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한

주연
차태현....지환
이은주....경희
손예진....수인
문근영....지윤
사강....민영
김남진....도서대여점 학생
신승환....민식
박용우....철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환, 경희, 수인

[연애소설]은, 이 영화의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손예진의 차기작 [클래식]과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클래식]이 70년대 문화의 촌스러운 순진함을 의식적으로 끌어와 쓴 영화라면, [연애소설]은 현대 '순정만화'의 달짝지근한 감수성을 가져와 아무런 변명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다루는 작품이지요. 그래도 [연애소설]이 [클래식]보다는 조금 더 교활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삼각관계 이야기입니다. 1996년, 선배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휴학생 지환은, 친구 경희와 함께 카페를 찾아온 수인을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수인은 지환의 구애를 거절하지만, 셋은 곧 단짝 친구가 되지요. 영화는 2001년 현재의 지환이 5년전에 그가 겪었던 그 살짝 위태로운 감정의 경험들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도서대여점 아르바이트 학생을 짝사랑하는 지환의 동생 지윤의 이야기가 삽입되기도 하죠.

[연애소설]은 [쥘과 짐]식 'Ménage à Trois'를 다룬 가장 나이브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환, 경희, 수인의 삼각관계는 비전통적이고 아슬아슬하지만 당혹스러울 정도로 순진합니다. 섹스는 거의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고 그 빈 자리는 정말 풋풋하기 짝이 없는 젊은 감정으로 차 있지요. 질투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친구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순수한 상태 말이에요. 이들의 깨끗한 관계는 영화를 필연적인 결말로 몰고가는 도식적인 불치병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정화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종종 당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환은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요? 그는 처음에 수인에게 접근했다가 나중에 경희에게 끌립니다. 그렇다고 수인에 대한 따뜻한 호감을 접는 것도 아니고요. 이 설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로맨스의 공식과는 분명 어긋납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보는 관객들은 분명한 감정의 방향을 원하니까요. 그러나 지환은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릿하게 행동합니다. 5년 뒤의 그가 회고하는 것도 구체적인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셋이서 함께 지냈던 당시의 막연하지만 좋은 기억뿐인 것 같아요.

이 흐릿함은 후반부의 반전을 통해 경희와 수인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어느 정도 의미를 찾습니다. 사실 주인공처럼 보였던 지환은 수인과 경희의 이야기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기능성 도구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죠. 경희의 회상에 따르면 수인과 경희는 거의 운명으로 맺어진 연인들이며 이들의 '이름바꾸기'는 비공식적인 결혼 예식입니다. 수인은 그들이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경희를 남자아이로 바꾸는데, 그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이 거의 없는 순진무구한 젊은 여성이 다른 여성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맨틱한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지환은 일종의 꽃다발이 되어버리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꽤 냉정해질 수도 있는 설정인데, [연애소설]은 그런 냉정함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지환이고 그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의 '아름다운 기억'을 날리고 싶어하지도 않고요. 그는 여전히 두 사람을 사랑하고 그 좋은 감정을 깨끗한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합니다. 상당히 자기기만적이에요.

하지만 그런 느낌이 이 영화에 엉뚱한 매력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감상적이고 통속적인 수사와, 어느 순간부터 경계선 너머로 확장된 감정과 설정의 기형성이 재미있는 부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어디까지가 의도적인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연애소설]은 직설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속에 숨겨진 어긋난 측면을 함께 읽을 때 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04/05/17)

DJUNA

기타등등

문근영의 첫 극장용 영화입니다. 보다보면 왜 나왔나 생각이 들 정도지만 나오지 않았어도 서운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