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캐슬린 비글로 Kathryn Bigelow

주연
해리슨 포드....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 함장
Harrison Ford....Captain Alexei Vostrikov
리암 니슨....미하일 폴레닌
Liam Neeson....Mikhail Polenin
피터 사스가드....바딤 라트첸코
Peter Sarsgaard....Vadim Radtchenko
샘 스프럴....드미트리 네프스키
Sam Spruell....Dimitri Nevsky
피터 스테빙....쿠리셰프
Peter Stebbings....Kuryshev
크리스찬 카마고....파벨 로크테프
Christian Camargo....Pavel Loktev
조스 애클랜드....젤렌초프 원수
Joss Ackland....Marshal Zelentsov

(실화인데 스포일러가 있다고 우기면 쑥쓰럽겠죠?)

폴레닌과 보스트리코프

[K-19]은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이 처음부터 끝까지 러시아 악센트를 쓰면서 소련 해군 장교처럼 행동하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모두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한 채 영화를 보게 되고요. 희귀한 예지만 그렇게까지 이상한 예는 아닙니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고려해보면 이 작품이 냉전 시대에 발표되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거예요. 여전히 이 이야기를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소련이니까요. 덜컹거리고 무능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잠수함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들의 이야기잖아요.

[K-19]호의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냉전과 군비 경쟁이 한창이던 1961년에 일어났던 잠수함 사고 이야기지요. 1961년 7월 4일 나토 작전 지역 근처에서 훈련 중이던 소련 잠수함 K-19호의 원자로의 냉각 시스템이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대로 두면 원자로가 과열해 폭발할지도 모를 일이었죠. 만약 나토 진영에서 그 폭발을 감지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자테예프 함장은 구조를 요청하려 했지만 하필이면 안테나가 고장이었답니다. 해결책은? 선원들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 방사능을 온 몸으로 뒤집어 쓴 채로 냉각 시스템을 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K-19호는 나중에 다른 소련 잠수함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원자로를 수리했던 여덟명의 승무원들은 모두 며칠 안에 사망했고, 14명이 그 뒤 2년 안에 죽었습니다. 나머지 생존자들도 방사능 누출에 따른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고요. 어떻게 보면 세계 전쟁을 막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전시가 아니어서 이들의 공적 대부분은 잊혀졌습니다.

냉전 동안 기밀에 붙여졌던 이 사건은 공산권 몰락 이후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책도 나오고 캐슬린 비글로에 의해 영화화된 것이지요. 영화에는 붕괴된 소련 체제에 대한 빈정거림이 슬쩍 섞여 있지만 특별한 정치적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사실 그런 의미를 담기엔 너무 늦기도 했고요. 중요한 건 역시 드라마였겠죠.

시작하기 전에 실제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라는 설명이 뜨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실제 사건에 충실한 영화는 아닙니다. 사고 과정은 대충 비슷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모두 달라요. 선내 갈등 과정도 대부분 지어낸 것이나 다름 없고요. 보스트리코프의 모델이 돤 자테예프 함장은 사건 당시 겨우 35살이었고, 부하들의 신임도 깊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보스트리코프는 해리슨 포드 또래의 노인네고 꼭 [케인 호의 반란]에 나오는 퀴그 선장 같은 성격이어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죠. 덕택에 영화에서는 보스트리코프와 폴레닌의 [크림슨 타이드]식 대결이 중요한 스토리 흐름을 차지합니다.

전체적으로 [K-19]의 이야기는 무척 전형적입니다. 미치광이 함장, 이성적인 부함장, 풋내기 장교, 희생적인 하사관과 같은, 이런 식의 영화에 나오는 고정 배역들이 이름을 바꾸고 그대로 등장하니까요. 이들이 겪는 이야기도 그만큼 전형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 거예요. [K-19]의 이야기는 분명 극적이지만 그렇게까지 영화적이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은 냉각수 파이프를 수리했다' 이상이 필요해요. 그런 걸 만들다보니 장르의 기본 요소들이 하나씩 수입되기 시작합니다. 또 그러다보니 결국 장르 영화가 되어버렸고요. 그것도 좀 어정쩡한 장르 영화가 된 셈이죠. 아무리 이야기를 고쳐도 기본 골격까지는 바꿀 수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이야기의 일부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특히 보스트리코프의 심경은 보다 상세하게 묘사될 필요가 있었어요. 아마 이야기를 보다 자연스럽게 윤색할만한 여유가 있었다면 가능했을 겁니다. 실제 사건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이런 문제 자체가 없었을 거고요.

기술적으로 [K-19]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캐슬린 비글로는 좋은 테크니션이고 이 영화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배우들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요. 할리우드 배우들의 러시아 악센트가 조금 당혹스럽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보다보면 곧 잊혀집니다. 이야기가 강한 정서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스토리와 미심쩍은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종종 '감동적'이 됩니다. 문제는 이런 모범적이고 안전한 장점들이 영화와 소재의 생명력을 조금씩 앗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02/09/20)

DJUNA

기타등등

1. K-19는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는 배였습니다. 잠수함은 나중에 다시 수리되어 작전에 투입되었지만 1972년에 대형 화재 사건이 일어나 28명이나 죽었답니다. 이 배는 1991년에 퇴역한 뒤, 무르만스크 항구에서 썩고 있다가 올해 봄에 해체되었습니다. 해체될 때까지 '히로시마'라는 별명을 달고 있어야 했고요.

2. 핵잠수함의 원자로 사고가 K-19에만 일어난 건 아닙니다. 냉전 시대부터 핵 잠수함의 방사능 누출로 사망하거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답니다. 미국도 여기서 특별히 우쭐거릴 입장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