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메리안 C. 쿠퍼 Merian C. Cooper
어네스트 B. 쇼어드색 Ernest B. Schoedsack

주연
페이 레이....앤 대로우
Fay Wray....Ann Darrow
로버트 암스트롱....칼 덴햄
Robert Armstrong....Carl Denham
브루스 캐봇....잭 드리스콜
Bruce Cabot....Jack Driscoll
프랭크 라이처....엥글혼 선장
Frank Reicher....Capt. Englehorn
샘 하디....찰스 웨스턴
Sam Hardy....Charles Weston
노블 존슨....원주민 추장
Noble Johnson....Native Chief

킹콩 대 복엽기

[킹콩]은 단점들을 잡아내는 것이 장점들을 예찬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각본은 어색하고 대사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뻣뻣합니다. 배우들 역시 고함지르거나 달리는 것 이외엔 다른 기능이 없는 마네킹 같고요. 당시만 해도 경이적이었던 특수효과 역시 최첨단 특수 효과에 익숙해진 현대 관객들에겐 낡고 조악해보입니다. 정치적 공정성은 처음부터 기대도 할 수 없고요. 이 영화는 아무리 봐도 결코 유려한 걸작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 영화를 특수효과 영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30년대의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하나의 장르를 쌓아올린 선구자로 받아들이고 존경을 표하며 물러난 뒤, 일급 배우들과 감독, 각본가들이 진짜 제대로 된 특수 효과를 이용해 만든 피터 잭슨의 리메이크 [킹콩]을 기다리면 될 것입니다. 간단하죠?

아뇨, 그렇게 간단할 리 없습니다. 일단 피터 잭슨 자신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오리지널 [킹콩]을 사랑하고 그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킹콩]에서 진짜로 흥미로운 건 바로 위에서 제가 지적한 단점들이 고스란히 영화의 매력으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메리안 C. 쿠퍼와 어네스트 B. 쇼어드색이 만든 이 고릴라 영화는 결코 '유려한 걸작'이 될 수 없는 영화였을뿐만 아니라 그런 '유려한 걸작'이 되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킹콩]의 완벽함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런 불완전한 요소들이 재료가 되어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킹콩]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괴물들이 부글거리는 해골섬에서 살다 뉴욕으로 끌려온 거대한 고릴라입니다. 이 괴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 야만성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야만은 일반적인 '자연'의 구성요소가 아닙니다. 20세기 미국인들이 누리고 있던 '문명'의 대립항이죠. 킹콩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달고 다니는 양심, 법률, 규약 따위에 얽혀있지 않습니다. 자유롭고 거대하고 엄청 힘이 센 야수인 그는 우리가 꿈만 꾸었던 온갖 일들을 당연하다는 것처럼 합니다.

헤이즈 규약 이후 [킹콩]이 검열 대상이 되었던 건 당연합니다. 이 고릴라가 하는 짓을 보세요. 킹콩은 사람들을 밟아 죽이고 씹어 죽이고 머리를 뜯어 먹습니다. 앤인 줄 알고 집어 온 여자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자 그냥 고층빌딩에서 버리고요. 앤에게 하는 짓도 그렇게 고상하지는 않습니다. 검열 이후 잘려나갔던 킹콩이 앤의 옷을 하나씩 벗기는 장면을 보세요. 심지어 이 친구는 옷 조각의 냄새를 맡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은 이 친구가 전에 계속 '신부'로 삼았던 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상해 보셨나요?

당연히 이런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에 맞는 캔버스와 화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유성 영화 초기의 특수 효과 개척자들이 필사적으로 창조해 냈던 거칠고 투박한 스타일은 이런 이야기에 맞는 완벽한 도구였던 거죠.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상관 없습니다. 그 스타일은 이 영화에 완벽하게 맞았어요. 현대 특수 효과 영화의 이미지가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화가들이 극사실적인 화법으로 그린 정교한 판타지라면 [킹콩]의 이미지는 고야 같은 화가가 붓을 휙휙 휘둘려 그린 광폭한 그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건 [킹콩]이 단순히 투박하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투박함과 세련됨이 아주 교활하기까지 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 음악을 혼자 힘으로 창조한 것이나 다름 없는 막스 스타이너의 스코어는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걸작입니다. 페이 레이가 비명만 질러대는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 역시 자기 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전문 배우였고요. 쿠퍼와 쇼어드색은 거칠고 투박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영화의 핵심은 완벽하게 꿰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걸작들이 그렇듯, [킹콩]은 완벽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고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완벽한 페이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전 여전히 피터 잭슨의 리메이크 [킹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웨타의 전문가들이 창조한 킹콩이 나오미 와츠가 연기하는 앤 대로우와 만나는 걸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33년도판 고전을 버리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달리가 나타났다고 고야를 버려야 합니까? (05/12/06)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크라이테리언 레이저 디스크는 세계 최초의 오디오 코멘터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에 나온 DVD는 영화사가 론 하버가 녹음한 그 코멘터리를 재수록하고 있지 않더군요. 레이 해리하우젠과 켄 랄스턴이 참여한 새 코멘터리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