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자일즈 맥키넌 Gillies MacKinnon

주연
케이트 윈슬렛....줄리아
Kate Winslet....Julia
사이드 타그마우이....빌랄
Saïd Taghmaoui....Bilal
벨라 리자....비
Bella Riza....Bea
캐리 뮬런....루시
Carrie Mullan....Lucy
피에르 클레멘티....산토니
Pierre Clémenti....Santoni
애비게일 크루텐덴....샬로트
Abigail Cruttenden....Charlotte
아흐메드 불란....벤 사이드
Ahmed Boulane....Ben Said
시라 스탬프....에바
Sira Stampe....Eva
아미두....수피 셰이크
Amidou....Sufi Sheikh
미셸 페얼리....패트리샤
Michelle Fairley....Patricia
케빈 맥키드....헤닝
Kevin McKidd....Henning

1.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이고 화가인 루시앤 프로이드의 딸인 에스터 프로이드는 아주 어렸을 때 언니랑 엄마와 함께 모로코에서 일이년 동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에스터 프로이드는 90년대 초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히디어스 킹키]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을 출판했습니다. 바로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작품이지요.

물론 전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의존하며 프로이드의 어린 시절을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소설도 완벽히 자서전은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죠.

영화의 무대는 (당연히) 모로코. 시대 배경은 1970년대입니다. 히피 문화가 한창 유행일 때였고 모로코는 서구 기계 문명에 질려 뭔가 색다른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대안처럼 여겨졌었습니다. 그 때 서구 사람들이 그런 곳들을 어떻게 여겼는지 알려면 폴 보울즈의 [셸터링 스카이]나 그 작품을 영화화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를 보면 됩니다.

하여간 우리의 주인공 줄리아도 '춥고 슬픈' 런던을 떠나 모로코에 왔습니다. 그냥 왔으면 좋았을텐데, 7살짜리 딸 비와 5살짜리 루시(에스터 프로이드 자신이 모델이며, 소설에서는 나레이터라고 합니다)도 함께 데려왔죠. 무책임한 애들 아빠한테서는 거의 생활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 상황은 엉망입니다. 줄리아가 돈벌려고 하는 일은 더욱 처량하고요. 글쎄, 천조각으로 엉성한 인형을 만들어 판답니다.

영화 전체를 통해 특별히 중요한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줄리아는 범죄자 성향이 농후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닌 곡예사인 빌랄과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빌랄도 경제적 사정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 둘의 생활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저 같으면 당장이라도 제대로 생활비를 받을 수 있고 의료 혜택도 좋은 영국으로 돌아갈텐데, 줄리아는 죽어라고 모로코에 남으려고 하는군요. 수피 교도가 되려는 엉뚱한 희망과 애들이 텔레비전과 대량 생산 문화에 세뇌당하기를 바라지 않는 엄마의 '책임감'이 뒤섞인 결과지요. 줄리아는 우연히 만난 거주하는 산토니와 샬로트에게 비를 맡기기도 하고 빌랄과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하는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비가 가출했다가 영국인 전도사인 패트리샤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요.

2.

줄리아는 정말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엄마입니다. 샬로트의 말이 백번 맞아요. 7살과 5살짜리 아이들은 결코 이국천리에서 그처럼 멋대로 돌아다녀서는 안됩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엄마라면 아이들의 생활 환경과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70년대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보기만큼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줄리아 역시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한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주려 했습니다. 매우 70년대적이고 히피다운 방법으로요.

물론 줄리아가 마음먹은 대로 일은 풀리지 않습니다. 줄리아같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신비스럽고 지혜로운 '동양'은 서구인들의 판타지와 히피식 엉터리 루소주의가 엉성하게 뒤섞인 것에 불과했거든요. 아이들과 줄리아가 모로코에서 체험했던 것은 엉망인 의료시스템과 빈궁한 사람들, 지저분한 환경과 전염병입니다. 줄리아가 깨달은 유일한 지혜란 것은 자기가 수피 교도가 될 사람이 아니며,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영화는 그런 면에서 아주 솔직한 편입니다. 카메라가 잡아내는 모로코의 풍광은 여전히 인상적이지만, 영화는 억지로 모로코의 이국적인 모습을 미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야만적인 빈국으로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의 모로코는 그냥 모로코입니다. 그건 빌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야만적인 원주민도 아니고 이국적인 연인도 아닙니다. 문제가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선량한 보통 남자일 뿐이지요.

줄리아 역시 결점투성이지만 기본적으로 선량한 보통 엄마입니다. 줄리아 일행이 그 끈적끈적한 상황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건 그녀가 그럴만큼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구인들에게 7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그랬어요. 혼란스러웠고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도취되어 있었으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의심하던 시절이었지요.

영화의 대부분이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들의 혼란은 별다른 미화나 멸시없이 직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됩니다. 이들이 모로코와 엄마, 빌랄한테 느끼는 애증섞인 감정은 [셸터링 스카이]의 도피 따위보다 훨씬 진실되고 깊이 있는 것입니다. [셸터링 스카이]의 어른 주인공들은 공장 생산된 이미지들을 즐겼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정말로 그들의 삶 속 깊은 곳에 들어갔었고 정말로 그들을 알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모로코에서 겪었던 그들의 모험은 상당한 교육이 된 셈이긴 했어요.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 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열 살도 되기 전에 그 정도의 인생 체험을 쌓은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아이들이 그 동안 겪은 체험은 결코 낭비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는 아이들도 줄리아의 대책없는 결단에 고마워해야 할 듯 하군요.

3.

다소 단선적이고 중심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히디어스 킹키]는 그렇게까지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배우 때문이지요. 줄리아라는 캐릭터는 윈슬렛이란 배우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입니다. 열정적이고 과격 단순하고 뭐 그런 것 있잖아요. :-) 비와 루시를 연기한 두 아역 배우인 벨라 리자와 캐리 뮬런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근데 둘이 동갑이라네요!) 사이드 타그마우이([증오]에 나왔던 그 아랍인 친구를 기억하시는지) 역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배우고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지도, 설교를 하지도 않으면서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나갔던 감독 맥키넌의 솜씨였습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누적된 교육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생각해보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성립시키고 연구하고 발전한 사람들도 대부분 서구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의심나면 우리 나라에서 만든 [인샬라] 같은 영화를 보고 확인하면 되지요. (00/07/23)

DJUNA

기타등등

'히디어스 킹키'라는 제목을 억지로 번역할 필요는 없습니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제목은 아니니까요. '히디어스 킹키'란 우리의 두 어린 주인공인 비와 루시가 그저 마음에 들어서 놀이나 주문처럼 반복하는 문구에 불과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