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동훈

주연
강동원....전우치
김윤석....화담
임수정....서인경
유해진....초랭이
백윤식....스승
염정아....여배우
선우선....요괴
주진모....도사
김상호....신부
송영창....중

전우치와 과부

여러분은 최동훈의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유창한 대사, 그에 맞는 개성적인 캐릭터들, 이들이 만들어내는 지능적인 음모, 자유롭게 시제를 넘나드는 교활한 화술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마 여러분은 [전우치]라는 영화를 기대하면서 최동훈이 자신의 트레이트마크이기도 한 이 재료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여러분의 기대는 거의 완전히 틀렸습니다. 최동훈은 이 영화에서 꽤 과감한 모험을 했습니다. 엄청난 대자본을 들인 액션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장기를 거의 완전히 버린 거죠. 어쩌자고? 저도 모릅니다. 아마 생활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었거나 이 이야기엔 다른 접근방식이 맞다고 생각한 모양이죠. 어느 쪽이건 이건 다소 위험한 모험입니다.

도입부만 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전우치]라는 타이틀이 화면에 뜰 때는 말입니다. 영화 제목이 뜨는 타이밍은 아주 중요합니다. 모든 것의 진짜 시작이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실수로 떨어드린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타이밍에 타이틀을 슬쩍 던져버립니다. 생뚱맞아요. 그건 영화의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동훈은 이 영화를 제대로 맺을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는 역시 관객들에게 어떤 준비신호도 보내지 않고 그냥 영화를 끊어버립니다. 물론 관객들은 내용상 이 영화가 끝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 어색한 리듬은 여전히 난처합니다.

그 중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우치]는 구조적으로 아주 불안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조선시대의 전우치와 그림 속에 갇혔다가 현대 사회로 다시 뛰어나온 전우치의 모험담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분은 이런 식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겠습니까? 보통 전반부를 짧게 하고 후반부를 길게 잡지 않습니까? 아니면 현대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과거의 내용을 중간에 회상장면으로 풀거나요. 하지만 최동훈은 이 두 이야기를 그냥 한줄로 엮는데, 전반부의 조선시대 장면이 거의 영화의 절반 가까이가 됩니다. 차라리 절반이라면 2부작 느낌이 나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냥 절반이 조금 못 됩니다. 그냥 괴상한 거죠.

스토리 전개도 그의 장기를 모두 버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플롯의 유기적 구성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개별 시퀀스의 독립성이 늘었습니다. 액션을 중요시하는 영화에서 이건 의미있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최동훈은 물리적 액션에는 그리 능하지 않습니다. 도술을 이용한 많은 액션 장면이 나오지만 그리 신기하지도 않고 박진감이 넘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특수효과도 그냥 평범하고요. 다시 말해 이를 통해 얻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남는 건 평이하지만 드라마의 선명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스토리뿐입니다.

이 불분명한 스토리도 어느 정도는 의도적일 것입니다. 영화는 선악이 분명한 세계를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 전우치는 도술로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걸 좋아하는 익살스러운 장난꾼이고, 악당인 화담(서경덕은 저승에서 자길 이렇게 만든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이 만파식적을 챙긴다고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우치는 스승에 대한 복수를 하려하지만 대단한 의욕은 없습니다. 과거에 만났던 과부와 똑같이 생긴 서인경에 대한 그의 집착도 행동동기이긴 하지만 그는 연애에 빠지기엔 지나치게 자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 어느 순간부터 감독이 의도한 익살스러운 파괴가 영화의 치명적인 실수가 됩니다. 그 어느 순간이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영화가 재미가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최동훈은 영화 내내 계속 농담들을 던지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먹힙니다. 단지 그 농담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전우치]의 농담은 핀트가 안 맞거나 허무하거나 의도적으로 때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몇몇 농담들은 정말로 고도로 세련된 농담인지 아니면 실패한 농담인지 구별이 안 갑니다. 실제로 그런 재주를 부리다가 실패하는 농담들도 꽤 많죠. 특히 시대착오적인 농담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어주는 경우는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 [전우치]는 재미와 재미없음을 구분하기 꽤 힘든 영화입니다.

배우들은 좋습니다. 캐스팅도 잘 되었고 이미지도 잘 맞으며 연기도 살아있어요. 단지 강동원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이상하게 존재감이 흐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배우 잘못은 아니고... 글쎄요. 영화의 기술적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결정적인 농담을 치는 장면들에서 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임수정 역시 조금만 밀면 굉장히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정작 캐릭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꼭 해야할 일만 시키고 넘겨버립니다. 다른 배우들도 의도와 능력만큼 잘 보이지는 않는데,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최동훈의 의도가 무엇이고 과연 그것들 중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늘 잘 하는 것만 하는 건 게으른 거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는 것도 좋은 일이겠죠. 그런데 과연 이런 실험을 지금하는 게 옳은 일인지? 저에겐 많이 위험해 보입니다. 결과는 곧 알게 되겠죠. (09/12/14)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를 최초의 한국형 히어로 무비로 선전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몰기엔 선례가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