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나가타 히데오 Hideo Nakata

주연
야나기 유레이....무라이 토시오
Yûrei Yanagi....Toshio Murai
이시바시 케이....무라카미 사오리
Kei Ishibashi....Saori Murakami
시로시마 야수요....쿠로카와 히토미
Yasuyo Shiroshima....Hitomi Kurokawa
단 리....유령 여자배우
Dan Li....Ghost actress

추락사고

[여우령]의 영화적 가치는 [링]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나가타 히데오의 첫 호러 영화지만 그 자체로보다는 [링]의 전조로서 더 잘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죠. [여우령]은 나가타 히데오의 호러 영화들을 특징짓는 스타일, 주제, 테크닉이 거의 모두 담겨있는 작품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 자체의 힘으로 서기엔 조금 약합니다. 영화 자체도 러닝타임이 70분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품이지요. 그 동안 전개되는 이야기도 순전히 막판의 호러 장면을 위한 보조도구고요.

[여우령]은 2차 세계대전 말을 무대로 한 시대극을 찍는 영화제작팀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필름을 현상하는 동안 그들은 자기가 찍지 않은 이상한 영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 뒤로 스튜디오 안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화감독은 이 모든 것들이 스튜디오 안에서 죽은 여자 배우의 유령 때문이라고 믿게 되고요.

괜찮은 추리물의 구성같지만, 영화는 사건의 정체를 밝히고 유령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없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여전히 스튜디오에는 유령이 돌아다니고 우리는 그 유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왜 스튜디오 안을 돌아다니는 건지 모릅니다.

이런 모호함은 호러 창출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여우령]은 강한 도시전설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완벽하게 짜여진 픽션의 인공적인 느낌 대신 어디서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의 불완전하고 섬뜩한 단편의 느낌을 의도하고 있지요. 영화의 기분나쁜 뒷맛도 그 때문입니다.

영화를 찍는 스튜디오도 이런 이야기를 위한 괜찮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원래 스튜디오와 같은 곳에 유령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지요. 아마 우리와 다른 기계적 방식으로 감각을 기록하는 매체가 인간들이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잡아낼지도 모른다는 미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이는 공간 속에서 반쯤 현실성을 잃은 유령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좋고요.

하지만 그 모든 효과들은 [링]이나 [검은 물 밑에서]보다 떨어집니다. 일단 유령 장면들은 [링]만큼 설득력이 없습니다. 얼굴이 드러나고 너무나 전형적인 동양 여자 귀신 모습을 한 여자배우의 유령도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고요. 후반의 호러 장면은 오페라와 같은 장엄함으로 전개되지만, 그에 걸맞는 창의성과 힘은 아직 부족합니다. 해결없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이야기는 불쾌한 뒷맛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이 느끼는 허망함을 완전히 차단하지도 못해요. 결정적으로 우린 주인공 감독 선생에게 [링]의 레이코나 [검은 물 밑에서]의 요시미 때만큼 깊이 감정이입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공포 효과도 떨어지고요.

[여우령]은 여전히 섬뜩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지만 그 자체만의 힘은 부족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가타 히데오가 그 뒤에 만들 호러 영화들의 전주곡쯤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가장 좋을 듯 해요. (04/02/24)

DJUNA

기타등등

극중 영화가 진짜 영화를 능가하면 안되겠지만, 전 이 사람들이 찍는 영화의 내용이 참 궁금했습니다.