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팡호청 Ho-Cheung Pang

주연
두문택...싱
Chapman To....Shing
양락시....얀
Isabella Leong....Yan

얀과 싱

팡호청의 [이사벨라]를 보다보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90년대 중반 홍콩 반환을 앞두고 왕가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만들었던 그 영화들이 떠오르거든요. 엔트로피가 극에 달한 낡은 도시의 모습, 통속적인 광동어의 울림, 흐릿하고 불안정한 크리스토퍼 도일식 화면과 감상적인 음악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절망감과 불안.

[이사벨라]도 꼭 그런 영화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달라요. 일단 무대가 홍콩이 아닌 마카오입니다. 시대배경도 그 도시의 반환시기인 1999년이고요.

이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익숙합니다. 주인공인 형사 싱은 정말 우리가 홍콩 영화에서 수천 번은 본 캐릭터죠. 더 이상 떨어질 구석이 없을 정도로 타락해 있지만 우리의 아리따운 여자 주인공을 만난 뒤로 개심의 기회를 얻는 인물이지요. 문제가 있다면 이미 한 번 잠자리까지 같이 한 미성년자 여자 주인공 얀이, 자기가 그의 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얀을 자기 삶 속에 받아들이고 사라진 얀의 애완견인 이사벨라를 찾으려 뛰어다녀야 합니다.

[이사벨라]는 내용보다 분위기에 의지하는 영화입니다. 시대배경이 과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한지도 모르죠. 그 뒤로 마카오가 특별히 다른 곳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퇴폐적인 분위기엔 은근히 기성품의 분위기가 납니다. "오늘은 심심한데 한 번 왕가위 영화를 만들어볼까?"하며 만든 느낌이 난다는 거죠. 그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2005년 또는 2006년의 현재를 다룬 에필로그를 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랬다면 이 작품이 기성품 '왕가위' 영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담담하게 자막으로 처리되는 마카오의 시대 묘사와 싱과 얀의 개인사가 적절하게 연결되어 이 영화에 사회적 깊이를 부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내용은 공식적입니다. 타락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 회심한다는 거죠. 이 영화에서 얀은 지나칠 정도로 편리한 캐릭터입니다. 거의 구원의 여신 버전 스위스 군용칼이에요. 처음엔 첫사랑의 기억을 환기시켜주고, 한 번이지만 섹스도 해주고, 나중엔 딸 역할까지 하면서 싱을 나락에서 구원해주죠. 더 이상 말을 않기로 하겠습니다.

[이사벨라]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그 관능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위태로운 근친상간의 매력, 아열대 기후의 나른한 분위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노골적인 페티시즘. [이사벨라]의 시각적 매력의 반 이상은 양락시의 하늘거리는 하얀 다리와 맨발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장화, 홍련] 저리가라입니다. (06/09/28)

DJUNA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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