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와이 슈운지 Shunji Iwai

주연
나카야마 미호....후지이 이츠키 (여)/와타나베 히로코
Miho Nakayama....Itsuki Fujii/Hiroko Watanabe
토요카와 에츠시....아키바 시게루
Etsushi Toyokawa....Shigeru Akiba
한 분자쿠....이츠키(여)의 어머니
Bunjaku Han....Female itsuki's mother
시노하라 카츠유키....이츠키(여)의 할아버지
Katsuyuki Shinohara....Female itsuki's grandfather
사카이 미키....후지이 이츠키 (아역)
Miki Sakai....Itsuki Fujii (as a young girl)
카시와바라 타카시....후지이 이츠키(남)
Takashi Kashiwabara....Male itsuki fujii
카가 마리코....이츠키(남)의 어머니
Mariko Kaga....Male itsuki's mother
스즈키 케이치....이츠키(남)의 아버지
Keiichi Suzuki....Male itsuki's father
스즈키 란란....오이카와 사나에
Ranran Suzuki....Sanae Oikawa

1.

등산가서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학교 앨범을 들춰보다 약혼자의 옛 주소를 알아낸 히로코는 그 주소로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국도에 밀려 오래전에 무너진 줄 알았던 그 집에서 약혼자의 이름으로 답장이 돌아오는군요. 되풀이되는 편지를 통해 히로코는 그 답장을 쓴 사람이 약혼자와 같은 중학교를 다니던 동명이인의 여성임을 알아냅니다...

2.

영화는 같은 남자의 추억으로 연결된 두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히로코는 비극적으로 죽음을 당한 연인의 옛 추억에 억눌려 있고, 이츠키는 히로코의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던 중학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내고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냅니다.

보기만큼 로맨틱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히로코의 추억은 현재의 삶을 억압하고 있고, 이츠키의 추억은 영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의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추억이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순전히 남자가 죽었기 때문이지요.

죽은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죽은 남자는 옆자리에 앉아 방귀를 뀌어대지도 않고 바람을 피우지도 않으며 보기싫은 권투 시합을 보겠다고 억지로 채널을 빼앗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은 고정된 이미지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모든 것들은 충분히 미화가 가능합니다. 살아있는 남편을 그렇게 꾸밀 수 있을까요? 어림없는 소리죠.

심지어 우리는 남의 추억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러브 레터]의 이야기는 그래서 조금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이츠키가 지금까지 잊고 있던 첫사랑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약혼자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한참 세로토닌 결핍에 빠진 히로코의 조종으로 이츠키가 옛 추억을 개조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실과 우연히 맞아떨어진 건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죠.

하긴 둘 다 손해는 보지 않았겠군요. 히로코는 공짜 심리 치료를 받은 셈이고 이츠키는 나름대로 감상에 젖어 몽롱해질 기회를 얻었으니까.

3.

[러브 레터]의 네크로필리아가 거슬리지 않는 것은 영화가 무척 예쁘기 때문입니다. 2.35:1의 와이드 스크린 위에 펼쳐진 설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아름다우며 그 위에 벌어지는 다양한 이미지들도 정갈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가끔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엔니오 모리코네를 표절하기는 하지만 레미디오스의 음악도 쉽게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영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정서적인 장식입니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정서적 동기와 행동들을 기가 막히게 예쁘장하게 만들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너무 예쁘장해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합니다. 예쁘기만 한 존재는 추함과 지저분을 버린 것 만큼이나 진실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영화의 정서는 무척 인공적으로 보입니다.

[러브 레터]는 감정에 대해서보다는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을 '감성'이라는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감수성'의 준말일 뿐인 이 단어가 왜 그렇게 과대평가 되고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외부조건에 따른 기계적 반응의 정도에 불과한데.

[러브 레터]는 예쁘고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깊이 즐기기엔 지나치게 장식이 많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정서적 장식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지요. 전 케익의 설탕장식만 골라먹기도 하고 그걸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쎄요. 그래도 전 설탕 장식보다는 케익을 먹고 싶습니다. (99/11/23)

DJUNA

기타등등

흥행 돌풍을 일으킬 최초의 일본 영화가 될 거라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전 동네 극장에서 '혼자' 봤답니다. 극장 전세내고 보는 기분을 잊어버린 것도 꽤 오래되었는데... 기분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