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빈센트 미넬리 Vincente Minnelli

주연
주디 갈란드....에스터 스미스
Judy Garland....Esther Smith
마가렛 오브라이언....투씨 스미스
Margaret O'Brien....Tootie Smith
메리 애스터...안나 스미스
Mary Astor....Anna Smith
루실 브레머....로즈 스미스
Lucille Bremer....Rose Smith
조안 캐롤....아그네스 스미스
Joan Carroll....Agnes Smith
톰 드레이크....존 트루잇
Tom Drake....John Truett
마조리 메인....케이티
Marjorie Main....Katie
레온 에임즈....알론조 스미스
Leon Ames....Alonzo Smith
해리 대븐포드....할아버지
Harry Davenport....Grandpa
준 록하트....루실 발라드
June Lockhart....Lucille Ballard
헨리 다니엘즈 주니어....론 스미스 주니어
Henry Daniels Jr....Lon Smith Jr
로버트 설리....워렌 셰필드
Robert Sully....Warren Sheffield

1. 줄거리

(1) 1903년 여름, 다음 해 봄에 열릴 만국박람회 뉴스로 떠들썩한 세인트 루이스 시. 켄싱턴 가에 사는 스미스 가족의 첫딸 로즈는 남자 친구 워렌이 뉴욕에서 걸 장거리 전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워렌이 청혼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필이면 전화가 식당 쪽에 있고 전화를 받을 시각이 저녁 시간이네요. 가족들은 로즈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저녁 시간을 한시간 앞당기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계획은 엉망이 됩니다. 게다가 눈치없는 워렌은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장거리 전화를 걸었으면서도 "거기도 덥니?" 따위의 소리나 하고 있습니다!

한편 옆집에 새로 이사온 존 트루잇에게 호감을 느낀 둘째딸 에스터는 그를 파티에 초대한 뒤 그 밤이 지나기 전에 키스하게 만들려고 분위기를 잡습니다. 하지만 이 둔한 남자를 꼬시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2) 1903년 가을, 할로윈. 스미스가의 셋째딸 아그네스와 넷째딸 투씨는 유령으로 분장하고 마을에서 악명높은 브로코프 씨를 혼내주려 출발합니다. 작다고 늘 따돌림 받던 투씨는 브로코프 씨의 얼굴에 밀가루를 집어던지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가장 '끔찍한' 아이가 됩니다.

잠시 뒤, 투씨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고 존 트루잇이 그 아이를 때렸다고 생각한 에스터는 옆집으로 달려가 그를 때려잡습니다. 하지만 존은 못돼먹은 투씨를 말썽으로부터 구해내려다 오히려 아이한테 당했을 뿐이죠. 에스터는 허겁지겁 그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관계는 조금 더 발전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집에 옵니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뉴욕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는 거죠. 스미스 가족은 세인트 루이스를 떠나 뉴욕으로 이사를 가야합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우리가 짜놓았던 장래 계획은? 무엇보다 내년에 열릴 만국박람회를 놓쳐야하다니!

(3) 1903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로즈는 워렌이 댄스 파티에 '동부에서 온 속물' 루실을 에스코트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삐칠 대로 삐쳐 있습니다. 게다가 존은 턱시도를 가져올 수 없어서 에스터와 댄스 파티에 가지 못한다네요. 간신히 오빠와 할아버지를 대용품으로 끌고 갔더니 루실이 오빠에게 관심을 가지는 통에 루실은 더 이상 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루실을 곯리려 계획한 모든 음모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에스터는 막판에 뛰어들어온 존과 '세인트 루이스에서 마지막 춤'을 춥니다.

파티에서 돌아온 에스터는 산타 클로스를 기다리던 투씨를 위로하지만 오히려 히스테리를 일으킨 투씨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낮에 만들었던 눈사람들을 때려 부숩니다.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다가 이사 계획을 백지화시키네요.

(4) 1904년 봄. 드디어 고대하던 만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스미스 가족은 마차를 타고 박람회장으로 갑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우리가 이미 들었던 '집처럼 좋은 곳은 없어' 주제가 되풀이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2. 꼭 필요한 도피

빈센트 미넬리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당시 극도로 절실했던 도피의 욕구를 해소시키기 위해 제작된 영화였습니다. 44년도 영화니 제작 당시만 해도 전쟁이 한창일 때였지요. 당시 관객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전쟁터로 보낸 뒤 탄피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심란한 세상을 철저하게 잊게 해줄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어요.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것이 하늘이 무너질 일이고 남자 친구와 댄스 파티에 못가는 것 때문에 펑펑 울어 침대를 적시는 세계에 대한 영화 같은 것 말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샐리 벤슨의 책(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이 영화의 투씨는 바로 샐리 벤슨 자신입니다)은 바로 그런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섞인 달콤한 회상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제이콥 어거스트 리스가 찍었던 이민자의 아이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전쟁 당시 관객들이 원했던 것은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고자 원했던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미국식 가정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그런 모습을 노먼 로크웰의 그림처럼 예쁘고 친근감있게 포장해서 내놓았던 겁니다.

위에 올린 줄거리를 한 번 보세요. 영화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대신, 가볍게 연결된 일화들을 교묘하게 이용해 '아 정말 저렇게 살았으면!'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집중하지요. 그리고 이 모든 음모는 성공적이에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정말 잘 만든 영화니까 말입니다.

3. 뮤지컬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MGM사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뮤지컬 중 하나이니, 이 영화의 뮤지컬 요소들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죠.

일단 이 영화가 주디 갈란드의 독무대나 다름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어요. 갈란드가 빠진 노래는 기껏해야 한 두 개에 불과하고 순수한 독창만 해도 3개나 됩니다(그리고 이 모든 노래들이 나중에 갈란드의 애창곡이 되지요!) 그 때문에 앙상블 면은 좀 떨어져요.

음악의 배분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대부분의 노래가 1부에 몰려있고, 2부와 3부에는 각각 하나씩 밖에 없으며, 4부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1부만 본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을 다 듣게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꼭 뮤지컬적이지는 않아도 훌륭한 장면들이 2부와 3부에 잔뜩 있으므로 보노라면 그 불균형 때문에 심하게 방해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3부에 나오는 노래가 그 유명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니 그 무게로 균형을 이룬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2부의 노래인 [You and I]도 꽤 흥미진진한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미스 부부가 부르는 이 노래에서 스미스 씨의 파트를 더빙한 가수가 바로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며 MGM 뮤지컬의 산실이었던 프리드 유닛의 두목 아더 프리드 자신이였으니까요.

주제가로 쓰이고 중간중간마다 끝없이 나오는 노래인 [Meet Me in St. Louis]는 이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노래가 아니라 1904년 세인트 루이스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곡입니다. 한마디로 엑스포 주제가죠.

4. 주디 갈란드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는 주디 갈란드 + 빈센트 미넬리 콤비의 최초 작품인 동시에 최대 걸작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갈란드와 미넬리가 이 영화를 통해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그들에겐 개인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영화라고 해야겠지요. 하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갈란드를 묘사하는 걸 보면 정말 감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미넬리의 사적인 감정은 빼더라도 갈란드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21살이라 틴에이저 역을 하기엔 조금 나이가 든 것도 사실이지만 원래 그 사람은 동안이잖아요. 게다가 틴에이저 배우의 막강한 경력 때문에 진짜 틴에이저보다 더 진짜처럼 보입니다.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거예요. :-)

5. 마가렛 오브라이언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는 바로 마가렛 오브라이언입니다. 이 배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지요.

일단 오브라이언은 훌륭한 아역 배우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음정 박자를 마구 무시해가며 [Under the Bamboo Tree]를 부르는 모습은 앙증맞게 귀엽고 6살짜리 꼬마치고는 징그러울 정도로 대사 소화 능력도 뛰어나요.

게다가 이 꼬마 아가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저희들은 '롱테이크와 클로즈 업에 대한 적응력'으로 배우들을 평가하는 단순무식한 태도 때문에 종종 욕을 먹는데, 적어도 오브라이언은 이 시험을 매끈하게 통과해 나갈 것입니다. 2부에 투씨가 브로코프 씨에게 밀가루를 퍼부으러 가는 근사한 장면이 있지요. 감독은 투씨가 저택 앞까지 도착할 때까지 그 아이의 얼굴을 롱테이크로 잡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아이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변은 어두워지며 바람은 휭휭 불고... 그러는 동안 오브라이언은 점점 겁에 질려 새파랗게 얼어붙어가는 꼬마의 모습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내지요.

투씨가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사실도 오브라이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이 꼬마는 귀엽고 아이답지만 가끔 엄청나게 조숙한데다가 이상할 정도로 죽음에 집착하는 괴기한 면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온화한 가정 영화였기 때문에 투씨가 [피아노]의 플로라처럼 정말로 무시무시한 캐릭터로 발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세월이 흘러야 했지요.

6. 세인트 루이스

저희 같으면 세인트 루이스에서 뉴욕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면 꽤 좋아했을텐데 말이에요. 하긴 오래 살면 정이 들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세인트 루이스가 1904년 만국박람회 한 거 말고 한 게 뭐가 더 있을까요... 흐음... (97/08/22)

D&P

기타등등

1. 이 영화에 나오는 젊은 남자들은 왜들 그렇게 똑같이 생겼는지. 정말 구별하는 데에 애를 먹었습니다. 스미스가의 외동 아들인 론은 영화 끝날 때까지 얼굴도 기억 안나고, 3부에서 워렌이 뛰어 들어와 로즈에게 '널 사랑해!'하고 외쳤을 때도 '저애가 누군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스미스가의 두 노땅인 할아버지와 아빠는 꽤 재미있게 구현된 캐릭터들입니다.

2.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촬영 도중 앞니가 빠져서 의치를 달고 찍어야 했답니다.

3. 유명한 '눈사람 부수기' 장면에 대해서는 끔찍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넬리의 회상에 따르면, 오브라이언이 그 장면에서 생각만큼 잘 울지 않자 그 아이가 키우던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감정을 끌어냈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오브라이언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4. 정말로 예전 할로윈 놀이가 밀가루 던져서 사람을 '죽이기'였다면 요새 할로윈의 '사탕 주세요'는 도덕적으로 참 발전한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