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돈 맥컬러 Don McKellar

주연
돈 맥컬러....패트릭 윌러
Don McKellar....Patrick Wheeler
산드라 오....산드라
Sandra Oh....Sandra
데이빗 크로넨버그....던컨
David Cronenberg....Duncan
트레이시 라이트....도나
Tracy Wright....Donna
쥬느비에브 비졸드....칼턴 부인
Geneviève Bujold....Mrs. Carlton
로버타 맥스웰....윌러 부인
Roberta Maxwell....Mrs. Wheeler
로빈 개멜....윌러 씨
Robin Gammell....Mr. Wheeler
사라 폴리....제니퍼 윌러
Sarah Polley....Jennifer Wheeler
트렌트 맥멀렌....알렉스
Trent McMullen....Alex
카렌 그레이브....릴리
Karen Glave....Lily
아르시네 칸지안....전차 안의 어머니
Arsinée Khanjian....Streetcar Mother
찬드라 무즈카....전차 안의 딸
Chandra Muszka....Streetcar Daughter
샤미온 킹....할머니
Charmion King....Grandmother
컬럼 키스 레니....크레이그 즈윌러
Callum Keith Rennie....Craig Zwiller

1.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뭘 하겠니?" 여러분도 이런 질문을 한 번 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다들 한 번 이상씩 이 질문에 대해 자문자답해 봤을 거고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피노자라는 유태인 렌즈 세공인은 그래도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했지요. 아름다운 말이지만 정작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하여간 바로 이게 이 영화 [마지막 밤]의 주제입니다. 영화는 세상 종말 6시간 전에 시작합니다.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핵전쟁이 일어나서가 아닙니다. 그냥 가전 제품의 플러그를 뽑을 때처럼 조용히 끝나는 거죠.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유일한 징조는 더 이상 지지 않는 태양뿐입니다. 그래도 모두 세상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실제로 종말이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대규모와 공황이나 약탈, 살육, 강간과 같은 일이 일어날테고, 미치는 사람도 많을 거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겠죠. 결코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마지막 밤]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영화는 흥분해서 미쳐 날뛰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담습니다. 물론 조용하다고 해서 다 품위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 중 한 명은 종말이 오기 두 달 전부터 자신의 온갖 성적 환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별 짓을 다합니다. 흑인 여성, 처녀, 옛날 고등학교 불어 선생님, 그리고 빈 가능성의 공간을 확실하게 채우기 위해 친한 친구한테 동성애를 제안하기도 하죠.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패트릭은 보다 소극적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운명의 장난 때문에 패트릭은 종말 몇 달 전에 아내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그의 삶은 슬프고 세상 종말에 대한 별다른 분노도 없습니다. 그저 마지막 밤을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을 뿐이죠.

그러나 그의 소박한 계획은 산드라가 그의 삶에 끼어들면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패트릭과는 달리 산드라에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종말 직전에 남편과 동반 자살한다는 것이었죠. 그녀는 종말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그만 폭도들이 차를 망가뜨립니다. 그녀는 패트릭의 도움을 받아 필사적으로 남편에게 달려가려 하지만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패트릭과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영화는 결국 스피노자의 선택으로 흘러갑니다. 종말 몇 시간 전에 만난 이들은 세상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상대방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산드라는 후반부에 꽤 재미있는 말을 하죠. 패트릭이 신상명세서를 읊듯 자기 소개를 늘어놓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둘러요.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해줘요."

하긴 종말을 여섯 시간을 남긴 세상이나, 언젠가 죽어 넘어질 우리네 삶이나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사랑하고 사랑받을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에요.

2.

[마지막 밤]은 캐나다 영화계의 마당발인 돈 맥컬러의 감독 데뷰작입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발이 넓은 지 알려면 슬쩍슬쩍 지나가는 카메오들을 구경하면 되죠. 만약 캐나다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모두 98년 어느 날인가에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건 그들이 맥컬러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토론토의 촬영장으로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아톰 에고이안, 데이빗 크로넨버그, 산드라 오, 사라 폴리, 아르시네 칸지안, 쥬느비에브 비졸드, 프랑스와 지라르... 정말 끝도 없습니다. 물론 맥컬러 자신도 주인공 패트릭으로 출연하고요.

맥컬러는 영화를 일종의 심각한 코미디로 꾸며내고 있습니다. 농담들은 무표정하고 건조하며 가끔 괴상합니다. 이 가라앉은 유머는 세상 종말이라는 엉뚱한 설정과 잘 어울리며 산드라와 같이 심각하고 유머가 부족한 캐릭터들과도 별다른 문제없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가 선택한 영화의 비현실성은 오히려 결말의 감정을 강화시킵니다. 만약 종말이 거대한 핵폭발로 끝났다면 그 결과 닥치는 참사와 육체적 고통 때문에, 종말과 관계된 다른 감정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힘들었겠지요. 그러나 이 영화에선 순수히 감정만 남아 있습니다. 마치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광장에 모여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의 머리에 총부리를 들이댄 우리의 두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어떤 '종말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묘함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런 감정에는 열심히 뛴 두 주연 배우의 호연도 한 몫 했겠지요. (00/05/17)

DJUNA

기타등등

산드라 오는 이 영화로 두 번째 제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