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 * * 1/2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주연
제레미 블랙먼....스탠리 스펙터
Jeremy Blackman....Stanley Spector
톰 크루즈....프랭크 T.J. 매키
Tom Cruise....Frank T.J. Mackey
멜린다 딜론....로즈 게이터
Melinda Dillon....Rose Gator
에이프릴 그레이스....그웨니비어
April Grace....Gwenovier
루이스 구즈만....루이스 구즈만
Luis Guzmán....Luis Guzmán
필립 베이커 홀....지미 게이터
Philip Baker Hall....Jimmy Gator
필립 시모어 호프만....필 파마
Philip Seymour Hoffman....Phil Parma
올란도 존스....웜
Orlando Jones....Worm
윌리엄 H. 메이시....도니 스미스
William H. Macy....Donnie Smith
알프레드 몰리나....솔로몬 솔로몬
Alfred Molina....Solomon Solomon
줄리앤 무어....린다 파트리지
Julianne Moore....Linda Partridge
마이클 머피....알랜 클릭먼
Michael Murphy....Alan Kligman, Esq.
존 C. 라일리....짐 커링
John C. Reilly....Jim Kurring
제이슨 로바즈....얼 파트리지
Jason Robards....Earl Partridge
멜로라 월터즈....클라우디아 윌슨 게이터
Melora Walters....Claudia Wilson Gator

1.

옛날 옛적에 찰스 포트라는 남자가 살았습니다. 자기를 과학의 비판자 쯤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전공은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일들을 채집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UFO나 네스호의 괴물, 설인과 같은 이상 현상에 열광하는 데엔 포트의 책임도 있습니다. 이런 유행의 창시자니까요. 지금도 찰스 포트 연구소라는 것이 있어서 포트의 전통을 이어 기괴한 사건들을 꾸준히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보통 찰스 포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개구리 비입니다. 포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괴상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잔뜩 모았었지요. 포트의 기록들을 읽어보면 하늘에서 물만 떨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정말 별별 게 다 떨어지니까요. 자갈, 개구리, 물고기... 아마 출애굽기에 나와있는 기괴한 사건들도 포트 현상이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원인은? 아무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간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래도 부족해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영화에서 지미 게이터 역을 한 배우 필립 베이커 홀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에서 개구리 비를 15분이나 맞은 적 있었다는군요. 근사한 우연의 일치지요? 개구리 비에 대한 영화에 출연하기로 된 사람에게 그런 경험이 있었다니까요.

아니,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칼 구스타프 융 같은 사람들은 이런 기괴한 우연의 일치에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융은 이런 현상에 이름도 붙였습니다. 싱크로니시티 Synchronicity라고요. [매그놀리아]에도 싱크로니시티의 멋진 예들이 나오죠. 그 중 가장 근사한 것은 투신 자살하려고 뛰어내린 청년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도시 전설 중 하나인데, 정말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군요.

2.

[매그놀리아]는 싱크로니시티에서 시작해서 찰스 포트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우연의 일치들을 나열하며 본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라는 것을 갑작스럽게 결말 짓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개구리들입니다.

앤더슨이 싱크로니시티를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전 그가 이 개념을 아주 진지하게 다루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개념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보통 우린 일상어에서 '우연'을 두 가지의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냥 우연과 의미있는 우연이지요. 예를 들어 전 어제 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모두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 극장에서 우연히 내 학교 동창을 만났다면, 그 우연은 아까의 우연과 살짝 다릅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우연입니다.

[매그놀리아]에서 일어나는 우연은 대부분 전자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의식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인과의 톱니바퀴에 끼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싱크로니시티의 음흉한 사전 계획은 거의 볼 수 없어요. 있다면 게이터의 딸과 목하 연애 중이었던 짐이 게이터의 쇼에 출연한 적 있던 도니 스미스를 구해주는 정도인데, 거기에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 장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던 남남이었던 짐이 도니를 구해주었다는 사실 자체지요. 다시 말해 영화 도입부의 예들은 잘못 인용된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첫번째 예에서 투신 자살한 청년은 모든 요소들을 초단위까지 계산한 잔혹한 운명의 희생자지만, 도니와 짐의 만남은 말 그대로 어쩌다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계획의 일부일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 눈에는 투신 자살한 청년처럼 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여간 앤더슨이 이런 우연들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그건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있겠지요. 관용과 용서말입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수많은 우행들과 실수, 악행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우연의 그물 속에서 너무 작고 하찮아 보입니다. 극장에서 세 시간 동안 사람들의 미약함과 무능함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관객들도 살만큼 다 산 노인네처럼 관용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과거, 특히 윗세대의 잘못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도니가 출처도 모르고 인용했던 말처럼 '아버지의 죄를 아들들이 뒤집어 쓰는' 셈이지요. 탐욕스러운 부모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소년 신동들, 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뒤 마약 중독자가 된 딸,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아들... 노인네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고 젊은이들은 분노로 불타고 있죠.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용서와 화해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은 노인네들이나 젊은이들이나, 자기네들이 그렇게까지 야무지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랭크와 얼의 재회 장면이 가장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프랭크는 그토록 증오하고 있던 아버지 앞에서 제대로 분풀이도 하지 못합니다. 하긴 다 죽어가는 노인네한테 화를 내봐야 얼마나 낼 수 있겠어요.

이런 악연을 보다 확실하게 끊어버리기 위해 앤더슨은 영화 후반에 개구리 비를 쏟아붓습니다. 개구리비는 출애굽기와 연결되어 구약식 단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만, 그렇게까지 매정한 결말로 볼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정 구약식 정서를 끌어내고 싶다면 단죄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보다 소극적인 교훈을 첨가하면 되겠지요.

3.

[매그놀리아]는 용감한 영화입니다. 세 시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 어마어마한 숫자의 캐릭터들, 웬만한 오페라를 능가하는 감정 폭발... 더욱더 놀라운 것은 영화가 이 모든 것들을 시니시즘 하나 섞지 않고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영화가 90년대를 사는 20대 후반의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인가요? 와우.

종종 그 용감함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앤더슨의 예술적인 야심이 그의 예술적 통제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요. 몇몇은 극중 인물의 감정이 주제의 중요성을 넘어서고, 몇몇은 스타일이 통제를 벗어납니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에이미 만의 노래에 맞추어 모든 등장인물들이 순서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 같은 걸 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길지요.

하지만 이런 미완의 느낌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더 노련한 거장이라면 훨씬 날씬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앤더슨의 젊은이다운 야심과 종종 튀어나오는 통제력의 결함은 완벽한 영화에서라면 느낄 수 없을 인간적인 뒤틀림을 제공해줍니다. 트뤼포라면 '결점있는 걸작'이라고 부를 바로 그런 영화지요.

그리고 [매그놀리아]는 결코 야심만 큰 영화도 아닙니다. 종종 도가 지나쳐서 그렇지,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며 거대한 음악을 끌어내는 앤더슨의 테크닉은 놀랍습니다. 우직스러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쉽게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가 젊은이답지 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도 주목할만합니다. 이들 모두 자기 실력을 발휘할 근사한 공간을 배정받고 있고요. (00/04/25)

DJUNA


기타등등

그런데 왜 제목이 [매그놀리아]일까요? 앤더슨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 그냥 머리 속에서 갑자기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는 다음 인터뷰에서 일종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