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대영

주연
이천희....준서
한지혜....미연
이휘향....이모
이민기....천재





(스포일러가 있거나 말거나...)

준서와 미연

준서와 미연은 6년째(준서의 계산에 따르면 5.5년) 연애 중인 커플입니다. 처음엔 먼저 반해 접근한 게 준서지만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죠. 미연의 감정은 한결같은데, 준서는 그런 미연이 슬슬 지겹고 갑갑합니다. 왜냐? 그거야 찌질한 겁쟁이여서 그렇죠.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미연은 무시무시한 이벤트 광이에요. 십진법에 걸리는 모든 기념일을 챙기고 스노우보드에서부터 암벽등반까지 몽땅 남자친구와 같이 하고 싶어하죠. 그 덕택에 직장인 연구소에서 가장 잡기에 밝은 남자가 된 준서는 미연의 존재감에 압사당할 지경입니다.

그러다 미연이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준서 탓이죠. 일단 미연을 피하려고 남극세종기지에 일자리를 얻었고, 그런데도 여전히 기다리겠다는 미연이 2000일 기념 이벤트를 하자고 할까봐 겁에 질려 전화를 안 받았고, 그 때문에 미연이 선물로 산 HAM 장비를 직접 전해주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여기서부터 [허밍]은 유령 이야기가 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유령 이야기의 방계인 '뇌사 유령' 이야기죠. [저스트 라이크 헤븐]에서처럼, 여자주인공은 뇌사상태로 병원침대에 누워있는데 그 유령이 남자주인공을 찾아오는 겁니다. 와서 뭐하게요? 달력에 2000일 기념일을 적어주고 간답니다. 자기가 죽어도 기념일은 절대로 챙겨야 한다는 거죠.

이 유령은 재미있습니다. 영화는 꽤 과격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어요. 미연의 유령은 그냥 모습만 드러내는 게 아닙니다. 망가진 자전거와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자전거만 남겨놓고 사라지고, 키우는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입원시켜주기도 하거든요. 달력에 글씨를 남기는 것은 당연하고. 굉장히 물리적이지 않습니까? 보통 유령은 이런 걸 못하죠.

이건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영화도 그런 의무감을 느꼈는지 양자역학이니 다층우주니 하는 것들에 대해 주절주절 읊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혀 먹히지 않죠. 주인공이 과학자이면서 개념을 읊는 게 영 서툴고, 아무 데나 양자역학을 들먹이는 클리셰가 지금도 통할 리가 없으며, 그것만으로는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관객들이 그냥 포기하면 좋겠는데, 그냥 맘 편히 포기하기엔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괴상해요. 교통사고로 부서진 자전거와 똑같이 생긴 자전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하긴 준서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벤트를 해야 하니까요. 네,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자친구의 유령이 2000일 기념일이라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주고 사라졌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이벤트를 해야죠. 그리고 준서는 정말로 합니다. 그게 뭔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죠.

[허밍]은 [이프 온리]식 초자연적 멜로드라마를 표방하는 감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스토리 전개나 결말도 거기에 맞추어져 있고요.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이 아이디어는 지능적인 문제해결 스토리를 담은 SF 쪽이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준서가 미연을 위해 감동의 2000일 기념 이벤트를 하는 동안에도 전 계속 자전거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저 자전거는 도대체 왜 저기 있는 거지? 도대체 왜? 왜? 왜? (08/02/27)

DJUNA

기타등등

미연의 강아지는 영화에 나오기엔 너무 어려요. 강아지가 나올 때마다 그 어린 것이 스트레스나 받지 않았는지 걱정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