 1946년 4월 18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배우 존 밀즈이고 어머니는 극작가인 메리 헤일리 벨입니다.

밀즈의 공식적인 영화 데뷰작은 에드워드 드미트릭의 1948년작 [So Well Remembered]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연기 데뷰작이라고 인정하기는 좀 그렇죠. 그냥 애가 필요해서 가져다 놓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헤일리 밀즈의 언니 줄리엣의 역이 컸다면 더 컸습니다.

기회는 10년 뒤에 찾아왔습니다. [타이거 베이 Tiger Bay (1959)]의 주연을 맡을 소년을 찾던 J. 리 톰슨 감독이 주연 배우인 존 밀즈네 집에 놀러왔다가 짧은 머리를 휘날리며 마구 돌아다니는 헤일리 밀즈한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던 거죠. 톰슨은 주인공을 소년에서 소녀로 고치고 헤일리 밀즈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했습니다. 아마 아버지 존 밀즈의 명성이 이 캐스팅을 덜 모험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겁니다.

모험이었건, 아니었건,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헤일리 밀즈의 연기는 아버지 존 밀즈를 기죽게 할 만큼 명연이었고 베를린 영화제 특별상, 영국 아카데미 신인상을 수상했으니까요.

[타이거 베이]의 여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인상깊게 본 사람들 중 디즈니의 부인이 있었다는군요. 곧 디즈니 사에는 헤일리 밀즈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계약을 맺었습니다.

밀즈의 첫 미국 영화는 유명한 [폴리애나 Pollyanna (1960)]였습니다. 상복이 터졌는지, 밀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었죠. 그 뒤에 나온 [The Parent Trap (1961)]는 그것보다 더 히트였습니다. 밀즈가 부른 주제가도 상당히 인기였고요.

그 뒤로도 많은 재미있는 영화들이 나왔지만, 디즈니에서 밀즈의 경력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밀즈의 경력은 계속 이어졌지만 결코 60년대 초의 그 화끈함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역 배우 징크스라는 게 밀즈에게도 작용했던 거예요.

2.

헤일리 밀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폴리애나]와 [The Parent Trap]을 보면 대충 사람들이 밀즈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예쁘지는 않아도 밝고 친근하고 활달한 금발 소녀 말이죠. 동네 파자마 파티나 댄스 파티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소녀 말이에요. 가끔 괴상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그런 잘못들도 따뜻한 가족의 화해 속에서 모든 게 용서되겠지요.

'평범하다'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밀즈의 외모는 그렇게 인상적이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밀즈를 좋은 배우로 만든 건 이 배우의 외모가 아니라 에너지와 재능이었습니다. 이 둘이 결합하고 나서야 밀즈의 평범한 외모도 나름대로 친근한 매력을 갖추게 되었던 거죠. 관객들은 어느 배우가 '평범해서' 좋아하는 법은 없습니다. 성공한 '평범한' 외모의 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 밀즈는 보기만큼 평범한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의 테크닉을 보려면 [The Parent Trap]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밀즈는 케스트너의 동화를 번안한 이 영화에서 어렸을 때 헤어진 쌍둥이 자매를 모두 연기했었습니다. 스토리 전체를 1인 2역의 트릭으로 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밀즈는 그럴싸하게 이 쌍둥이들을 차별화시켜 독립적인 캐릭터로 유지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서커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수 효과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거의 전문적인 트레이닝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첫 영화인 [타이거 베이]에서 보여준 놀라운 연기는 이 친구의 재능이 거의 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걸 증명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유전자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이 떠드는 것이겠죠.

3.

유감스럽게도 밀즈의 이런 재능은 십대 때 잠깐 반짝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밀즈는 여전히 활동하는 배우지만, 이 배우의 성공작들은 대부분 60년대에 몰려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야 많았습니다. 12살이라는 나이가 아역 배우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여서였기도 했을 겁니다. 성인 밀즈의 외모가 그렇게 흥미진지하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고요. 요새와는 달리 아역 배우 징크스가 당시엔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주변 환경도 성장에는 좋지 못했을 겁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재능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디즈니 사의 영화들은 상업적 성공작들이었지만 밀즈에게 충분한 연기 기회를 주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배우로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던 20대 초반은 형편없는 작품 선택과 스캔들로 거의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이제 헤일리 밀즈는 거의 잊혀진 배우나 다름 없습니다. 동생의 명성에 눌려 지냈던 줄리엣 밀즈의 활동이 더 활발하다면 활발하죠. 헤일리 밀즈의 성인 경력은 [The Parent Trap]의 텔레비전 속편으로 꽉 차있는 것 같습니다. 옛 명성을 끝도 없이 우려 먹는다고 할까요. 그래도 90년대 경력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은 [왕과 나]의 무대 연기 정도입니다.

4.

대표작은? 헤일리 밀즈라는 배우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 영화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면 [폴리애나]와 [The Parent Trap]을 골라주면 될 겁니다. 하나 더 필요하다면 [That Darn Cat! (1965)]을 뽑아줄 수도 있죠.

하지만 밀즈의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리스트가 제공됩니다. [타이거 베이], [우리들만의 비밀 Whistle Down the Wind (1961)], [The Chalk Garden (1964)]이죠. 모두 영국 영화들인데, 우연의 일치는 아닙니다. 디즈니와 달리, 영국에서는 밀즈에게 꾸준히 진지한 역을 주었으니까요.

밀즈의 디즈니 시절 영화들은 대부분 (또는 전부가) 국내에 소개되었습니다. 역시 그 막강한 [디즈니랜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죠. 대부분 둘로 쪼개져 2부로 나뉘어서요. 영국 시절 작품 중 [The Chalk Garden]이 명화극장에서, [타이거 베이]가 EBS에서 방영되었고요. 밀즈의 성인 시절 작품인 [끝없는 밤]도 명화 극장에서 방영되었는데, 별로 좋은 영화는 아니었어요 (원래 크리스티의 원작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00/01/3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