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이미 배비트 Jamie Babbit

주연
멜로니 디아스....안나
Melonie Diaz....Anna
니콜 비시어스....세이디
Nicole Vicius....Sadie
칼리 포프....슐리
Carly Pope....Shuli
다니엘라 시....캘빈
Daniela Sea....Calvin
멜라니 메이런....코트니
Melanie Mayron....Courtney
딕 에브제니코스....미트
Deak Evgenikos....Meat
로렐 몰리카....애기
Lauren Mollica....Aggie
기네비어 터너....메이시 말로니
Guinevere Turner....Marcy Maloney
제니 시미츠....로렐
Jenny Shimizu....Laurel

C(I)A

영화가 시작될 무렵, 주인공 안나는 심각한 인생 개조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대학은 떨어졌지요, 여자친구에겐 차였지요, 다니는 직장인 성형외과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길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지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과 자존심이 바닥을 친 안나 자신이죠. 이런 입장이 되면 인생 구제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겁니다. 종교를 가지거나,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닥터 필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 영화에서 안나가 선택한 건 급진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 안나가 선택을 한 것도 아니에요. 안나는 그냥 끌려갑니다. 어느 날 밤 직장인 성형외과 창문에 페미니스트 선언을 갈겨 쓰고 달아나던 젊은 여자가 안나에게 자신이 속해 있는 소그룹인 CIA(Clits in Action)를 소개시켜 줬거든요. 그렇다고 안나가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간 거냐... 그것도 아니에요. 안나가 CIA에 머문 건 순전히 자길 그룹에 소개시켜준 세이디에게 반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이티비티티티 위원회]는 좀 아슬아슬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정치적 목표가 분명한 작은 급진 단체와 입장을 공유하고 있지만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이기도 하죠. 이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코미디는 주인공들이 믿고 있는 정치적인 신념을 정공법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에요. 그 반대라면 모를까.

실제로 영화 중반까지 [이티비티티티 위원회]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풍자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그룹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덜 굳은 애들이에요. 경제적으로 독립한 아이들은 거의 없고 리더인 세이디만 해도 여자친구 코트니에게 거의 완벽하게 의존하고 있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기는 해도 이들의 행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요. CIA에서 들은 풍월을 바깥 세계에서 종알종알 읊어대는 안나를 진지하게 볼 수 없는 것도 당연하고요. 종종 얘들의 행동은 너무 무책임해서, 저 같은 관객들은 바깥 세상에서 구체적인 뭔가를 이루어내고 있는 주류 페미니스트인 코트니나 밖에 나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이 집없는 아이들이 머물 공간을 제공하는 로렐 같은 사람들에게 더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객들의 관심은 당연히 정치를 떠나 연애로 넘어가게 됩니다. 과연 안나는 세이디를 꼬실 수 있을까요? 과연 세이디는 코트니를 떠날 수 있을까요? 과연 안나와 코트니는 콩깍지가 벗겨져 자기에게 맞는 새 여자친구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 멜로드라마는 귀엽고 재미있긴 한데, 과연 얼마나 영화의 주제와 맞아 떨어지는 건지요? [L 워드]보다는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지만, 그래도 결국 잘 빠지고 예쁜 젊은 아이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는 CIA의 성격도 문제라면 문제죠.

하지만 영화 후반이 되면 영화는 나름대로 방향을 잡아갑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것들도 완전히 자기모순적이라고 할 수는 없죠. 모두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 하는 거니까요. 같은 농담이라도 야유와 자기 성찰은 의미가 다른 것이고요. 결정적으로 이들의 몸과 마음을 추스려 벌이는 조지 워싱턴 기념비 소동은 바깥 세계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만큼 시원스럽고 유쾌합니다. (07/04/11)

DJUNA

기타등등

1. Itty Bitty Titty Committee라는 단어가 미국 어린애들 속어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 멜라니 린스키가 카메오로 나옵니다.

3.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만든 파워 업 사람들은 CIA 아이들보다는 코트니 쪽에 더 가깝죠. 할리우드에서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을 다졌고 이런 식의 주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어느 정도 나이도 들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